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답답하다. 분노가 치밀기도 한다. 동국대 신정아교수의 가짜 박사학위 파문 때문이다.

1천6백년 역사의 불교 조계종과 개교 1백년의 동국대가 일천한 12년 역사의 광주비엔날레만도 못하니 말이다. 광주비엔날레 재단은 사건이 붉어지자 지난 18일 이사장을 포함한 이사진 28명이 신교수의 공동감독 추천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전원 사퇴하고 그를 업무 방해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동국대를 포함한 불교계는 어떤가. 속 시원한 참회의 말 한마디가 없다. 임용 당시의 총장도 신교수의 박사학위를 변호하던 재단이사장도 명쾌한 사과나 참회가 없다. 고작 홍기삼 전총장의 ‘실수'였다는 해명뿐이다. 그 것도 어설픈 자체조사위원회를 통한 간접 화법의 변명(?)이었다. 또 동국대는 뒤늦게 23일에야 떠밀리듯 신교수를 검찰에 고소해 광주비엔날레를 뒤따른 모양이 되고 말았다. 검찰 고소는 누가 봐도 동국대가 먼저 했어야 맞는 순서다.

광주비엔날레재단의 사태 수습은 극히 상식적인 것이다. 부처님의 지혜를 빌린 것도 아니다. 그저 평상심의 양식(良識)일 뿐이다. 그런데 부처님의 지혜를 앞세우는 동국대와 불교계는 발뺌과 변명뿐이니 이 무슨 작법인가.

이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는 불교계고 나가서는 나라다. 개체적으론 동국대·불교 조계종·광주비엔날레지만 동국대가 불교 종립대고 사건의 본말이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의 종단 정치 역학구조에 귀결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사건은 국민소득 2만 달러로 선진국 문턱에 섰다는 나라의 명예까지도 실추시켰다. 외신에 따르면 일본은 이 사건을 교훈으로 받아들여 문부성이 ‘가짜 해외박사 조사'를 하기로 했다 한다. 또 국내에서는 서울 강남 학원 강사 3천여명의 ‘허위 학력'여부를 조사한다고 한다.

사건의 파고가 이제 과녁을 정조준해 화살을 날리고 있다. 재조와 재야, 주류와 비주류로 갈리어 대결구도를 형성해온 조계 종단의 정치판이 이 사건을 계기로 대회전을 벌일 태세다. 지난 주 종단 차원의 진상조사위가 구성됐고 종회의 3개 종책모임(계파)이 성명을 발표, 재단이사진의 사퇴와 개혁을 촉구했다. 이들 종회 계파가 정조준한 과녁은 이사장이다.

문제는 신교수의 임용에 외압과 비리가 없었는가다. 동국대 진상조사위의 조사 결과는 “없었다”다. 글쎄, 갖가지 소문이 무성하니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제 외압과 비리문제는 검찰 조사를 통해 밝혀질 수밖에 없다. 불자들로서는 오직 조사 결과처럼 “없었다”기를 바랄 뿐이다.

검찰 조사에 앞서 불교계 스스로가 부처님 지혜를 빌어 사태를 수습할 수는 정녕 없는가. 길은 있다. 당사자들이 불법에 따라 모두 마음을 비우고 본래의 청정심으로 참회하면 된다.

먼저 미국으로 도피(?)한 신정아교수가 떳떳이 귀국해 양심 고백을 하고 사죄해야 한다. 여기에는 동국대는 물론 그를 외호하던 사람들이 적극 나서 귀국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다음은 동국대가 ‘사즉생(死卽生)'의 결단으로 사건의 실체를 털어내놓고 화두 타파하듯 의혹 덩어리들을 깨부수어야 한다. 그 다음으로는 조계종단의 진상조사위원회가 성역 없이 사태의 전말을 밝히고 관련자들을 대중 앞에 참회시키면 된다.

종국적인 사태의 수습은 종단의 정파적 이해관계를 넘어 동국대 발전에 기여할 승려 이사들을 선출하는 풍토를 조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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