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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안과 피안을 잇는 다리(上)세상과 세상을 잇는 다리1(276호)
  • 글 · 사진 이강식 기자
  • 승인 2019.01.21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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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깊은 물이나 계곡을 건너기 위해 돌과 나무로 다리를 만들었다. 다리는 어느 한 곳과 다른 한 곳을 연결해주는 매개체라는 이유로 상징적 의미로도 자주 사용됐다. 대표적 예가 사찰에 놓여 중생의 세계와 부처의 세계, 즉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을 이어주는 경우다. 현재 우리나라 사찰에는 옛 다리가 여럿 남아 있다. 어디 사찰뿐일까? 궁궐에도 아름다움을 위해, 한적한 마을에도 백성들의 편리함을 위해 다리는 놓였다. 이런 다리는 대부분 종교적 의미나, 민중의 염원 등 갖가지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옛 다리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시작한다.

다리는 한 곳과 한 곳을 이어주는 매개체다. 불교에서는 중생세계와 부처세계를 이어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무지개 모양의 다리인 여수 흥국사 홍교.

속세의 온갖 번뇌 떨치고
부처의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

현재 남아있는 사찰의 옛 다리로는 경주 불국사의 연화교 · 칠보교(蓮華橋·七寶橋, 국보 제22호)와 청운교 · 백운교(靑雲橋·白雲橋, 국보 제23호), 순천 선암사의 승선교(昇仙橋, 보물 제400호), 여수 흥국사 홍교(虹橋, 보물 제563호), 강원도 고성 건봉사 능파교(凌波橋, 보물 제 1336호), 누각형 다리인 순천 송광사 삼청교 · 우화각(三淸橋·羽化閣, 전남 유형문화재 제59호)과 곡성 태안사 능파각(凌波閣, 전남 유형문화재 제82호) · 능파교(凌波橋) 등이 있다.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 사찰의 다리를 반드시 건너야 한다.

순천 선암사 승선교
호암대사, 관음보살 친견 후 건립

순천 선암사 승선교 아래에서 바라본 홍예 안쪽 모습. 뒤로 강선루가 보인다.

이번호에는 호남지방 사찰인 순천 송광사와 선암사, 여수 흥국사, 곡성 태안사의 다리로 안내한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다리는 순천 선암사 승선교가 아닐까 싶다. 선암사 입구에 있는 승선교는 무지개 모양[虹蜺(홍예)]의 다리로, 임진왜란 이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한다.

승선교는 조계산 계곡 양쪽의 천연 암반 위에 길게 다듬은 화강암을 연결해 무지개 모양으로 만든 돌다리다. 높이는 7m, 길이는 14m, 너비는 3.5m에 달한다. 돌과 돌은 정교하게 이어져 있는데, 장인의 뛰어난 결구(結構) 솜씨가 느껴진다. 아치형의 다리 전체를 작은 돌로 쌓고, 흙으로 평평하게 다져 불편 없이 건널 수 있도록 했다. 다리를 건너면 정면에 큰 바위가 보이는데, 그곳에 ‘昇仙橋’가 음각돼 있다.

다리를 제대로 보려면 다리 아래 계곡으로 내려가야 한다. 겨울에도 물이 많아 홍예 바로 아래로는 내려가기 어렵다. 홍예의 정중앙에는 용머리가 있는데,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불교에서 용은 부처님을 수호하는 호법신장의 역할을 한다. 다리의 용 또한 물을 통해 사찰로 들어오려는 잡귀 등을 감시하고 물리치기 위해 두 눈을 부릅뜨고 있다. ‘용머리를 빼면 다리가 무너진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승선교 건립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하는데, 관음보살과 연관이 있다. 1698(숙종 24)년 호암 대사가 관음보살을 친견하려고 백일기도를 올렸다. 그러나 관음보살을 친견하지 못한 호암 대사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 이 때 한 여인이 나타나 호암 대사를 구했는데, 대사는 그 여인이 관음보살임을 깨닫고, 경내에 관음보살을 주불로 모시는 원통전을, 사찰 입구에는 승선교를 건립했다고 전한다.

