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273호)

저 멀리 남해바다엔
푸른빛 머금은 불국토가
올망졸망 떠 있다

세방낙조 전망대 주차장 아래 공원에서 바라본 가사도 낙조. 가사도로 떨어지는 해가 토해 낸 기운이 하늘과 바다를 붉게 물들였다.

10여 년 전만해도 바다 가운데 고립된 땅으로 인식되던 섬이 최근 들어 휴가지로 각광받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무인도를 포함해 3000개 이상의 섬이 있다. 이 중에는 불교와 관련된 전설이 전하는 섬도 있고, 불교색 짙은 이름을 가진 섬도 여러 개 있다. 올 여름, 불연(佛緣)이 깃든 섬으로 휴가를 떠나 보는 건 어떨까?

‘불살생’ 지키려 고기잡이 삼가는
전남 진도군 가사도(加沙島)

가사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해수욕장인 돌목해수욕장. 모래가 고와서 해수욕을 즐기기에 좋다.

스님이 입는 의복을 ‘장삼(長衫)’이라고 한다면, 장삼 위에 걸쳐 입는 법의(法衣)를 ‘가사(袈裟)’라고 부른다. 스님의 복식은 장삼 위에 가사를 갖춰 입어야 비로소 완성된다. 전라남도 진도군에는 ‘스님의 가사가 섬이 됐다.’는 전설이 깃든 섬이 있다. 바로 가사도(加沙島)다. 가사도의 원래 한자명은 스님의 법의를 일컫는 ‘袈裟’와 같았는데, 언제부턴가 ‘加沙’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 섬이 가사도로 불리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몇 가지 전설이 전한다. 다음은 첫 번째 전설.

진도 서쪽 지력산에 있는 사찰, 동백사에 수행하던 한 스님이 해질녘 붉은 노을이 물든 서쪽하늘로 날아가는 학의 모습이 무척 아름다워 학의 무리를 따라 지력산으로 날아올랐다. 그러나 스님은 도력이 부족해 학의 무리를 따라가지 못한 채 바다에 빠지고 말았다. 그때 스님의 가사가 바다에 펼쳐져 가사도가 됐다. 그 뿐만이 아니다. 스님의 장삼이 떨어진 곳은 상의도, 바지가 떨어진 곳은 하의도, 발가락이 떨어진 곳은 양덕도(발가락 섬), 손가락이 떨어진 곳은 주지도(손가락 섬), 심장이 떨어진 곳은 불도(佛島, 부처섬)가 됐다는 설이다.

두 번째 전설은 주지도의 주지스님이 양덕도에 있는 화주를 옆자리에 앉히고 예불을 올리기 위해 신안군 하의도에서 아래옷을 입고, 상태도에서 상의를 입고, 장산도에서 장삼을 수하고, 다시 가사도에 와서 가사를 수한 후에 궁항리 목섬(목탁 형상)에서 목탁을 잡고 불도를 향해 예불을 올리는 형상이라는 이야기.

불연이 깊은 탓인지 가사도 주민들은 오래전부터 ‘살생하면 벌을 받는다.’, ‘어업은 곧 대량 살생이므로 좋지 않다.’고 여기고 있어, 불살생이 생활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예전에는 살생을 하지 않으려고 가사도 근해가 조기가 풍부한 어장임에도 불구하고, 고기를 잡지 않은 채 타 지역 어부들에게 고기잡이를 맡기고 구경만 했다고 한다.

정말로 부처님의 ‘불살생’ 계율의 영향 때문인지 가사도 주민의 대부분은 어업 대신 톳 양식을 주업으로 삼고 있다. 많은 양의 톳을 따서 도로 곳곳에 널어놓고 말리는 진풍경이 곳곳에 연출된다. 가사도의 톳은 일본으로 수출될 정도로 품질이 좋다.

가사도의 전설에 등장하는 섬들은 모두 진도군 조도면 가사도리에 속한다. 이 섬들을 통칭해 ‘가사군도(加沙群島)’라고 부른다. 가사군도의 중심 섬이 가사도이고, 주변에 나머지 섬들이 바다 곳곳에 솟아 있다. 가사도는 진도군의 섬 중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이다. 섬의 동쪽, 서쪽, 남쪽에는 하나씩, 3개의 마을이 있다.

