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보도를 보면 60대의 한 여인이 고려대 의대에 400억 원대의 재산을 기증하였다고 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놀라는 것은 단순히 재물을 기증하였다는 사실에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선 기증 액수가 엄청난데 대한 놀라움이겠고 외면적으로 아무 특별한 연고가 없는 대학 병원에 기증하였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일 것입니다. 그 돈을 보시한 이는 집 근처에 있어서 언젠가 입원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던 인연을 근거로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이 큰 재산을 가벼운 마음으로 ‘여러 사람의 병고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마음만으로 이 대학에 기증했다고 합니다.

따지고 보면 400억 원이란 돈은 보통사람들이 평생 벌어도 벌수 없는 그런 돈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돈의 크기에 놀라면서 그런 엄청난 재산을 남에게 아무 보답을 기대하지 않고 주는 이의 마음 씀에 기가 죽을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평생 벌어도 만질 수 없는 그런 재물을 어떤 사람은 단지 한번 마음을 내어 주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무능과 박복함에 대해 상당한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런 큰 보시를 하는 이의 재복에 대해 얼마간의 시기심마저 느낄 것도 같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불자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통해 이런 큰 보시를 하는 이의 선행에 대해 함께 기뻐하고 함께 즐거워하는 마음을 가져야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큰 재산을 가질 수 있는 부자가 그냥 된 것은 아니라고 하십니다. 부처님께서는 ‘지장경'에서 “대자비(大慈悲)의 마음을 가지고 겸손한 마음으로 웃음을 띠고서 어려운 중생에게 두루 나누어 주는 행을 한 사람은 백천생을 항상 칠보로 구족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자비심을 가진 보시행(布施行)이 곧 부자의 삶을 결과했다는 말입니다. 인과응보(因果應報)와 업(業)을 믿는 불자들은 부처님께서 대자비행을 권하시는 뜻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처님은 ‘월등삼매경(月燈三昧經)'에서 “질투를 떠나 마음으로 늘 보시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최상의 상태를 지녀가다가 죽어서는 곧 부호(富豪)의 집에 태어난다.”고 하셨습니다. 보시를 좋아하는 마음을 쌓고, 보시하는 행을 늘 해나가는 선업(善業)을 쌓으면 마침내는 부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 무슨 보시를 하겠으며 무슨 선업을 쌓을 수 있느냐고 의문을 갖습니다. 그러니 자신은 절대로 부자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그런 이들에게도 ‘인과경(因果經)'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만약 가난한 사람이 있어서 보시할 재물이 없을 경우에는 남이 보시를 행할 때에 수희심(隨喜心)을 일으켜야 한다. 수희하는 복보(福報)는 보시와 마찬가지여서 다를 것이 없는 까닭이다. 이는 아주 행하기 쉬운 일이니 누구라 불가능하랴?”

이처럼 가난하여 보시를 행할 수 없는 경우라도 남이 착한 일을 하고 재물을 보시하는 것을 보면 수희심을 가지고 함께 기쁘고 즐겁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그것만으로도 함께 복을 짓는 것이 된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가볍게 넘겨버려서는 안됩니다. 부처님께서는 크나큰 자비심에서 그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이니까요. 그러니 하물며 남의 착한 행을 비웃거나 시샘해서야 되겠습니까. 

수희심만으로도 충분하지만 가난한 이가 스스로 보시하고자 하면 그것은 더욱 복된 일입니다. 부처님께서는 ‘현우경(賢愚經)'에서 사위국의 가난한 여인 난타의 예를 들어 ‘가난한 이가 바친 정성담긴 등(貧者一燈)'의 가치를 상찬하고 계십니다. 하루 종일 일해서 번 1전을 가지고 기름을 사서 불을 밝힌 등은 비바람 속에서도 결코 꺼지지 않았습니다. 그 여인은 ‘이 공덕으로 내세에는 지혜를 얻어 온갖 중생의 무명을 없애게 되옵기를' 서원하는 큰 보리심을 가지고 공양하였기에 부처님은 “4해의 물을 가져다 불을 끄려해도 꺼지지 않을뿐더러 이 여인은 후일에 반드시 그 소원을 이루게 되리라“고 확언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보시는 크고 작음이 문제가 아닙니다. 대자비심을 가지고 했느냐, 중생을 구하려는 보리심을 가지고 보시했느냐가 문제입니다.

400억 원을 재보시한 여인이 백천생을 칠보로 장엄하는 큰 복을 누리게 될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 이가 불자이건 다른 종교를 가진 이이건 그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더욱이 그 여인은 그 큰 재산을 물려주었던 어머니가 평소 “살아보니 재물은 별것이 아니더라.”고 가르치신 말을 마음속에 새기고 이처럼 큰 기부, 큰 보시를 한 것이라니 이것이 바로 보리심이요, 대자비심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니 그 여인의 재보시는 바로 법보시와 통한다고 할 것입니다. 또 그런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이 여인은 이처럼 큰 보시를 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를 거부하였다고 합니다. 이는 바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실천한 것이라 할 것입니다. 아무쪼록 그 여인의 선의가 보시를 받은 고대병원에 그치지 않고 사바세계의 모든 중생에게 두루 미치게 되기를 기대하고 싶습니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