강선루에서 바라본 승선교 모습. 옛 돌다리의 멋과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순천 송광사 삼청교ㆍ우화각
龍이 문 엽전, 시줏돈 소중함 일깨워

선암사와 같은 조계산 자락에 자리 잡은 송광사에도 옛 돌다리가 있다. 송광사의 돌다리는 삼청교로, 다른 다리와는 달리 누각(樓閣)과 다리를 합쳐 하나로 만든 일체형이다. 삼청교 위에는 목조로 건립한 우화각이 있다. 삼청교와 우화각이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59호로 묶여 지정된 것도 둘이 아닌 하나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송광사성공중창록(松廣寺成功重刱錄)〉에 따르면 삼청교는 1700년~1711년 사이에 만들어졌으며, 1774년에 중수됐다. 조계천 위에 축조된 삼청교는 능허교(凌虛橋)라고도 불리는데, 대웅전을 비롯한 각 전각이 있는 경내로 들어가려면 삼청교를 건너야 한다. 지금은 여러 곳에 다리가 놓여져 경내로 들어 갈 수 있는 길이 많아졌지만, 옛 다리의 고풍스러움은 느낄 수 없다.

삼청교는 4각형으로 깎은 장대석 19개를 연결한 홍예(虹蜺) 모양의 돌다리다. 다리의 양쪽 측면에는 4각형의 판석을 쌓았다. 4개의 긴 돌로 난간을 만들었고, 홍예 천장 중앙에는 입에 엽전이 걸려 있는 용머리가 있다. 이 용을 ‘공하(蚣蝦)’라고 부르는데, 용의 아홉 아들 중 여섯 째다. 공하는 물을 좋아하고 물을 따라오는 잡귀를 물리친다는 이유로 다리의 장식으로 많이 쓰였다고 한다.

용의 입에 걸려 있는 엽전과 관련해서도 이야기가 전한다. 능허교가 무너져 복원불사를 했는데, 불사를 마치고 나니 엽전 세 닢이 남아 다리가 부서지면 수리하는데 쓰려고 용머리에 매달아 놓았단다. 여기에는 신도들의 시주를 받아 불사를 했기에, 한 푼의 삼보정재(三寶淨財)라도 소중히 여기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삼청교와 우화각의 풍경은 여러 곳에서 감상할 수 있지만, 다리 입구에서 왼쪽으로 약 50m 지점에 있는 징검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게 더 아기자기하고 멋스럽다.

흰 눈에 덮힌 순천 송광사 삼청교와 우화각. 삼청교는 다리와 누각의 일체형인 누각형 돌다리다.

여수 흥국사 홍교
임진왜란 후 승병이 축조

순천 송광사에서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여수 흥국사에도 조선시대에 건립된 무지개 형태의 아름다운 돌다리가 있다. 1972년 보물 제563호로 지정된 ‘여수 흥국사 홍교’다. 이 다리는 화강암을 부채꼴 모양으로 정교하게 다듬어 축조했다. 높이 5.5m, 길이 40m, 너비 3.45m, 지름 11.3m로 완전한 반원을 이루고 있는 이 다리는 흥국사 뒷산인 영취산에서 흘러내린 개천 양쪽의 자연 암반 위에 86개의 장대석을 세워 만들었다. 무지개형 돌다리로서는 가장 높고 긴 다리로 알려져 있다.

여수 흥국사 일주문 아래에 있는 흥교. 다리 위로 흙을 다져 오가기 편하도록 만들었다.

작은 돌로 홍예 전체를 감싸듯 쌓았고, 그 위에 큰 판석(板石)을 올린 뒤 흙을 덮어 사람이 오갈 수 있게 했다. 다리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정중앙에 용머리가 있고, 용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귀면상이 있다. 용머리와 귀면상 모두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중생들을 지키고, 성스러운 공간에 침입하려는 잡귀를 막아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흥국사 홍교는 1639년 당시 주지인 계특 대사가 소실된 흥국사를 복원할 때 건립했다고 전한다. 홍교는 임진왜란이 끝난 후 혹시 뒤따를 전쟁에 대비해 흥국사에 주둔하고 있던 승병 300여 명이 축조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해 ‘관아에서 승병들을 위협적인 존재로 느껴 흥국사의 지맥을 끊고자 홍교를 놓았다.’, ‘절에서 할 일 없이 머물고 있는 승병들의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해 다리를 놓았다.’는 등의 설이 전한다.

