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의 산, 그 옛 이야기(274호)

지리산(智異山)은 높이 1,915m, 동서 50㎞, 남북 32㎞, 둘레 320㎞에 달하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이다. 방장산(方丈山)· 두류산(頭流山)이라고도 불렸다. 행정구역상 전라남도 구례군, 전라북도 남원군, 경상남도 산청군 · 함양군 · 하동군 등 3개 도 5개 군에 걸쳐 있다.

1967년 12월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되었으며, 공원 총면적은 440.485㎢로 설악산국립공원의 1.2배, 한라산국립공원의 3배, 속리산국립공원의 1.5배, 가야산국립공원의 7.5배에 달한다. 지리산은 금강산 · 한라산과 함께 신선들이 내려와 놀았다는 전설이 있어 이들 세 곳을 삼신산(三神山)· 삼선산(三仙山)이라고도 한다.

여기에 묘향산을 더해 4대 신산, 다시 구월산을 더해 5대 신산 또는 5악이라 하여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지리산은 〈정감록〉 신앙에 연유된 십승지(十勝地)의 하나이기도 하다. 대한제국 말기에는 농민운동에 실패한 동학교도들이 피난하여 살았으며, 이들 일부가 신흥종교를 개창하여 오늘날 각종 민족종교의 집산지를 이루고 있다. 최고봉인 천왕봉(天王峰:1,915m)을 주봉으로 반야봉(盤若峰:1,732m)· 노고단(老姑壇:1,507m)이 대표적인 3대 고봉이다.

지리산에는 큰 절이 있었다. 지금은 이름이 전하지 않지만 사람들의 말로는 ‘어둔절’이라고 불렀다. 겹겹 산으로 둘러처져 동그만 하늘만 빠꼼히 보이는 절이라 아침 해가 늦게 뜨고, 저녁 해는 일찍 졌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어둔절은 너무 너무 컸다. 그래서 스님들도 많았다. 너무 너무 많았다.

섣달 그믐날 저녁이었다. 칠흑 같은 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지리산을 훑고 가는 밤바람 소리만이 간간히 들렸다. 겨울 밤새의 울음소리도 멎은 자정 무렵이었다. 갑자기 서쪽 하늘에서 밝은 빛이 쏟아져 내렸다.

“빛이다!”

누군가가 그렇게 외쳤다. 방에서 공부하던 스님들이 바깥으로 몰려 나왔다. 스님들은 모두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에는 달도 없었고, 별도 없었다. 오직 태양보다 밝은 빛이 어둔절 하늘 한복판에 떠 있었다.

이윽고 그 빛 한가운데서 선녀가 나타났다. 선녀는 하늘을 가릴 정도로 긴 오색치마를 입고 있었다. 그러고는 놀라 하늘을 쳐다보고 있던 한 스님을 치마폭에 감싸서 유유히 사라졌다. 눈 깜짝할 순간이었다.

“야아, 저 스님은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

절 마당에 나와 있던 모든 스님들은 그 스님이 하늘로 올라간 쪽을 향해 합장하며 부러워했다. 그 후로 그런 일은 해마다 반복되었다. 어둔절 뿐 만 아니라 어둔절에 딸린 작은 암자에까지 소문이 돌았다.

깊숙한 산속 암자에서 공부하던 스님들도 어둔절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누구나 신선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이 많이 먹은 스님 순서로 하늘로 올라간다는 말이 떠돌았다. 나이가 적은 스님들은 탄식했다.

“스님은 나이가 많으니까 내년에 올라가겠다. 난 나이가 어려서 가고 싶어도 못 가. 아이구, 나는 언제 나이를 먹어서 하늘로 올라갈까?”

그래서 나이 먹은 스님들은 섣달 그믐날을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선녀의 치마폭에 싸여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갈 수 있으니 말이다.

어둔절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스님의 법명은 운학이었다. 구름 위에 떠 있는 한 마리 학이라는 뜻을 담고 있었다. 다른 스님들은 운학 스님이 그 이름대로 하늘로 올라가게 되었다고 몹시 부러워하였다.

운학 스님은 그야말로 부모 형제가 없는 스님이었다.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지리산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처음에는 화전민들 틈에 끼여 살기도 했지만, 세상에는 뜻이 없었다. 그가 바라는 것은 단지 이 세상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스님은 온갖 불경을 환히 외울 정도로 부처님 공부에 전념하였다. 그 덕분으로 그는 어둔절에서도 제일가는 율사가 되어 있었다.

운학 스님은 다음 차례에 하늘로 올라갈 생각을 하니 함께 공부했던 친구가 생각났다. 잠시 어둔절을 떠나 안동 땅 조그만 암자에서 혼자 공부할 때 과거시험 공부를 위해 서울에서 온 유생과 친구의 인연을 맺었던 것이다. 그 친구는 서울에서 정승을 하고 있었다. 운학 스님에게는 그 친구가 유일한 속세의 인연이었다.

하늘로 올라가면 그 친구를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 같았다. 스님은 행장을 꾸려 머나먼 서울로 떠났다. 거의 한 달 이상이나 걸려서 스님은 친구의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반갑게 맞아 주었다. 스님은 자리에 앉자마자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 어둔절 스님들은 섣달 그믐날이면 신선이 되어서 하늘로 올라가네. 그런데 아무렇게나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나이순으로 하늘에 올라가는데 다음이 내 차례일세. 그래서 내가 마지막으로 자네를 보기 위해 이렇게 올라왔네.”

