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고한 종단 정체성은 신도 수행의 버팀목”

2019년 기해년을 열흘 앞둔 구랍 20일, 천태종 총무원장 문덕 스님을 서울 관문사에서 만나 다사다난했던 무술년 한 해를 돌아보고, 천태종의 신년 종무기조와 불자들에게 들려주는 덕담을 들어봤다. 편집자

“信心은 善因善果 惡因惡果에 대한 확신
새해엔 복 짓고, 복 아껴 쓰는 삶 살길”

△천태종 제18대 총무원장에 취임하신지 9개월이 흘렀습니다. 사회적으로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도 천태종을 잘 이끌어 오셨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종단 안팎에서 받고 있습니다. 먼저 그간의 소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종교든, 정치든, 사회든 어떤 집단이 잘 유지되기 위해 선결해야 할 과제를 꼽으라면 저는 주저 없이 ‘화합’을 꼽겠습니다. 건물을 세울 때 가장 먼저 구조물을 잘 지탱할 수 있도록 바닥을 탄탄하게 다지는 기초공사를 하는데, 한 집단에서 기초공사의 역할을 하는 게 바로 화합입니다.

제가 지난 9개월 간 천태종단을 무탈하게 이끌 수 있었던 건 앞서 17대 집행부가 4년 간 종무행정을 잘 펼쳐준 덕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종도들의 화합이 바탕을 이룰 때 수행이든, 불사든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전 집행부 스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2018년 한 해 동안 천태종은 무척이나 다양한 사업들을 펼쳤습니다.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사업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그리고 2019년 사업 중에 눈에 띠는 사업이 있다면 설명해주십시오.

금강신문 기자들도 취재를 다니면서 보았겠지만, 지난 한 해는 총본산인 구인사에서 종단 차원의 행사도 많았고, 전국 말사에서 각종 불사(佛事)와 문화행사도 많았습니다. 지역민이나 불자들과의 소통에 주력하다보니 문화행사에 치중하게 되었는데, 전반적으로 호응이 높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연중 가장 중요한 행사를 꼽으라고 한다면, 행사 규모의 크고 작음을 떠나 종단의 종지종통을 수호, 계승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한국 천태종을 개창한 대각국사 의천 스님 다례와 중창조인 상월원각대조사님과 대충대종사님의 추모 행사를 꼽고 싶습니다. 연례적인 행사라고 가볍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종도들이 종단의 정체성을 명확히 인식할 때 이를 바탕으로 수행과 포교에 나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천태종이 여타 종단과 다른 가장 큰 특징은 재가불자들의 여름과 겨울 한 달 안거입니다. 일상생활을 잠시 접어두고, 총본산인 구인사에 와서 한 달 간 주경야선의 수행을 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지난 여름과 이번 겨울에도 각각 천 명 내외의 재가불자들이 구인사 안거에 동참했고, 전국의 사찰에서도 한 달 간 새벽까지 관음주송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수행의 열기가 지속될 수 있는 건 종도들이 천태종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한 해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남북정상회담이 몇 차례 이뤄지는 등 수년 만에 남북이 해빙무드에 들어섰지만, 남북불교교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새해에는 개성 영통사를 중심으로 북한 불교계와 다양한 교류를 기대해봅니다. 신년의 경우는 초조대장경 〈첨품묘법연화경〉 판각불사를 4월 경 회향할 예정입니다. 고려 초조대장경 인경본을 다량 소유하고 있는 일본 남선사(南禪寺)의 도움을 받아 판각에 들어간 지 3년 만에 마무리되는 셈인데, 개인적으로도 기대가 큰 불사입니다.

△사실 지난 한 해 불교계의 대표적인 종단들이 내홍을 겪으며, 불교의 이미지를 실추시킨 바 있습니다. 종교인구조사에서 불교 인구가 크게 감소됐다는 뉴스가 나온 지 1년이 되지 않아 벌어진 불미스러운 일로 불자들의 실망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천태종은 듬직하게 제2 종단다운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불자들의 입장에서 불교에 대한 실망스런 소식이 들려올 때 어떻게 하면 신심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사실 어떤 종교든 유사한 일은 일어납니다. 수행자도 성직자도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불미스런 일의 근절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또한 불자들은 사찰을 다니면서 주지 스님을 자주 대면하다보니, 믿고 의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다 해당 종단이나 사찰, 스님에 대한 나쁜 소문을 듣게 되면 사찰에 발걸음을 끊게 되지요.

그런데 이런 일이 생길 때 불자들은 자신이 사찰을 찾는 주된 목적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주지 스님을 뵙고 도반들과 친분을 돈독히 하는 건 부수적인 일입니다. 사찰을 참배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자신의 수행정진입니다. 〈열반경〉을 보면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마지막 설법을 들려주는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의지하여라. 진리를 등불삼고 의지하여라. 이외 다른 어떤 것도 의지해서는 안 된다. 너희는 무슨 일에나 진리대로 행동하여라. 비록 육신은 죽더라도 깨달음의 지혜는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은 덧없다.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여라.”

