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궁 스님연초 황금돼지의 해가 밝았다고 그렇게도 부산이더니 한해의 절반이 좀 더 지난 지금 올해가 무슨 해였는지 기억조차 가물거리는 사람들이 많은 듯합니다. 황금돼지의 해에 걸맞은 행운과 재운이 따라주지 않을까하던 기대가 사그라들었기 때문이겠지요.

‘황금돼지해'를 언급하니 문득 돼지저금통이 떠오릅니다. 10~20년 전만 해도 학교 앞 문방구에는 빨간색 돼지저금통이 문 옆 비닐봉지에 담겨 대롱대롱 매달려있었습니다. 물론 가정에도 이런 복스러운 돼지저금통이 책상 위에 듬직하게 자리 잡고 있었지요. 100원, 50원짜리보다 10원짜리가 더 많이 들어있었지만 그 묵직함에 왠지 부자가 된 것 같은,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것 같은 포만감이 느껴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이런 돼지저금통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돼지저금통이 놓여있던 자리엔 어느 새 컴퓨터, 핸드폰, MP3 등 최첨단 디지털기기들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시대가 변했기 때문인지 그 옆에 돼지저금통이 놓이더라도 별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돼지저금통이 자취를 감춘 배경에는 삶이 그만큼 풍족해진 탓도 있겠지만 ‘동전 따위를 모아봐야 얼마나 도움이 되겠어'라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런 사고는 자칫 낭비와 사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정선에 카지노가 생긴 지 이미 오래고, ‘바다이야기'란 성인게임장(도박)이 온 나라를 뒤흔든 지 얼마 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경마장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줄을 잇고, 많은 사람들은 로또복권 당첨을 꿈꾸고 있습니다. 황금만능주의 시대라 불리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일확천금을 꿈꿉니다.

10원짜리 가득한
돼지저금통 되새겨
일확천금 욕망 떨치길

최근 코스피지수가 2000포인트를 넘나들면서 주식열풍이 대단합니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펀드와 주식을 외치고, 대출을 해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도 크게 늘었다고 합니다. 물론 주식투자가 나쁜 행위는 아닙니다. 우량한 기업의 주식을 매입해서 장기간 보유하는 행위는 개인의 재테크 관점에서도 슬기로운 선택이거니와 국가경제에도 보탬이 되는 일입니다. 하지만 한순간에 큰돈을 벌어보겠다는 욕심으로 주식투자를 시작한다면 도박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서민들이 이런 생각으로 주식시장에 몰려드는 건 아닌지 걱정이 듭니다. 비록 눈치 빠르게 행동해서 얼마의 돈을 벌 수 있을지는 몰라도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지 않는 한 결국 더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입니다. 한푼 두푼 모아서 큰돈이 모여진다는 진리를 외면한 채 일확천금을 꿈꾼다면 머지않아 그 과보를 고스란히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재물을 구하는 자가 명심해야 할 사항에 대해 언급하신 바 있습니다. 《중아함경》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재물을 구하는 자는 여섯 가지 도 아닌 것(六非道)을 알아야 하니, 갖가지 노름으로 재물을 구하는 것, 부적절할 시기에 재물을 구하는 것, 술을 마시고 방탕하게 재물을 구하는 것, 나쁜 벗을 가까이하여 재물을 구하는 것, 항상 풍류놀이를 좋아하면서 재물을 구하는 것, 게으르면서 재물을 구하는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에 든 지 2600여년이 흘렀지만 이 육비도(六非道)는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듯합니다. 노름으로 재물을 모으려다 가산을 탕진하고, 부정한 방법이나 부도덕한 방법으로 재물을 구하다 쇠고랑을 차는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인과법을 가르치셨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돈을 버느냐에 따라 그 돈이 내게 행복을 줄 수도, 불행을 가져다줄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땀 흘린 만큼 돈에 담긴 행복의 가치도 커질 것입니다.

덕궁 스님 / 천태종 종의회 의원, 천안 만수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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