친구는 운학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한참 생각을 하더니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하아, 이상한 일이네.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겠나?”

“섣달 그믐밤이면 하늘에서 빛이 쏟아지지. 그 빛 한가운데에서 선녀가 땅으로 내려오면서 절 마당 한 가운데에 앉아 있는 스님을 치마폭에 싸서 하늘로 데려가지.”

“그럼, 이번 섣달그믐에는 자네가 그 마당 한가운데 앉아 있을 참인가?”

“여부가 있겠나.”

스님은 아주 흐뭇한 표정으로 친구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나 친구는 스님과는 반대로 어두운 얼굴을 하고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래도 몇 가지 내키지 않은 점이 있어. 자네는 그 마당에 나가지 않는 게 좋겠네.”

“그게 무슨 소린가! 평생 동안 쉬지 않고 공부한 것도 모두 이 고통스런 삶에서 벗어나 하늘로 올라가기 위해서였는데. 난 반드시 하늘로 올라갈 걸세.”

친구는 굳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늘로 올라간 스님이 신선이 되었다는 걸 누가 확인했나?”

운학 스님은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물러설 수는 없었다.

“신선이 되었다는 것은 틀림없어.”

친구는 운학 스님을 더 이상 설득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생각다 못한 친구는 며칠간 스님을 자기 집에 머무르게 하였다. 친구는 그동안 삼베 껍질을 말려가지고 장삼을 하나 만들었다. 그리고는 그 장삼에다가 비상을 섞었다. 장삼은 스님들이 입는 긴 옷, 비상은 독약이다. 그리고 운학 스님에게 말했다.

“자네는 하늘로 올라갈 때 반드시 그 옷을 입고 있게. 그러면 하늘로 올라가는 도중에도 귀신들이 덤벼들지 못할 테니까.”

스님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캄캄한 어둠 속에 들어가거든 절대로 의식을 놓아서는 안 돼. 한 이틀 정도만 견디면 되네. 부디 내 말을 잊지 말게. 하늘로 올라가 신선이 된다는 들뜬 마음으로 의식을 놓으면 큰일 나네. 알겠지?”

친구는 스님에게 신신당부를 하였다.

“고마우이. 내 하늘로 올라가기 전에 꼭 이 옷을 입고 있음세.”

다시 어둔절로 돌아온 그 날부터 운학 스님은 친구가 해 준 장삼을 입고 절 마당을 서성거렸다. 시간은 왜 그렇게 더디게 가는지, 스님의 마음은 벌써 신선이 되어 하늘에 가 있을 지경이었다.

“스님은 좋겠어요.”

“아암 좋구 말구요.”

“하늘에 올라가면 무얼 하실 겁니까?”

“글쎄. 무얼 할까?”

“우선 하늘에만 열린다는 커다란 천도복숭아를 따먹을까?”

스님은 기분이 좋아 어쩔 줄을 몰랐다.

드디어 운학 스님이 그토록 기다리는 섣달 그믐날이 되었다. 스님은 아침부터 추운 줄도 모르고 절 마당 한 가운데 떡 버티고 서 있었다. 해가 지고 사방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다른 스님들은 모두 방안에 숨어서 선녀가 나타나기만을 숨 죽여 기다리고 있었다. 산골짝 골짝을 휘돌아나가는 찬바람만이 절 마당을 휩쓸고 지나갔다.

드디어 서쪽 하늘에 빛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그 빛이 땅으로 쏟아졌다. 스님들은 일제히 염불을 하기 시작했다. 스님들의 염불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는 번개와 천둥이 쳤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치 세상을 바꾸려는 듯 억수같이 내렸다. 스님들은 무서워서 감히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다음날 날이 밝을 때까지 비바람은 계속되었다. 날이 밝자 스님들이 조심스럽게 하나 둘 절 마당으로 나왔다.

“그래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군.”

스님들은 사방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세상은 예전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다만 운학 스님이 보이지 않았고, 우물가의 물색이 달랐다. 물색이 붉었다.

“이상하네. 왜 물색이 붉지?”

스님들은 붉은 물이 흘러내리는 곳으로 계속 가보았다. 붉은 물은 스님들이 ‘배암소’라고 하는 커다란 웅덩이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 배암소에 용이 못 된 커다란 이무기가 한 마리 죽어 있었다. 허옇게 배를 드러내놓은 채.

스님들은 그 이무기의 배를 갈라봤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이무기 뱃속에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 줄 알았던 운학 스님이 죽어 있었다. 운학 스님이 입은 독 묻은 장삼 때문에 이무기가 죽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섣달 그믐날이면 내려오던 선녀는 이무기가 조화를 부린 것이었다. 그리고는 한 사람 한 사람씩 어둔절의 스님들을 잡아먹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 지리산 뱀사골에 있는 스님들은 하나둘 어둔절을 떠났고, 스님들이 없는 빈 절은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그래서 뱀사골 주변에는 절이 세워지지 않았다. 지금은 어둔절에 대한 자료조차 남아있지 않다.

 

우봉규

작가. 〈황금사과〉로 동양문학상을 받은 뒤 〈객사〉로 월간문학상을, 〈남태강곡〉으로 삼성문학상을, 〈갈매기야 훨훨 날아라〉로 계몽사 아동문학상을 받았다. 이후 희곡 〈눈꽃〉이 한국일보사 공모 광복 50주년 기념작에 당선됐다. 2001년과 2002년 서울국제공연제 공식 초청작 〈바리공주〉, 〈행복한 집〉 발표 이후, 우리나라 희곡 문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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