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5월 22일(음력 4월 8일)은 부처님오신날입니다. 부처님께서 사바세계에 나투실 때의 모습을 〈수행본기경〉에서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어느덧 마야부인이 임신을 한 지 10개월이 지나, 부처님이 사바세계에 태어날 때가 되었다.

부인이 태자를 낳으러 친정인 구리성으로 가는 도중 룸비니 동산에서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부인은 백화가 만발한 룸비니 동산을 거닐다 문득 산기를 느끼고 무우수(無憂樹) 가지를 잡았다. 이때 태자가 부인의 오른쪽 옆구리를 통해 세상에 나왔다. 태자는 일곱 걸음을 걷고 나서 손을 들어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서 나만이 홀로 존엄하다. 세상의 모든 고통을 마땅히 내가 제거하리라.’”

부처님의 탄생게(誕生偈)로 전해지는 이 말씀을 한역경전에서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로 적고 있습니다. 탄생게는 모든 생명의 존엄함을 일깨워주는 메시지였습니다. 생명있는 존재는 존엄하기 때문에 차별받아서는 아니 되며 또한 고통 받는 일도 없어야 합니다. 즉 모두가 평등해야 하며 평화로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부처님은 깨달음을 성취하신 이후 평생 전법에 매진하시면서 중생들의 무차별과 다툼 없는 상생(相生)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면 누구나 영원한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적정(寂靜)의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적정의 경지에선 고민과 갈등이 있을 수 없고 오로지 마음의 평화를 구가하며 안락한 세상을 즐길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카스트 제도로 불리는 신분제가 엄격히 적용되던 당시 인도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불렀습니다. 무엇보다 몸을 접촉해서도 안된다며 멸시를 받던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도 부처님의 교단에선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았습니다. 특히 승가에 불가촉천민으로 분류되는 최하위 신분 출신들이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의견이 등등했으나 부처님은 누구나 ‘여래의 품에서는 하나’라며 교단의 문호를 활짝 열어 승가평등체를 지향했습니다. 그러므로 불교교단 안에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했습니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 강이 있어서 제각각 강가, 야무나, 아치라바티, 사라부, 마히라고 불리지만 그것들이 바다에 이르고 나면 그 전 이름은 없어지고 오직 대해(大海)라고 일컬어진다. 마찬가지로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의 네 계급도 일단 법과 율에 따라 출가하게 되면 예전의 계급은 없어지고 오직 사문(沙門)이라고만 일컬어지느니라.”

바다에 들어온 물의 연원을 보면 하수구나 개천 또는 강물을 거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단 바다에 합류하면 모두 ‘바다’로 불리는 것과 같이 부처님의 교단에 들어오면 재가 때의 가문과 혈통은 없어지고 오로지 사문으로 불립니다. 이들은 부처님처럼 누구나 삭발(削髮)하고 누구나 똑같은 옷을 입습니다. 외양으로 봐도 특수신분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절대평등의 공동체 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부처님은 나아가 평화를 매우 중시하셨습니다. 부처님 재세 당시 꼬삼비의 정사에서 의견을 달리하는 승가가 둘로 나뉘어 서로를 비난하고 심지어 폭력까지 행사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때 부처님은 비구들을 모아놓고 “비구들이여, 싸움을 그만두라. 다투지 말라. 논쟁하지 말라. 원한은 원한에 의해 풀어지지 않는다. 원한은 원한을 버림으로써만 풀어진다.”고 설득했습니다. 과거 나라를 빼앗고, 부모와 자기 자신까지 죽이려 한 브라흐마닷따 왕을 용서한 디가우 왕자 이야기를 들려주며 분노와 교만을 거두라고 간곡히 타일렀습니다.

평화로운 삶을 강조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석가족과 꼴리야족이 로히니 강물을 놓고 다툼을 벌일 때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양쪽의 대표들에게 “물과 사람 중에 어느 쪽이 더 소중한가?” 물었습니다. 양쪽 다 “사람이 더 소중하다.”고 답하자 “그런데도 물을 위해 소중한 사람의 목숨을 버리겠단 말인가?”고 반문하곤 다음과 같은 게송을 들려주셨습니다.

“원한을 품은 사람들 속에서 원한을 버리고 즐겁게 삽시다. 원한을 품은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원한에서 벗어납시다. 고뇌하는 사람들 속에서 고뇌에서 벗어나 즐겁게 삽시다. 고뇌하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고뇌에서 벗어납시다. 탐욕이 가득한 사람들 속에서 탐욕에서 벗어나 즐겁게 삽시다. 탐욕이 가득한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탐욕에서 벗어납시다.”

석가족과 꼴리야족은 부처님의 게송을 듣고 서로에게 보여준 증오와 적개심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이후 그들은 오랜 기간 평화로운 시대를 살았습니다.

이렇듯 부처님은 평등과 평화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 세상은 평등과 평화를 위협하는 일들이 다반사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불안과 분쟁이 계속되는 세상에서 부처님을 맞이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올해 부처님오신날을 기해 우리는 무엇보다 평등과 평화의 메시지를 세상에 울려야 하겠습니다. 더 이상 차별받는 생명이 없도록 기도하고 살상과 폭력이 발생하는 분쟁의 역사를 종식시키는데 다함께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불제자들이 앞장서 평등과 평화의 메신저가 됩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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