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발에 깃든
청정한 출가정신
미얀마 불교의 힘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 미얀마인들은 조용한 분주함으로 하루를 연다. 저마다 공양물이 담긴 바구니를 소중히 받들고 탁발행렬이 지나가는 거리에 질서정연하게 열을 이루면, 멀리서 적갈색 가사를 갖춘 스님들이 발우를 가슴에 안은 채 일렬로 걸어온다. 공양 올리는 이들과 공양 받는 이들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순간이다.

매일 첫 새벽에 이루어지는 재가자와 출가자의 만남, 탁발(托鉢). 정성이 가득한 공양을 받으며 출가자는 ‘이 밥을 먹고 더 부지런히 공부하리라’ 마음을 다지고, 재가자는 수행 정진하는 스님에게 공양을 올리며 환희로운 신심을 키운다. 주고받는 재가와 출가의 모습은 뚜렷이 구분되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지극한 마음으로 하나가 되는 소중한 시간이다.

탁발을 마친 스님들의 발우에는 조리된 음식뿐만 아니라 빵과 과자, 사탕 같은 공양물도 담겨 있다.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고루 스님께 올리려는 신도들의 마음이 담긴 공양물이다. 단기 출가하는 어린 스님들이 끊이지 않는 나라이기에 이들을 위한 배려도 깃들어 있으리라.

스님의 수가 적은 마을에서는 공양을 올리는 주민도 서너 명이다. 상주하는 스님들을 감안하여 공양물이 넘쳐나지 않도록 순번을 정해 탁발의식에 참여하는 것이다. 때로 앞선 스님의 발우는 가득 차지만 뒤쪽은 반쯤 비는 곳도 있게 마련. 그러나 탁발한 음식은 각자의 몫이 아니라 사원에 돌아오면 한데모아 고루 재분배하기에 누구도 그것을 염려하지 않는다. 공급과잉 또한 걱정거리가 아니다. 탁발행렬을 마치는 지점이나 선원 근처에 빈 그릇을 놓고 다소곳이 스님의 탁발공양물을 기다리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 끼 공양을 제외하고 잉여를 모두 가난한 이웃과 다시 나누는 탁발공양의 재분배. 채우고 나누는 일, 받고 주는 일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그곳의 선순환이야말로 ‘너와 나’의 구분을 떠난 자리가 아닐까? 물질의 오고감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필요한 곳에 물 흐르듯 가는 것임을 깨닫는 순간이다.

공양물은 대개 당일 소비할 수 있는 밥과 과일과 과자 등의 음식이지만, 약이나 생필품이 발우에 담기기도 하고 돈을 보시하는 이도 더러 있다. 이처럼 축적이 가능한 보시물은 탁발행렬을 뒤따르는 정인(淨人)이 받아서 따로 관리하게 된다. 출가자가 직접 돈을 받을 수 없도록 한 부처님 당시의 계율을 지키며 사찰운영은 재가자가 맡도록 한 것이다. 공양과 의식주를 뒷받침하면서 스님들이 수행 정진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하는 재가공동체제도는 미얀마불교가 청정하게 유지되는 비결이다.

수세기 전,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스스로 밥해먹지 말고 탁발로 걸식케 한 뜻을 오늘날까지 이어가고 있는 이유가 깊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출가자는 생명 유지에 필요한 음식을 탁발에 의지함으로써 자신을 낮추고 물질에 대한 집착을 없애 공부에 전념하고, 재가자는 출가자에게 공양을 올림으로써 큰 공덕을 짓는다.

보시하는 마음, 보시물, 보시 받는 마음. 이 세 가지가 모두 청정하고 어디에도 집착함이 없을 때 진정한 보시가 된다. 미얀마의 탁발은 이러한 삼륜청정(三輪淸淨)의 보시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출가와 재가의 삶의 방향성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생명의 근원이 되는 탁발공양물에 승단을 이어가게 하는 청정하고 참된 생명력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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