저는 이 구절을 자주 되뇌곤 하는데, 불자 여러분들도 이 가르침을 매일매일 되뇌었으면 합니다. 사찰에 가서 법회에 참석하는 이유는 평소 자주 접하지 못하는 부처님의 말씀을 법사 스님을 통해 전해 듣기 위함이지, 그 스님을 뵙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또 부처님께 엎드려 절을 하고, 불전에 등(燈)을 밝히는 목적은 부처님처럼 수행정진 해서 해탈을 이루겠다는 스스로에 대한 다짐입니다. 이런 이치를 명심한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굳건한 신심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신심을 말씀해주셨는데요, 그렇다면 올바른 신심이란 무엇일까요? 한자로 신심(信心)이란 단어는 ‘믿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믿음의 대상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신심이란 베풂과 그 과보를 믿는 것이요 / 선행과 선행의 과보를 믿는 것이요 / 악행과 악행의 과보를 믿는 것이다. 이 신심을 얻으면 깨끗한 계율을 닦아 익히고 / 은혜로이 베풀기를 항상 즐기며 / 지혜를 잘 닦을 수 있게 되느니라.[是信心者 信施施果, 信善善果 信惡惡果, 以得信心 修習淨戒, 常樂惠施 善修智慧]”

이 경전 구절에서 보듯이 불자가 믿어야하는 대상은 바로 인과법(因果法)입니다. 불자라면 이미 잘 알고 있겠지만, 선행을 하면 선한 과보를 받고 악행을 저지르면 악한 과보를 받는다는 게 인과법의 요지입니다. 이런 진리에 대한 흔들림 없는 확신이 바로 신심(信心)입니다. 그러니 불자라면 누구나 평소 나쁜 행동을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고, 선한 행동을 많이 해 육도윤회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수행 정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요즘 정부가 각종 부양책을 펼치고 있지만, 경기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는 청년 실업의 문제, 사회의 불평등 문제, 출산율의 저하 등은 사실 동일한 맥락에서 발생한다고 여겨집니다. 그렇다보니 물질적인 풍족함에 비해, 국민들이 체감하는 행복지수는 너무나 낮습니다. 이런 세상을 사는 우리의 마음가짐에 대해 들려주십시오.

글쎄요. 달은 차면 기울고, 기운 후에는 다시 차오릅니다. 그것이 세상의 순리입니다. 조금 힘들고 어렵더라도 ‘시역과의(是亦過矣,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마음으로 살아가길 당부 드립니다.

덧붙이자면, 우리는 돈을 벌면 저축을 합니다. 저축을 하는 이유는 어려운 상황을 대비하기 위함입니다. 앞서 신심과 인과법을 얘기할 때 언급했듯이, 복은 스스로 짓는 것입니다. 이 복을 많이 짓되, 저축한 돈을 아껴 쓰듯이 복 또한 아껴 쓰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석복(惜福, 복을 아껴 씀)’을 하면 복진타락(福盡墮落)을 막을 수 있습니다. 현재가 어렵다고 복 짓기를 주저하면, 미래에 쓸 복이 남지 않게 됩니다. 어려울수록 복을 많이 짓고 아껴 쓴다면 돈 많은 부자는 못될지라도, 복 많은 부자는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귀한 시간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새해를 맞아 불자들에게 당부의 말씀 한 가지만 들려주세요.

한 가지만 당부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요즘 사람들을 보면 너무 조급하게 사는 것 같습니다. 사회의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스마트폰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듯합니다.

스마트폰은 분명 편리한 도구지만, 많은 사람들을 가족과 친구로부터 단절시킵니다. 또 인간성(人間性)을 메마르게 합니다. 대화가 단절된, 불통의 사회를 만드는 주범이라는 말입니다. 예전에는 텔레비전을 ‘바보상자’라고 불렀는데, 요즘은 스마트폰이 우리를 바보로 만드는 것 같습니다.

수행은 내면에 대한 깊은 성찰(省察)에서 출발합니다.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면 자비심이 싹트고, 성숙한 사람으로 변화합니다. 그런데 스마트폰은 자꾸 단세포적인 사고를 하게 만듭니다. 즉, 수행에 걸림돌이 되는 셈입니다. 현명한 불자라면 자극적이고, 단편적인 정보를 전하는 스마트폰을 멀리 하고, 항상 의식이 명료하게 깨어있도록 해야 합니다.

스마트폰을 멀리하면 자신의 내면이 보다 스마트해질 수 있다는 걸 새해에는 모든 불자들이 깨닫고 실천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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