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과학(273호)

달라이라마와 8명의 과학자
1987년부터 열린 토론회 개최

티베트의 지도자 달라이라마가 2018년 3월 12일 인도 북부의 다람살라 언덕의 불교사원에서 '마음과 생명 회의'를 하던 중 청중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서양 과학자들을 초대하다

프랑스의 파리 폴리테크닉대 신경과학부 교수인 바렐라(Francisco J. Varela)는 달라이라마(Dalai Lama)가 유럽을 방문할 때마다 그의 대중법회에 참석해 만났다. 하지만 늘 시간이 부족해 충분한 대화를 나누지 못한 걸 무척 아쉽게 생각하고 있었다.

1983년 바렐라가 강연자로서 ‘의식에 대한 알프바흐 학술회의(Alpbach Symposia)’에 참가했을 때 그는 회의에 참석한 달라이라마를 다시 만날 수 있었고, 달라이라마는 대화를 원하며 바렐라를 초대하였다. 그 만남에서는 신경과학에 대한 심도 있는 대화가 오갔고, 바렐라는 점차 집요하게 질문을 이어갔다. 그런데 달라이라마의 계획된 다음 일정 때문에 1시간 만에 토론을 끝낼 수밖에 없었다.

그곳을 떠나면서 달라이라마는 바렐라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우리는 계속 더 대화를 해야 하지만, 이렇게 외국 출장을 다닐 때는 긴 시간을 낼 수가 없습니다. 박사가 다람살라에 올 수 있다면 내가 1주일 정도 시간을 마련하겠습니다. 원한다면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다른 과학자들과 함께 와도 좋습니다.”

이날 두 사람의 만남은 달라이라마와 서구의 과학자들 간 대화에 실마리가 되어주었고, 그 만남이 있은 지 4년 후에 열리는, 이른 바 ‘마음과 생명 회의’의 개최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한편 하버드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의 법무담당관을 지내기도 한 엥글(R. Adam Engle)은 티베트 승려인 라마 툽텐 예세(Thubten Yeshe, 1935~1984)로부터 달라이라마가 오랫동안 과학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서구 과학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서양 과학자들과 동양의 명상적 학문에 대한 이해를 나누는 일을 열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엥글은 동료인 사우트먼(Michael Sautman) 등 동료들과 함께 그 일을 주도하여 성사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1984년 가을, 달라이라마의 비서를 통해 달라이라마에게 그 뜻을 전하게 되었다. 며칠 뒤 달라이라마는 본인 스스로 과학자들과의 토론을 몹시 기대하고 있다는 뜻과 함께 앵글과 사우트먼이 그 모임을 준비하도록 위임하겠다고 전해 왔다.

1987년 ‘마음과 생명 회의’의 출범

1987년 1차 '마음과 생명 회의' 때부터 참가했던 프란시스코 바렐라. 그는 프랑스 파리 폴리테크닉대 신경과학부 교수이다.

바렐라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1983년의 ‘알파바흐 학술회의’를 통해 달라이라마의 제안을 받았고, 달라이라마와 과학자들 간의 대화의 문을 열고자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1985년 봄에 앵글과 사우트먼이 자신이 추진 중인 일과 비슷한 일을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앵글을 찾아가 서로 간의 부족한 부분들을 보완하며 함께 추진하기를 제안하였다.

이런 과정을 거쳐 그들은 공동 노력을 하기로 마음을 정했고, 달라이라마와 서구의 과학자들이 며칠간 집중 토론을 벌일 수 있는 불교와 현대과학 간의 비교 문화모임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래서 그들은 일차적으로 과학과 불교 전통의 가장 유익한 부문으로서 ‘마음과 생명’을 주제로 하는 과학 분야들에 집중해 토론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마음과 생명 회의(Mind and Life Conference)’이다. 이 ‘마음과 생명 회의’는 1987년 10월에 1차 회의를 시작으로 2000년 3월의 제8차까지 격년제로 열리다가 그 이후에는 매년 회의가 열렸다.

1차 ‘마음과 생명 회의’는 ‘마음의 과학’이란 주제로 1987년 10월 인도의 다람살라에 있는 달라이라마의 공관에서 열렸다. 여섯 명의 미국과 유럽의 저명한 과학자들과 티베트 학자 두 명, 달라이라마 그리고 통역 두 명이 참가해 5일 동안 하루에 8시간씩 빈틈없이 회의가 진행되었다.

회의에 참석한 서양의 과학자들은 각자 자기의 전문분야를 이끄는 석학들로 바렐라(인지과학, 인식론), 그린리프(Newcomb Greenleaf, 컴퓨터과학, Columbia Univ.), 헤이워드(Jeremy W. Hayward, 물리학, MIT), 리빙스턴(Robert B. Livingston, M.D., 신경과학, U. C. San Diego), 루이시(Luigi Luisi, 화학, Federal Institute of Zurich), 로쉬(Eleanor Rosch, 인지과학, U. C. Berkeley) 등이었다.