요즘 육지와 섬을 연결하는 연육교(連陸橋) 사업이 활발해져 다리로 연결된 섬이 늘어나고 있지만, 현재까지 가사도로 가는 길은 배편이 유일하다. 가사도로 가는 배는 목포항과 진도 쉬미항에서 탈 수 있는데, 기자는 쉬미항 노선을 택했다. 쉬미항과 가사도를 오가는 배편은 하루 각각 3회 운영되는데, 약 1시간이 소요된다. 운항시간은 진도군청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배는 자동차를 실을 수 있는 차도선이다. 자동차 운송료와 개인 운임료는 카드 결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현금으로 지불해야 한다. 가사도는 교통편이 불편하기 때문에 자동차를 가져가길 권한다.

선착장에 도착하면 관광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왼쪽 길로 가면 돌목마을(가사 3구), 오른쪽 길로 가면 가사리(가사 1구)와 궁항마을(가사 2구)이 나온다. 어느 쪽으로 가도 푸른 남해바다가 드넓게 펼쳐지는데, 섬들이 하늘을 흐르는 구름처럼 둥둥 떠다니는 듯 착각을 일으킬 만큼 아름다운 풍경이다. 갯바위에 앉아 있노라면 조용하지만 능숙한 손놀림으로 톳을 따는 어민들의 분주한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모습을 지켜보듯 하늘을 유유히 나는 갈매기의 모습은 반대로 한가롭기 그지없다.

썰물 때면 백사장 곳곳에 구멍이 뻥뻥 뚫려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바닷물이 다시 밀려오기 전까지 게가 몸을 피하는 곳이다. 섬에 거주하는 인구가 많지 않기 때문에 어느 곳을 가도 한적한 어촌 풍경을 볼 수 있다. 어민들과 생명들이 사이좋게 어울려 사는 곳이다 보니 눈썰미 좋은 관광객들은 도심에서 보기 힘든 제비 가족을 만날 수도 있다.

가사도 한 농가의 처마에 제비가족이 둥지를 틀었다. 어미가 새끼의 입에 먹이를 넣어주고 있다.

아쉽게도 가사도에 불교유적은 없다. 가사도의 모습을 제대로 보려면 돌목마을로 가야한다. 돌목마을 주변은 가사도 생태공원으로 지정돼 있는데, 섬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와 등대, 황금박쥐가 산다는 십자동굴이 있다. 가사도 등대 주차장에 주차하면 전망대로 가는 길과 해변산책길을 안내하는 표지판을 만날 수 있다. 전망대 방향으로 걸어 올라가면 진도앞바다가 내려다보인다. 그곳에 진도군에서 설치한 포토존이 있다.

포토존을 뒤로 하고 오르막길을 오르면 절벽 아래 십자동굴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 규석을 파내던 동굴인데,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어서 박쥐가 서식한다. 십자동굴 왼쪽으로 나 있는 작은 숲길을 따라가면 절벽 아래에 작은 연못이 나온다. 임신한 처녀가 남자를 기다리다 지쳐 산에서 내려오다가 몸을 던졌다는 슬픈 전설을 간직한 ‘처녀강’이다. 처녀강을 지나면 나무계단이 전망대까지 이어져 있다. 가파르지만, 오르다보면 바다에서 불어오는 청량한 바람이 땀을 식혀주고, 드넓은 바다와 작은 섬들을 내려다보면 ‘가슴이 뻥 뚫린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음까지 시원해진다.

한참을 앉아 있어도 지겹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어떤 고민이 있든, 그 순간만큼은 고민을 말끔히 잊게 된다. 산이든 바다든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모든 망상을 잊고, 몸과 마음에 휴식을 주기 위함이 아니던가? 따가운 햇살도, 햇살을 흔드는 바람도, 남해 바다의 짙푸름으로 몸과 마음을 치유해주는 기분이다.

가사도에는 돌목해변, 카클해변, 옥출광산해변, 궁항해변 등 네 곳의 해변이 있다. 이 중 돌목해변은 백사장이 좋은 곳이라 야영을 하면서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 이곳에서 야영을 하려면 마을 이장님께 양해를 구하는 게 좋다. 숙박시설이 몇 군데 없어 사전예약을 해야 한다. 마을회관에서도 하룻밤을 묵을 수 있는데, 역시 이장님을 통한 예약은 필수.

