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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물리학2_연기법, 현대과학의 바탕
상대성 이론으로 잘 알려진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과학의 이성적 사유와 종교적 감정을 불교와 선과 교의관계처럼 보았다.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은 현대물리학의 양대 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물리학자다. 그는 ‘미래의 종교는 그 교리가 과학적으로 뒷받침되고 과학자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고, 이러한 종교를 ‘우주적 종교(cosmic religion)’라고 불렀다. 우주적 종교는 사람들에게 진리를 직관하는 종교적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데, 아인슈타인은 이 감정을 특별히 ‘우주 종교적 감정(cosmic religious feeling)’이라고 표현했다. 아인슈타인은 이 감정을 구체적으로 이렇게 설명하였다.

“우주 종교적 감정이란 인간이 갖는 그릇된 욕망의 허망함을 깨닫고 정신과 물질 양쪽 측면에서 나타나는 질서의 신비와 장엄을 느끼는 것이다. 구약(舊約) 시대 때 다윗을 비롯한 이스라엘 예언자들은 이 감정을 느끼고 있었고, 특별히 불교는 이 요소를 강하게 갖고 있다.”

| 종교와 과학의 상보성

종교와 과학은 그 영역과 목적이 다르다고 하지만, 공통적인 관심사도 있다. 우주와 자아가 무엇인가 하는 것은 인간의 궁극적인 물음이자 종교와 철학과 과학의 공통적인 관심사다. 이렇게 중요한 공통적인 관심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셋 사이에는 거의 대화가 없었다. 서양철학이 ‘신학의 시녀’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신학자들이 신학을 정립하는데 철학을 도구로 사용하긴 했지만, 신학과 철학이 수평적인 관계에서 진리를 논하고 비교한 적은 거의 없었다. 과학과 종교 사이는 이보다 더했다. 그러나 종교가 사람들에게 진리를 가르치고 과학이 진리를 찾는 것이라면, 또 둘 사이에 공통적인 관심사가 있다면 종교와 과학이 서로의 진리를 비교하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종교인과 과학자가 서로를 멀리하게 된 것은 19세기 이후 유물론이 성행한 이후의 일이다.

유물론이 성행하기 전까지는 위대한 물리학자 뉴턴(Isaac Newton, 1642~1727)을 비롯하여 과학의 탄생에 공헌한 유럽의 지식인들은 종교와 과학을 둘로 보지 않았다. 이들은 자연의 탐구를 통해 밝힌 우주와 물질에 관한 과학적 법칙이 그대로 신이 세상을 창조한 원리를 나타낸다고 보았다. 뉴턴이 신학 연구에 바친 시간은 물리학 연구에 바친 시간보다 훨씬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계몽주의 시대를 거쳐 19세기를 지나면서부터 과학과 종교는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더구나 과학이 고도로 발달한 21세기에 이른 지금 리처드 도킨스(Clinton Richard Dawkins, 1941~)나 스티븐 호킹(Stephen William Hawking, 1942~2018)과 같은 저명한 과학자들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미신으로 취급하고 과학기술의 발달만이 사람을 보다 지혜롭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종교의 가치를 인정하는 과학자들도 종교와 과학의 목적과 영역이 달라 진리를 논하는 자리에서 과학과 종교를 함께 말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대라고 해서 모든 과학자들이 다 종교적 진리를 부정하고 종교와 과학의 조화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종교적 진리에 관심을 가진 과학자들도 의외로 많다.