이 ‘마음의 과학’ 대화에서는 과학적 방법과 유효성, 지각(知覺)과 두뇌, 인지심리학, 인공지능, 지각과 의식, 그리고 진화, 업 및 자비심 등의 주제에 대해 폭넓은 대화와 토론이 오갔다. 이 토론에는 흥미로우면서도 매우 새로운, 불교와 과학 간의 교감하는 부분이 많다. 그 내용을 여기서 다 전할 수는 없고 ‘중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화의 한 대목을 인용하고자 한다.

중생이란 무엇인가?

달라이라마는 2016년 12월 17일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 보자르에서 3일간 열린 '마음과 생명 회의'에 참석해 신경학자ㆍ심리학자ㆍ생태학자 등과 함꼐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 회의 후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달라이라마.

달라이라마: 아메바와 같은 단세포 피조물도 욕망, 성적 욕구, 감정 등의 전면적 인지행위를 할까요?

바렐라: 이것은 생각해 본 적이 있는 내용입니다. 어떤 아메바는 수컷과 암컷이 따로 있고, 어떤 아메바는 자웅동체로 되어 있어서 유전물질을 교환하는 등 성적 상대로써의 역할을 합니다. 아메바와 보다 단순한 세포들인 박테리아를 비교해 보지요. 박테리아도 성(性)이 있습니다. 그리고 좋아하는 음식을 찾는 능력이 있어서 유해한 물질은 기피합니다. 박테리아는 크기만 작을 뿐 아메바와 매우 흡사합니다.

어떤 이는 아메바도 인지행위를 포함한 우리가 논의하는 보편적 행동을 하느냐고 묻습니다. 그 세포 내부에 있는 지각 모터들 간에 상호관계가 일어납니다. 모두 하나의 세포단위에서 일어납니다. 그러나 물론 하나의 박테리아에는 신경단위(Neuron)들이 없습니다. 이에 따르면 신경조직이 인지능력을 갖는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신경조직은 단지 지각 모터의 용량 범위를 확대해 줄 따름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항입니다.

달라이라마: 그렇다면 선생은 아메바와 같은 단세포 피조물도 중생(衆生)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바렐라: 예, 그렇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제가 인지하는 바로는 개구리, 해파리, 아메바 또는 박테리아들의 지각작용을 서로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달라이라마: 선생의 견해로 본다면 하나의 박테리아도 중생이라는 것이지요? 그것은 불교적 맥락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한 중생의 생명을 죽이는 것은 계율을 범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 중생이 고통을 여의고 행복을 원하는데 그 중생의 생명을 죽이는 것은 많은 고통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메바를 죽이는 것은 나쁜 행위일까요? 불교적으로는 만일 그 아메바가 기쁨과 고통을 알고 이고득락(離苦得樂)을 원한다면, 아메바를 죽이는 행위는 나쁜 행위지만 그러지 않다면 나쁜 행위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렐라: 박테리아나 아메바의 행동에 회피하는 부분이 있고, 또한 구하고자 찾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사람이나 고양이와 같은 중생의 행동과 매우 분명히 유사합니다. 비록 그들에게 고통과 즐거움에 대한 인식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 행동이 중생과 다르다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아메바는 근본적으로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감정이 있습니다. 제가 왜 고양이가 즐거워하고, 괴로움을 느끼고, 만족을 원하며 중생이라고 말할까요? 저는 고양이의 경험을 해 볼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달라이라마: 예, 그것은 맞는 말입니다.

바렐라: 그와 똑같은 주장이 아메바나 박테리아에게도 적용됩니다. 저는 박테리아가 겪는 경험을 직접 할 수는 없지만 그의 행동을 관찰함으로써 같은 종류라고 봅니다. 이것이 과학자로서 제가 박테리아의 행동이 인지행동이라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이 대화에 이어 달라이라마는 더 나아가 식물에도 박테리아와 같은 정도의 감정 기능이 있는지, 또 원자들이나 아원자 입자(亞元子 粒子)들 수준의 소립자들에게 완전한 불활성 또는 암석과 같이 유기물의 성분이 될 수 없는 무생물의 기본적인 구분이 있는지 등의 기발한 부분까지 질문하며 대화를 끌어갔다.

이 회의를 마칠 때 과학자들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바쁜 일정에도 긴 시간을 내주고, 나아가 끝까지 참석해 중요한 논점에 대해 집요하고 예리한 질문을 한 달라이라마의 자세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준

건국대 명예교수. 전북대 화공과를 나와 서울대 대학원에서 공학박사를 취득했다. 마흔에 불교에 입문, 봉선사 통신강원에 입교해 월운 스님 문하에서 수학하며 불교서울전문강당을 졸업했다. 1983년부터 퇴직 때까지 19년 간 건국대 불교학생회 지도교수를 맡았다. 교수불자연합회장과 참여불교재가연대 총회의장을 역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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