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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 보살님은 왜1_어둔밤 바위에 앉아계실까?선재동자에게 깨달음의 길 알려주려고

선재동자에게 깨달음의 길 알려주려고

사방이 어둑한 가운데 저 멀리 하늘에 두둥실 달이 떴습니다. 달빛이 은은하게 쏟아져 내립니다. 달빛 속에서 환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이가 있으니, 관세음보살님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의 모습을 보자면, 세상 그 누구보다 화려하게 차려 입었습니다. 목에는 아름다운 보석목걸이를 걸었고, 머리에는 화려한 관을 쓰고 계십니다. 눈부시게 화려한 차림새 위에 날아갈 듯 가벼운 너울을 쓰고 계십니다. 하늘의 달빛이 그 하얀 너울에 반사되어 화사함을 더합니다.

수월관음도(일본 사가현립박물관 소장, 419×254cm). 1323년에 제작된 고려 불화로, 현재 일본중요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수월관음도는 관세음보살이 보타낙가산에서 진리를 구하는 선재동자를 만나 깨달음을 주는 경전 장면을 묘사한 작품을 말한다.

지금 이곳은 보타락가산. 어둠이 찾아온 숲 속에 계곡물이 졸졸졸 흐르고, 키가 큰 나무들 사이로 싱싱한 풀들이 향기를 뿜어내고 있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은 지금 바위 위에 앉아 계십니다. 두 다리를 맺고 참선에 들어 계시다가 이제 막 선정에서 깨어나셔서 동작을 푸신 듯합니다. 한쪽 다리를 아래로 내려뜨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화려하게 차려 입으신 관세음보살님은 어째서 어둔 밤, 잠들지 않고 계곡가로 나와 바위 위에 앉아계시는 걸까요? 가만 얼굴을 들여다보니 두 눈을 살포시 뜨고 계십니다. 대체 무엇을 바라보시기에 저토록 조심스레, 사랑스레, 연민 가득 담은 눈길을 보내고 계시는지 그 눈길을 따라가 봅니다.

그 눈길의 끝에는 어린 구도자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바위 위에 앉아 계신 관세음보살님에 비해 어린 구도자는 한없이 작고 여립니다. 담담하고 고요하게 정좌하신 관세음보살님에 비해 어린 구도자는 허리를 구부리고 갈구하는 몸짓을 보입니다. 보일 듯 말듯 살짝 뜨신 눈길을 아래로 보내는 관세음보살님에 비해 어린 구도자는 두 눈을 활짝 열고 간절히 우러릅니다.

어린 구도자 이름은 ‘선재’입니다. ‘선재동자’라 불리고 있지요. 그림에선 한없이 작고 여린 어린이로 그려지고 있지만, 사실 동자라 불리는 까닭은 나이 어린 사람이란 뜻이 아닙니다. <대지도론>에 따르면 ‘부처 되는 길을 찾아다니며 수행을 해나가고 있는 보살’을 가리켜 ‘동자’라 부릅니다. 성숙한 존재인 부처가 되기에는 아직은 더 배우고 익혀야 할 것이 많은 사람, 그래서 ‘동자’라 부르지만 이 말 속에는 수행자, 보살이란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밤, 관세음보살님이 계곡 가 바위 위에 앉으신 까닭은 이 간절한 구도자를 맞이하기 위함입니다. <화엄경> ‘입법계품’에는 그 사연을 담고 있고, 수많은 관음도는 이 장면을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모든 관음도가 똑같이 선재동자를 향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관음도 조차도 우리는 그 눈길이 종내 선재동자를 향하리라 상상할 수 있습니다.

창녕 관룡사 대웅전 관음보살벽화(보물 제1816호, 303.5×405cm). 18세기 작품으로 토벽에 채색을 했다. 수월관음도와 마찬가지로 보타락가산에서 관음보살이 선재동자에게 설법하는 장면이다.

지금까지 스물일곱 분이나 되는 스승을 찾아서 산을 넘고 물을 건너 헤매고 다닌 선재동자입니다. 스승에게서 스승에게로, 선재동자는 그렇게 쉬지 않고 나아가면서 딱 한 가지만을 여쭈었습니다.

“보리심을 일으킨 보살은 무엇을 어떻게 실천해야 합니까?”

보리심이란 지혜를 구하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이때의 ‘지혜’는 여느 앎이 아닙니다. 부처님만이 깨달을 수 있는 바로 그 지혜, 그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위없이 바르고 완전한 깨달음을 말합니다. 이런 깨달음을 얻으려고 마음을 낸 것을 ‘발심’이라 합니다. 결국 발심이란 부처의 지혜를 얻고자 마음을 냈다는 뜻이고, 이 말 속에는 “부처가 되겠다.”는 결심이 담겨 있습니다.

선재동자는 수없이 스승들을 찾아다니며 그 방법을 물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스물여덟 번째 스승이신 관세음보살님 계신 곳에 막 도착한 것입니다. 선재동자는 천천히 관세음보살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아, 저 분……. 스물일곱 번째 스승이신 비슬지라 거사님이 일러주신 나의 스승님…….’