양자역학의 창시자들 중에는 동양철학에 정통한 사람들이 많았다. 어떤 학자들은 주장하기를, 새로운 역학체계의 창시자들은 서양철학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사물을 기술하는 불교와 동양사상에 주목하고 이를 자연현상의 해설에 반영하였다고 하는데, 이들 학자들의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실제로 양자역학의 철학적 기반을 마련한 닐스 보아(Niels H. D. Bohr, 1885~1962)는 1958년 출간한 <Atomic Physics and Human Knowledge>이라는 저서에서 “……양자역학의 개념적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심리학과 같은 다른 분야의 과학이나 일찍이 부처(Buddha)나 노자(老子)가 직면했던 인식론적 문제로 되돌아가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으며, 불교에서 말하는 중도의 원리가 진리를 나타낸다고 주장했다. 특히 아인슈타인은 진리를 찾는데 있어서 종교와 과학의 협동과 조화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양자역학의 철학적 기반을 마련한 닐스 보아는 “양자역학의 개념적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심리학과 같은 다른 분야의 과학이나 일찍이 부처나 노자가 직면했던 인식론적 문제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시간과 양자물리학의 관계를 표현한 이미지.

| 아인슈타인의 우주적 종교

아인슈타인은 진리를 찾는데 있어서 종교와 과학을 수레의 두 바퀴에 비교하면서 종교와 과학이 상보적(相補的)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이스라엘 출신의 물리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인 막스 야머(Max Jammer, 1915~2010)가 쓴 <Einstein and Religion>에 의하면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과학의 영역에서 떠오르는 훌륭한 생각들은 모두 종교적 감정에서 생겨나는 것이며, 종교적 감정 없이는 좋은 생각들이라도 열매를 맺을 수가 없다.”

이 말은 진리를 찾는 것은 논리나 이성적 사유가 아니라 종교적 감정(religious feeling)이며, 과학의 역할은 종교적 감정으로 직관한 진리를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정리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아인슈타인이 말하는 종교적 감정이란 맹목적인 종교적 열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진리를 직관하는 ‘우주 종교적 감정’을 뜻한다. 아인슈타인이 한 말은 불교의 선(禪)과 교(敎)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불교에서는 ‘근본적 진리는 분별지[이성적 사유]로써는 도달할 수 없고, 직관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깨달음을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그것도 잘못’이라고 한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진리를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 불교 경전이고 논서들이다.

지도(地圖)는 실물이 아니지만 잘 그린 지도는 지리(地理)를 잘 나타내기에 사람이 길을 찾는 데 큰 도움을 주는 것처럼, 말로 표현한 경전은 사람이 진리를 찾는데 도움이 된다. 깨달음[禪]만 있고 깨달음을 말로 표현한 가르침[敎]이 없다면 그 깨달음은 범부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성적 사유와 종교적 감정을 불교의 선(禪)과 교(敎)의 관계처럼 본 것이다. 이런 뜻에서 아인슈타인은 불교를 가리켜 우주적 종교에 가깝다고 한 것이다.

연기법을 놓고 보면 불교는 아인슈타인이 말한 ‘우주적 종교’의 후보 자격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현대과학의 주요 분야는 모두 연기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연기법을 그 학문의 바탕으로 삼고 있다. 일반상대성이론은 ‘시공간의 구조에 따라 물체가 움직이지만, 시공간의 구조를 만드는 것은 물질의 분포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한다. 즉 연기의 이치를 말하고 있다. 양자역학은 관찰대상과 관찰자가, 진화론은 생명을 가진 유기체와 환경이 서로에게 의지한다고 봄으로써 둘 다 연기의 이치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제3의 과학이라고 하는 복잡계 이론은 그 자체가 바로 연기법이다.

따라서 불교의 교리는 과학적으로 뒷받침되는 것이 확실하다. 그리고 불교의 명상법은 심리학자들과 뇌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이들 학문분야에서는 명상법과 관련하여 많은 논문들이 출판되고 있다. 이제 사람들이 신해행증(信解行譄)의 이치에 따라 바르게 수행하고 불법을 증득하면 불교는 확실히 우주적 종교가 될 것이다.

김성구

이화여대 명예교수. 1946년생으로 서울대 물리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소립자 물리학 이론’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화여대 퇴직 후 동국대 불교학과에 입학, 학 ·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경상남도 함양에 약천사를 창건했다. 이곳에 불교과학아카데미를 개설, 2014부터 매월 불교와 현대물리학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현대물리학으로 풀어본 반야심경>, <천태사상으로 풀이한 현대과학> 등이 있다.

글 · 김성구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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