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종  도정  종의회의장더위가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니 이제 조금만 더 지나면 시원한 가을바람과 함께, 농민은 몇 달 동안 애써 가꾼 농작물을 거두는 수확의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고 녹음이 짙었던 숲은 그 색깔을 바꾸어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줄 것입니다.

세상은 이렇게 단 한 순간도 그대로 머물지 않고 변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삶이 변하고, 산천초목도 변합니다. 그러나 세상 만물이 변하는데, 단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이 바뀌어도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단 한 가지, 그것은 바로 부처님께서 깨달아 우리들에게 전해주신 진리의 가르침인 불법(佛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약 이 진리가 담겨 있는 경전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베껴 쓰고 남에게 설한다면, 그 공덕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묘법연화경》〈법사공덕품〉에서 상정진(常精進)보살에게 말씀하십니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 법화의 가르침을 받아 지녀서 읽고 외우며 설하거나 베껴 쓰면, 이 사람은 눈[眼]의 800 공덕과 귀[耳]의 1,200 공덕, 코[鼻]의 800 공덕과 혀[舌]의 1,200 공덕, 몸[身]의 800 공덕과 뜻[意]의 1,200 공덕을 얻을 것이요, 이 공덕으로 육근(六根)을 장엄하여 모두 다 청정해질 것이오.”

불자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이른바 신통을 얻고 싶어 합니다. “신통력을 갖추고 있다”며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돈을 모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신통력은 부처님이 설하신 진리를 늘 가까이 모시고 실천한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거의 모두 삿된 속임수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법화경》을 받아 지니거나 읽거나 외우거나 남에게 설하거나 베껴 쓰면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오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첫째, 천안(天眼)을 얻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부모에게서 받은 육안(肉眼)으로 삼천대천 세계의 모든 기세간(器世間)을 다 볼 수 있고, 또 삼계 중생들이 업을 짓고 그 과보를 받은 일을 다 보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천이(天耳)를 얻지 못했다 하더라도 부모에게서 받은 보통 귀로 삼천대천 세계의 모든 소리를 다 듣고서 분별해 알 수 있습니다.

셋째, 부모에게서 받은 육신의 코로 삼계의 모든 냄새를 다 맡고 일일이 분별해 알 수 있습니다.

넷째, 부모에게서 받은 육신의 혀로도 미묘한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또 어떤 음식이든 그 혀에 닿기만 하면 모두 훌륭한 맛으로 변합니다.

다섯째, 청정한 법신(法身)을 얻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 몸에 삼계 중생들의 생사의 모습과 성현들의 설법 장면 등이 거울에 비치듯 나타납니다.

여섯째, 부처님의 지혜는 얻지 못했다 하더라도 모든 가르침을 다 알게 되고, 가르침에 있는 그대로 사유하고 설하게 됩니다.

불자 여러분!
위에서 살펴본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만약 우리가 《법화경》의 가르침을 수지독송(受持讀誦)할 경우 비록 여섯 가지 신통력[六神通]을 얻지 못했단 하더라도 우리가 갖추고 있는 이 평범한 육신으로 그 신통력에 버금가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이 이러하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여러분들을 위한 길인지 쉽게 알게 될 것입니다. 신통력을 얻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쉬운 길인데 우리가 이를 애써 무시하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앞에서 ‘쉬운 길'이라고 하였지만, 여기에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단 한 글자를 읽고 쓰고 외우더라도 정성이 지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국 당나라 때 실제로 있었던 다음과 같은 일을 보면, 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게 될 것입니다.

서기 631년 중국 당나라에 호원궤(狐元軌)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불법을 깊이 믿어 행실이 바르고 진실했습니다. 어느 날 크게 발심하여 경전을 베껴 쓰는 공덕을 닦기 위해 《법화경》 등을 경전을 한 질씩 베껴 쓰기로 하였습니다.

혹시 한 글자라도 잘못 쓸까 염려되어 글씨 쓰는 사람에게 사경을 하게 한 뒤 ‘정확하게 베꼈는지' 스님에게 확인을 받았고, 사경이 끝나자 별장에 모셔 두었습니다.

어느 날 외출했다가 돌아오니, 이웃집에서 일어난 불이 옮겨 붙어 별장이 다 타 버리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어이없어하며 한탄을 하다가 ‘혹시' 하는 생각에 사람을 시켜 잿더미를 헤쳐 보니 신통하게도 경전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종이 색깔도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다만 경전의 제목에 불에 붙어 검게 그을려 있었을 뿐입니다.

이를 본 하현령은 “처음에 사경을 할 때는 정성을 다 해 글씨를 썼는데, 사경을 하는 사람이 바빠서 나중에는 몸을 정결하게 하지 않고 제목을 쓰더니 이렇게 되었구나.”라고 중얼거렸습니다. 이 일화를 보면, 사경할 때의 마음가짐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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