가슴이 두근거려 옵니다. 그대로 있다가는 터질 것만 같아서 선재동자는 가만히 두 손을 앞으로 모았습니다. 그의 허리가 한껏 굽어졌습니다. 키를 낮추고 관세음보살님만 바라보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눈을 깜박일 수도 없습니다. 행여 깜박이다 관세음보살님을 놓칠 새라 …….

가만가만 나아가며 그는 속으로 관세음보살님을 찬탄했습니다.

“선지식은 여래요, 선지식은 진리의 구름이요, 선지식은 공덕의 창고요, 선지식은 만나기 어렵고, 선지식은 열 가지 지혜 힘의 원인이요, 선지식은 영원히 타오르는 지혜의 횃불이요, 선지식은 복덕의 싹이요, 선지식은 온갖 지혜의 문이요, 선지식은 지혜 바다의 길잡이요, 선지식은 지혜에 이르도록 도와주는 온갖 도구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은 선재동자를 기다리고 계셨을까요? 자신에게 천천히 다가오는 선재동자, 단 한 번도 눈을 깜박이지 않고 우러르는 선재동자에게 인사를 건네십니다.

“어서 오라, 구도자여.”

자신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관세음보살님에게 선재동자는 절을 올립니다. 그리고 예의 질문을 올립니다.

“스승님, 저는 보리심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보리심을 일으킨 보살이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무엇을 배우고 닦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스승님께서는 중생을 잘 인도하시는 성자라 들었습니다. 제발 저를 위해 법문을 들려주십시오.”

이렇게 한없이 낮은 자세를 취한 선재동자를 향해 그 길을 알고 있고, 그 길을 걸어갔고, 지금도 변함없이 걸어가고 있는 관세음보살님은 두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커다란 슬픔(大悲)’입니다.

“나는 커다란 슬픔을 품었다. 세상에 일어나는 일을 바라보자면 안쓰럽기 그지없어 마음속 깊이 슬픔을 품게 되었다. 나는 슬픔으로 해탈을 했고, 그 슬픔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슬픔으로 세상을 구제하려 하고 있다.”

관세음보살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부처님 계신 곳에 늘 머물러 있으면서 모든 중생 앞에 두루 모습을 나타내지. 아낌없이 베풀거나 다정한 말을 건네거나 저들을 이롭게 하거나 혹은 함께 일을 하면서 중생을 두루 거두지. 또는 온갖 몸으로 변하거나 생각지도 못할 맑고 깨끗한 빛의 그물을 나타내어 저들을 거두지. 그렇지 않으면 음성으로, 멋진 모습으로, 혹은 법을 설하거나 혹은 신통을 나타내어서 중생의 마음이 깨닫게 하여 저들을 성숙하게 하고, 혹은 저들과 똑같은 부류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저들과 함께 머물러 저들을 성숙하게 하지.”

관세음보살의 두 번째 이야기는 ‘두려움(怖畏)’입니다.

“구도자여, 내가 커다란 슬픔을 품은 이유는 온갖 중생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다짐했지.

저들이 험한 길에서 품는 두려움, 뜨거운 번뇌에 시달릴 두려움, 길을 잃고 헤맬 두려움, 목숨을 잃을까하는 두려움, 가난에 대한 두려움, 생계를 잇지 못할까하는 두려움, 세상에 오명이 퍼질까하는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대중 앞에 나서길 겁내는 두려움, 악업을 짓고서 나쁜 길에 태어날까하는 두려움, 캄캄한 어둠에 대한 두려움,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것에 대한 두려움,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미워하는 이와 만나는 두려움, 신변에 위협을 느끼는 것에 대한 두려움, 마음이 무엇인가에 쫓기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근심과 슬픔에 대한 두려움…….

이런 두려움 속에서 사는 중생들을 바라보며 저들에게서 두려움을 멀리 떠나게 하겠다고 다짐했지. 그저 나를 생각하고 내 이름을 부르고 내 몸을 보는 것만으로도 온갖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멀리 떠나게 하겠다고 다짐했지.”

관세음보살님은 또 이렇게 덧붙입니다.

“구도자여, 내가 저 모든 이들을 두려움에서 멀리 떠나게 하는 것, 그것이 목표는 아니다. 두려움을 멀리 떠남으로써 저들이 위없는 완전하고 바른 깨달음을 얻으려는 마음을 일으키고 그 자리에서 다시는 물러서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보타락가산, 어둠이 내려앉은 계곡 바위 위에 관세음보살님이 앉아 계셨던 이유는 이렇습니다. 부처가 되려고 마음을 낸 구도자 선재에게 세상을 향해 커다란 슬픔을 품으라고, 세상에 휘둘리고 있는 중생들의 두려움을 없애주라고, 그리하여 저들도 그대처럼 발심하게 하라고 일러주시기 위함이었지요.

이미령

동국대학교에서 불교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경전번역가이자 불교대학 전임강사, 북 칼럼니스트이다. 현재 BBS불교방송 ‘멋진 오후 이미령입니다’를 진행 중이다. 저서로 <붓다 한 말씀>, <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 <이미령의 명작산책> 등이 있다. 또 <직지>, <대당서역기> 등 많은 번역서가 있다.

글 · 이미령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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