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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 힘주고 당당함을 잃지 말자[특집] 편지, 마음을 배달합니다

인생은 장기적 승부잖니?

영모야!

내가 정년퇴직을 한지도 벌써 두 해 째구나. 네가 졸업한지는 몇 년 째라고 했지? 이제 너도 아주 젊은 나이라고는 못하겠구나. 준영이의 결혼식에 주례를 맡았던 덕분에 너희들을 만나 참으로 반가웠다. 너희들 대학시절 추억 속에 있는 내 자리를 확인하면서 참으로 감회도 많았구나. 그러던 가운데 너희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듣게 되고, 너희들의 고민도 들으면서 주제넘게 내 이야기를 많이 한 것 같아, ‘선생 버릇은 버리기 힘들구나.’ 싶어 돌아와 혼자 웃었다.

너희들이 결혼하기도 그리 쉽지 않고, 또 아이 낳기도 두렵다는 이야기를 할 때, 내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했더니 너희들이 매우 신기해했지? 안사람 자취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던 이야기, 애들은 저 먹을 것은 다 가지고 태어난다고 생각하고, 애를 낳는다는 것에 큰 두려움을 가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할 때 다들 재미있게 웃었었지? 그런데 그 때 네가 한 이야기가 가슴에 남아. 너희들 세대의 생각은 하지도 않고 무책임하게 주절거린 것 같은 후회가 들었단다. 요즈음은 SNS 시대라서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 너무도 잘 드러나서 오히려 어렵다고 했지? SNS에는 모두 자랑스러운 모습만 올리기에 그것에 비교를 하면서 스스로 어렵게 사는 것 같다고도 했지. 그 이야기들이 참으로 가슴에 와 닿는구나. 우리 때는 무식했기에 용감할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들고.

그렇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 세대와 너희 세대의 비교 속에, 오히려 문제의 본질이 있지 않나 싶구나. 무식해서 용감한 것도 좋지 않고, 너무 잘 알아서 힘든 것도 문제라면 그 사이의 중도(中道)를 찾는 것이 답이 아닐까? 성에 대한 지식이 없어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성에 대한 지식이 너무 넘쳐나 오히려 문제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소설이나 영화에 나오는 성은 저렇게 아름답고 황홀한데 나는 왜 이런가 하는 생각에 오히려 성생활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지? 네가 한 이야기 속에 너는 답을 이미 지니고 있더구나. SNS에 올리는 것은 모두 잘난 모습이고, 서로들 잘난 모습들만 올리다, 결국 서로의 잘난 모습에 압도되고 위축되는 악순환! 결국 어느 누구부터라도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하지 않겠니? 우리 모두 겉모습에 현혹되지 말고 담담하게 실상을 보기로 하자꾸나. 그렇게 요란스럽고 잘난 삶들도 결국 나처럼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그 속에 감추고 있다는 것을 직시하자꾸나.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우리의 출발점 아니겠니? 남의 삶을 베껴 살 수는 없는 노릇이지. 또 베낄 수 있다 해도 그것이 정답일 수도 없고. 정답이 없기에, 내 삶의 과정을 통해, 나의 삶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 가는 것이 바로 인생이란 말이 되는 것이지. 그런데 우리 주변에 모범 답안이라고 하는 것들이 너무도 넘쳐나고, 그것에 현혹되어 그것을 베끼려 허둥대다 지쳐버리는 모습을 보인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이냐? 그날 결혼식 주례사에서 “나를 위해서 준비된 남편, 나를 위해 준비된 아내는 없다.”는 말을 했었지? 그리고 결혼은 정답을 찾은 것이 아니고, 결혼생활을 통해 나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과정이라는 말도 했고. 같은 이야기이지. 우리는 끊임없이 선택을 하지만, 그 선택이 애초부터 정답이라는 전제 아래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란다. 애초에 너무도 터무니없는 선택을 하면 안 되기에 최대한 신중한 선택을 해야 하겠지. 그렇지만 아무리 신중하게 선택해도 그것이 정답이라고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 않니? 그 뒤의 삶을 통해 자신의 선택을 정답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 바로 우리의 삶이 아닐까 싶구나.

“이게 정말 정답일까?”하는 갈등 속에서 너무 망설이지는 말자꾸나. 조금 의심스런 부분도 있고, 우려되는 점들도 있지만, 어차피 인생은 딜레마 아니냐? 이것이 만족되면 저것이 불만이고, 저것이 만족되면 이것이 불만인 것! 그것이 본디 삶의 모습이라면 좀 용감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오히려 내 선택을 정답으로 만들어가겠다는 용기를 내고, 그러한 긴 승부를 끌고나가는 힘을 키우는 것이 필요할 듯하구나. 그리고 그 긴 승부를 생각한다면 오히려 어깨가 무겁기는 하다만, 지금 당장에 기죽어 우물쭈물하는 것보다 그것이 백배 낫지 않을까?