섬에서의 일몰 풍경은 육지의 일몰과 사뭇 다르다. 가사도에서 보는 일몰도 좋지만, 세방낙조 전망대나 전망대 주차장 아래 공원에서 바라보는 가사도 일몰이 절경이다.

날씨 맑은 날, 가사도 전망대에서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세상사 시름이 훌훌 날아간다.

〈 화엄경 〉 경구가 이름 된
경남 통영시 욕지도(欲知島)

안개 자욱한 날 가사도 아파다에서 톳을 채취하는 배와 그 뒤로 보이는 섬이 한가롭다.

경남 통영은 조선시대 삼도수군통제영이 있던 바다의 군사요충지였다. 통영 앞바다에는 연화도 · 두미도 · 욕지도 · 미륵도 · 세존도 등 불교적 이름이 붙은 섬이 줄지어 있다. 이 섬들 중 몇몇의 이름은 〈화엄경(華嚴經)〉의 ‘욕지연화장두미문세존(欲知蓮華藏頭尾問世尊)’이라는 구절에서 따왔다고 전한다. 이 구절은 ‘연화장세계를 알고자 하거든 세존께 물어보라.’는 뜻이다.

이 중 연화도와 미륵도는 잘 알려져 있는 불교 색채가 짙은 섬이지만, 그 외 섬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섬에 불교적 이름을 붙여 놓은 것으로 보아 선조들이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의 한 곳인 보리암이 있는 남해 금산, 세존도, 두미도, 욕지도, 연화도, 미륵도 등 남해의 섬들을 바다의 불국토로 여겼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 중에서 욕지(欲知, 알고자 하거든)도는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제법 유명한 섬이다. 욕지도는 욕지면의 본섬으로, 9개의 유인도와 30개의 무인도 등 부속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섬에는 신라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했는데, 조선시대 왜구의 잦은 침략으로 빈 섬이 됐다가 조선 고종 때부터 다시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욕지도로 가려면 통영 삼덕항 욕지행 여객선터미널에서 출항하는 차도선을 타야 한다. 인터넷예약이 가능하므로, 사전에 예약하는 게 좋다. 배편은 ‘욕지도여객선’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욕지도는 비교적 큰 섬이어서 섬을 둘러볼 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섬 전체를 보려면 역시 자동차를 가져가는 게 편리하다. 욕지도에는 사찰이 있다. 하지만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곳이다. 오래된 불교유적 참배를 떠올렸다면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욕지도 곳곳에 숨겨진 천혜의 자연은 그 실망감을 채워주고도 남는다.

가사도 십자동굴은 일제강점기 규석을 채취하던 광산이다. 이 동굴에 황금박쥐가 산다고 한다.

욕지도 여행의 출발은 욕지일주도로 드라이브로 시작하길 권한다. 짙푸른 남해바다와 어우러진 크고 작은 섬들의 모습이 이채롭다. 일주도로 곳곳에 설치된 전망대에서는 욕지도 내 마을과 주변 섬들을 여유롭게 볼 수 있다. 전망대에서 보이는 욕지도 마을 풍경과 마을 안으로 들어가서 보는 마을 풍경은 사뭇 다르다. 욕지도의 속살을 제대로 보고 싶다면 일주도로 아래로 거미줄처럼 뻗어있는 마을길을 추천한다. 그리고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섬을 관통하는 산간도로나 산행으로 천왕봉에 올라 섬 전체를 조망해 보는 것도 좋다. 단,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건 관광객의 기본예절.

또 영화 ‘화려한 외출’ 촬영장소, 새천년기념공원, 펠리컨바위, 욕지도 출렁다리, 메밀밤잣나무숲(천연기념물 제343호) 등 명소와 도동 · 유동 · 덕동 · 흰작살 해수욕장과 통단해변 등 물놀이를 할 수 있는 해수욕장도 여러 곳 있다. 해수욕장은 백사장 대신 자갈로 돼 있어 야영을 하기에는 불편하다.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야영을 하고 싶다면 해당 마을에 허락을 얻어야 한다. 욕지도는 비교적 크기 때문에 식당과 숙박시설이 넉넉해 선택의 폭은 넓다.

