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구재 본래 방식은
수계·참회의식
시대에 맞는 문화 절실

지난 2월 서울 보문동 유명한 절에서 제자 집안의 재(齎)가 있었다. 돈독한 불자인 제자가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절에 다니던 시어머니 사십구재를 모시고 회향하는 날이다. 아침 일찍 서둘러서 전철을 몇 번 갈아타고 보문동 절로 찾아갔다. 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가족들과 친지들, 20여 명이 모여서 경건하게 합장하고 동참하였다.

재가 진행되는 동안 스님들의 별다른 설명이 없어서 무엇이 어떻게 되는지 영문도 모르고, 그저 합장하고 가끔 일어나서 절하고, 좀 무료하게 앉아있었다.

‘누군가가 진행되는 과정과 그 의미를 설명해주고 인도해주면, 대중들도 의미를 느끼고 좋을 텐데. 이런 때가 전법하기 좋은 때인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재가 막바지에 이르자, 비구니스님 두 분이 고깔모자를 쓰고 바라를 들고 나와 부처님 앞에서 율동을 하며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자리에서는 스님들이 목탁 치고 북치고 징 치면서 장단을 맞추고 있었다.

지난 4월 3일 오후 4시에도 서울 중계동 한 선원(禪院)에서 제자 집안의 재가 있었다. 동덕 청보리 출신의 현직 대학교수다. 얼마 전 남편이 칠십도 채 안된 나이에 별세해서, 오늘이 막재날이다. 남편과도 특별한 인연이 있어서 먼 길을 걸어서 찾아갔다.

제자의 가족들 친구들 30여 명이 모였다. 재가 진행되면서 스님이 과정을 설명하고, 영단 앞에서 비구니 스님이 일일이 안내를 해주어서 한결 의미가 있었다. ‘역시 박사 스님 절이 다르구나’ 했다. 그런데 또 북치고 징 친다. 바라춤은 없었지만, 독송하면서 북치고 징 친다. 좋았던 마음이 우울해진다.

사십구재는 제사가 아니다. 무슨 굿하는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 북치고 징 치고 나비춤을 춰야하는 것일까? 불교의식적으로 뭔가 설명이 있겠지만, 석연치가 않다. 왜 수행승들이 북치고 징 치고 춤을 추어야 할까? 왜 거룩하고 고결한 법당에서 무당집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일까? 무속인들 나름대로 전통이 있고 의미가 있는 것이지만, 절은 전통이 다르고 의미가 다른 것 아닐까?

사십구재는 ‘재계(齋戒)’다. 재계, 곧 ‘포살(布薩, Posatha, 뽀사타)’이다. 포살은 붓다 석가모니께서 확립하신 수계참회의식이다. 재일에 절에 가서 공양 올리고[齋] 오계를 받아 지니고 참회하는 것[戒]이 불교도의 신성한 의무이고, 초기불교 이래 거의 유일한 대중의식이 되어왔다. 오랜 세월 우리 선대들도 이렇게 살아왔다. 이것이 바로 ‘목욕재계(沐浴齋戒)’다. 이 목욕재계가 곧 포살이다.

사십구재, 일가친지들이 모여서 경건히 부처님께 공양 올리고, 오계를 받아 지니고, 계문을 외우면서 발로참회하는 것으로, 그 공덕으로 영가를 청정히 하고, 그 법력으로 왕생정토를 축원하는 자리다.

사십구재, 이제 이렇게 대중들의 수계·참회의식으로 혁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니, 본래 자리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재 지내는 비용으로 몇 백만 원씩 공정가가 정해지고, 북치고 징 치고 춤추고, 포살과 관계없는 긴 사설(辭說)을 설법이라고 늘어놓고, 이런 모순된 낡은 풍토는 시급히 부처님 본래 방식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십구재는 고인의 생애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재계와 추모의 모임’으로 혁신되지 않으면 안 된다. 대중이 의식의 주체로 나설 때가 된 것이다. 지금 우리시대에 맞는 사십구재 문화가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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