현재 홍교는 일주문에서 아래로 50m 떨어져 있는데, 진입로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이 다리를 건너야 흥국사로 갈 수 있었다. 1981년 발생한 폭우로 일부 붕괴됐지만, 1982년 복구됐다. 순천 선암사 승선교와 더불어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돌다리로 평가 받고 있는 흥국사 홍교. 계곡으로 내려가 올려다보면 다리의 웅장한 모습과 계곡물에 비친 반영(反影), 홍교 위로 보이는 맑고 푸른 하늘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홍교는 임진왜란 후 흥국사에 주둔하던 승병 300여 명이 건립했다고 전한다.

곡성 태안사 능파각
국내 유일의 누각형 나무다리

영화 ‘곡성’의 촬영지로 유명해진 전남 곡성에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태안사가 있다. 태안사는 742년 대안사란 이름으로 창건됐다고 전하지만 확실치는 않다. 847년 혜철(惠哲, 785~861) 선사는 이곳에서 신라 말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동리산문(桐裡山門)을 열어 선풍 진작에 힘썼다. 후일 동리산문의 3조 윤다(允多, 864~945)대사가 132칸의 당우를 짓고 대찰의 규모를 갖추었다. 고려 초까지만 해도 송광사 · 화엄사를 말사로 둘만큼 사세가 컸으나, 고려 중기부터 사세가 축소됐다.

〈태안사사적기〉에 따르면 혜철 선사는 850년 계곡과 사찰을 잇는 능파각(凌波閣)을 건립했고, 941(고려 태조 24)년 윤다 대사가 중수했다. 이후 파손된 것을 1767년에 다시 지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곡성 태안사 능파각. 다리를 건너며 바라보는 풍광이 아름답다고 해서 ‘능파’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능파각은 송광사 삼청교 · 우화각처럼 누각형 다리지만 차이가 있다. 삼청교가 돌다리인데 비해, 능파각의 바닥은 나무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이 다리가 능파교이다. 이런 이유로 능파각을 누각형 나무다리라고 부른다. 누각형 나무다리는 국내에서 태안사 능파각이 유일하다. 특히 능파각은 문(門)의 역할도 하고 있는데, 이는 능파각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능파’는 ‘물결 위를 가볍게 걷는다.’는 뜻으로, 흔히 미인의 가볍고 아름다운 걸음걸이를 의미한다. ‘능파각’이라는 이름도 누각을 겸한 나무다리를 통해 계곡의 물 위를 건너며 아름다운 경관을 볼 수 있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불교적 의미로는 세상의 파도, 즉 번뇌를 떨치고 해탈의 세계로 건너간다고 풀이할 수 있다.

이 다리는 계곡 양쪽의 자연암반을 이용해 돌로 축대를 쌓고, 그 위에 길이 10m, 둘레 1.6m의 통나무를 걸쳤다. 바닥은 우물마루[‘井’ 모양]로 깔고, 기둥을 세운 뒤 지붕을 덮었다. 능파각의 규모는 정면 1칸, 측면 3칸이며, 맞배지붕에 겹처마집이다. 나무다리의 길이는 10m, 폭은 3.5m다. 1981년 10월 20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82호로 지정됐다.

국내 유일의 누각형 나무다리인 능파각을 지나야 태안사로 들어갈 수 있다.

다리는 이승과 저승을 이어준다. 또 섬과 뭍을 이어주고, 마을과 마을을 이어준다. 그리고 사바세계의 중생이 부처의 세계로 건너가는 통로이다. 평소 사찰에 드나들 때 무심결에 오가던 다리 위에 잠시 멈춰 서서, 그 다리에 담긴 의미를 되새겨 보자. 돌과 나무를 다듬어 만든 옛 다리지만, 그곳에 담긴 불교정신은 늘 변함없음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글 · 사진 이강식 기자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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