“그렇다면 남 눈치 보지 말고 내 생각대로 살면 된다는 말인가요? 자기만 만족하면 된다는 것인가요?”하고 물어올 것 같구나. 영모 너는 궁금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바로 질문을 하곤 했지? 당연히 그럴 수는 없는 일이지. 자기만 만족하면 되는 일이 어디 세상에 있다더냐?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만 증명하는 것이 아니지. 세상에 증명을 해야 한다는 점이 정말 어려운 일인 것이지. 혼자에게만 증명하면 된다면 자기 도피도 있을 수 있고, 자기 기만도 있을 수 있고, 자기 최면도 있을 수 있고……. 하하.

세상에 떳떳하게 “나는 이런 삶을 살았소!”하고 말할 수 있어야 되는 것 아닐까 싶지만, 그건 또 너무 힘들 것 같지? 그렇게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니? 너나 나나 다 조금씩 불성실했다는 부끄러움을 지니고 사니까 말이야. 그런 건 좀 눈감고 넘어가기로 하고. 아무튼 자기 만족에만 그쳐서는 안 되고, 주변과 세상에 객관적인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점은 참으로 중요한 요소란다. 자기 자신이 패배감에 젖지 않고 최소한의 당당함을 지녀야 할 것, 그리고 그것이 주변의 객관적인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 이 두 측면을 만족시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겠지. 중요한 것은 그러한 일을 장기적인 승부로 보고, 배에 힘주고 나서려는 지금의 당당함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란다.

장기적인 승부라 하니, 참으로 나도 그러한 사실을 절실히 느끼고 있단다. 그 나이에 웬 장기승부 타령이냐고? 정년퇴직 할 때 정말 조금 한숨이 나오더라. 내가 대학에 교수로 봉직한 세월이 34년이었지. 그런데 요즈음 평균 수명이 100세라고 하지 않니? 내가 얼마를 살지는 알 수 없지만, 평균 수명으로 말하면 앞으로 대학 교수로 봉직했던 세월 이상을 살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니? 정말로 쉬운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더구나. 그리고 다시 삶을 설계해야 하고, 또 그 삶을 증명해야 하는 과정이 있다고 생각하니 너희들에게 쉽게 말했던 이야기들이 이제 절실한 나의 문제로 다가오더구나. 너희들이 보기엔 다 산 것 같은 나도 지금부터 긴 승부를 생각해야 하는데 하물며 너희들이야 어떻겠느냐?

내 나이에는 그것이 부담스럽다고 말해도 흉이 아니겠지? 그렇지만 나도 그것을 부담스럽게 여기지 않고 당당하게 맞아 보려고 한다. 긴 승부를 위해 지금도 여러 가지 준비도 하고 실행도 하고 있지. 그러니 너희들 나이 때라면 당연히 앞으로 주어진 긴 세월을, 지금 당당할 수 있는 힘의 원동력으로 삼아야 되지 않겠니? 내가 나의 삶을 증명해 나갈 긴 여정!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날들이 펼쳐져 있다고 생각해야 하지 않니? 좀 늦은 것 같더라도 그것을 만회할 충분한 시간이 있는 것이고. 그러니 배에다 힘주고 나가 보자꾸나! 긴 세월 오랫동안 힘주고 나가야 하니까, 너무 힘주지는 말고! 하하.

역시 이런 저런 잔소리로 선생 티내고 말았지? 그건 참으로 어쩔 수 없나보다. 너희들 사랑해서 그런 것이라고, 좋게 봐주렴. 그리고 혹 다음에 볼 때는 좀 더 씩씩한 모습으로 만나자꾸나. 노익장(老益壯)이라는 말이 있지? 그건 원래 노당익장(老當益壯)이란다. “늙을수록 씩씩해져야 한다.”는 말이지. 삶의 무게가 지친 것으로 드러나지 않고 그만큼의 씩씩함으로 드러나기를 바란다면 욕심일까? 아무튼 나 자신도 너희들 만날 때마다 너희들에게도 나의 삶을 증명하려는 마음을 갖고 살아가련다.

그러니 너희들도……, 알겠지?

성태용

건국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 ·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학술연구진흥재단 인문학단장, 건국대 문과대 학장, (사)우리는선우 이사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 〈주역과 21세기〉, 〈오늘에 풀어보는 동양사상〉(공저) 등이 있다.

글·성태용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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