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ㆍ1운동 100주년
독립선언문 속 새 세상
남북이 함께 만들자

3·1절 100주년의 해가 밝았다. 1919년 전국의 골골샅샅에서 일어나 대한민국 헌법 전문을 비롯해 초중고 교과서에 모두 기술될 만큼 한국 근현대사의 전환점을 이룬 사건이다. 역사적 위상이 또렷하기에 자칫 그 운동의 참뜻을 잊어버리기도 쉽다.

3·1운동을 단순한 ‘만세 운동’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실상은 사뭇 다르다. 운동 초기 석 달 동안에 7500여 명의 조선인들이 학살당했다. 참혹한 학살극을 벌였음에도 쉼 없이 ‘독립 만세’의 운동이 이어졌던 사실로 미루어 학살당한 조선인들의 숫자는 그보다 훨씬 많았을 터다.

하나뿐인 생명을 기꺼이 바친 선인들, 그들이 꿈 꾼 세상은 어떤 나라였을까? 독립선언문을 찬찬히 읽어보면 선인들이 꿈 꾼 세상의 윤곽이 드러난다.

선언문은 “조선이 독립국이고 조선 사람은 자주적 민중임을 선언”하고 “이를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인류 평등의 큰 뜻을 밝히며, 자손만대에 일러 민족자존의 정당한 권리를 길이 누리게 하려는 것”이라고 천명했다.

단순히 자주민으로서 조선인의 ‘정당한 권리’만 강조한 게 아니라 ‘인류 평등의 큰 뜻’을 강조한 사실이 눈길을 끈다. 그날 거리로 나와 목숨을 바친 사람들의 꿈이 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있는 현실에서 과연 얼마나 실현되었는가를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독립선언문이 가장 강조하며 제시한 ‘자주’를 보자. 21세기인 지금도 ‘자주인 선언’은 여전히 절실한 과제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물러갔지만 여전히 우리는 남과 북으로 분단된 채 온전한 의미의 ‘자주’를 이루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자주’라는 말만 들어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서로를 적대시하고 있는 오늘의 살풍경을 1919년 3월의 정신으로 돌아가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과연 3·1운동에 나선 선인들은 그 뒤 당신들의 후손들이 남과 북으로 갈라져 수백 만 명을 죽이고, 그 참혹한 전쟁 이후에도 내내 적대시하며 천문학적 숫자의 군사비를 서로 탕진하고 있는 못난 현실을 상상이라도 했을까?

둘째, 전국 골골샅샅에서 전개된 3·1운동의 열매로 세워진 ‘임시정부’는 9년 전에 망한 ‘황제의 나라’인 대한제국이 아니라 ‘민중의 나라’인 대한민국을 꿈꾸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한 사람들이 오늘날처럼 분단된 남쪽만의 국가를 염두에 두었을 리는 전혀 없었을 터다. 더 큰 문제는 분단된 남과 북의 민주주의가 각각 온전한가에 있다.

과연 남쪽의 대한민국이나 북쪽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3·1운동 직후 세워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평등’ 꿈과 얼마나 일치할까? 남쪽에서 갈수록 커져가는 빈부 차이, 북쪽의 당 고위관료와 일반 민중 사이의 불평등은 엄연한 현실이다.

3·1운동이후 100년이 다가오는 지금도 그날의 꿈이 온새미로 이뤄지지 않는 오늘, 우리는 무엇을 해야 옳은지 조용히 성찰할 필요가 있다. 독립선언문이 단순히 마음의 정성만 추상적으로 요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온다. 선언문은 “2천만의 사람마다 마음의 칼날을 품어 굳게 결심”하라고 명토박아 촉구했다.

독립선언문이 선언한 새로운 세상은 아직 오지 않았다. 남과 북 7700만 가슴마다 더 나은 나라를 만들자는 새로운 다짐이 필요한 해, 2019년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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