욕지도는 근대 어촌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다. ‘자부마을’이 그곳이다. 자부마을에는 1910년~1990년대까지의 지역 문화가 녹아있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면 당시의 다방, 우체국, 당구장, 고등어 간독, 통영경찰서 욕지주재소, 욕지고등심상소학교 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가정집 외벽에는 당시의 생활상을 묘사한 벽화가 그려져 있어 눈길을 끈다. 욕지도는 일제강점기, 고등어를 수탈당한 아픔을 간직한 섬이다.

욕지도의 풍광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출렁다리를 권한다. 바다 협곡 위에 설치된 출렁다리를 걷다보면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 착각이 든다. 하지만 중간쯤에 가서 강한 바람이 불어올 때는 온 몸에 힘이 저절로 들어갈 정도의 스릴,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오밀조밀한 해안선도 눈을 즐겁게 한다. 삼여전망대에서 보이는 삼여도는 욕지도 최고의 비경으로 꼽힌다. 특히 제주도에서만 재배되는 줄 알았던 감귤나무도 자라고 있으니, 욕지도의 매력은 마치 들춰내도 또 나오는 양파껍질 같다.

가사도 주민들이 궁항마을 인근 도로에 톳을 널고 있다.

통단해변에서는 연화도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연화도는 통영 팔경의 하나로 사방이 기암절벽인 섬이다. 조선시대 연산군 시절, 숭유억불 정책을 피해 이 섬에 은신한 연화도사가 연화봉에 암자를 지은 후 (부처님 형상의)둥근 돌을 모셔놓고 수행했다고 한다. 연화도사가 입적하자 주민들이 도사의 유언에 따라 수장(水葬)을 했는데, 그곳에서 한 송이 연꽃이 피어났다고 한다. 섬 이름이 연화도가 된 전설이다. 이후 사명대사가 연화도에서 수행을 하기도 했는데, 이런 이유로 연화도는 후일 불교성지로 인식돼 불자들이 자주 찾는 섬이 됐다.

욕지도에서 일몰을 감상하기 좋은 곳은 ‘석양이 아름다운 쉼터’다. 이 쉼터에서는 두미도와 그 왼쪽에 길게 늘어선 남해 금산으로 떨어지는 낙조를 볼 수 있다. 두미도와 금산 모두 불연(佛緣)이 깊은 곳이다. 금산은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는 관음성지 보리암이 있고, 두미도 감로봉 부근에는 절터가 있는데 1937년경 통일신라시대 금동여래입상이 발견됐다. 두미도에는 현재 사찰은 없다. 하지만 주민 대다수가 불자라고 한다. 욕지도에서 보이지는 않지만 석가모니 부처님을 상징하는 ‘세존도’, 미륵부처님이 머무는 ‘미륵도’도 불교와 인연이 깊은 섬이다.

가사도 등대 인근에는 해안선을 따라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여러 불교 전설이 전하는 섬이지만, 한두 섬을 제외하면 불교유적은 거의 없다. 그래도 섬에 어떤 이유로 불교색 짙은 이름을 짓게 됐는지 알고 간다면, 신심 돋는 섬 여행이 되지 않을까? 단순한 여름휴가를 넘어, 평생의 추억으로 남을 성지순례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섬 여행은 기간과 무관하게 여러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육지 여행에서는 느낄 수 없는, 섬 여행만의 특별한 묘미를 만끽할 수 있다. 보이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그 모습 그대로를 보고 느낄 수 있는 섬 여행. 그 여행에서 우리 내면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욕지도 통단해변에서 보이는 연화도. 오른쪽 섬이 연화도다. 연화도는 사명대사가 수행한 섬으로 알려져 있다.
욕지도의 명소 중 한 곳인 출렁다리. 바다 협곡 사이에 설치된 출렁다리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해안선의 풍경은 일품이다.
욕지도 자부마을 내 주택의 벽에는 마을의 옛모습을 알 수 있는 벽화가 곳곳에 그려져 있다.
욕지항 주변에는 마을과 음식점, 펜션 등이 들어서 있다.
욕지도 최고의 비경으로 손꼽히는 삼여도.용왕이 청년으로 변신하 900년 묵은 이무기를 사랑한 자신의 세 딸을 바위로 만들었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KBS 예능 프로그램 1받 2일의 촬영지이기도 한 목과마을에는 감귤나무가 있어 이채롭다.
욕지도 '석양이 아름다운 쉼터'에서 바라본 두미도(오른쪽)와 남해 금산의 낙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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