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과학(271호)

과학 만능 자부하다
난제 봉착하면서
불교에 귀 기울여

파울 달케의 〈불교와 과학〉

금세기 초, 독일에서 존경받는 과학자이며 의사인
달케(Paul Dahlke)는 1913년 불교의 과학성을 담은
〈불교와 과학〉이란 저서를런던에서 출판했다.
이 책은 불교의 과학성을 비교 검토한 최초의
저술로 볼 수 있다. 그 개정판들.

금세기 초에 독일에서 존경받는 과학자이며 의사인 달케(Paul Dahlke)는 우연히 불교를 소개하는 책을 읽다가 “모든 법에는 실체가 없다.”는 불교의 교리를 접하고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불교의 나라 스리랑카를 여러 번 방문하고, 그곳에서 유명한 불교학자이며 선사인 와기스와라(Pandit Wagiswara) 스님의 제자가 되어 불교를 공부하였다. 그는 1913년에 불교의 과학성을 담은 〈불교와 과학〉이란 저서를 런던에서 출판하였는데 아마도 이것이 불교의 과학성을 비교 검토한 최초의 저술이 아닌가 싶다.

달케는 이 책에서, 불교는 인식론적 관점에서 세계를 관찰한 종교로서, 실상을 실상으로 받아들이도록 우리를 가르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불교는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가치를 지닌 법칙을 주 내용으로 하는 ‘세계 원리(world theory)’이며, 그 안에는 보편적 개념을 담고 있는데 비하여, 과학은 물질주의적 관점에서 사물의 작용을 기계적 방식으로 표현한 법칙일 따름이라고 비교하였다. 그리고 불교와 물리학의 문제점, 불교와 생리학의 문제점, 불교와 생물학의 문제점, 불교와 우주론의 문제점 등을 고찰하였다. 불교는 보편적 가치를 지닌 진리의 법칙이라는 점에서 불교의 우수성을 주장하고 자연과학의 원리가 갖는 문제점을 고찰한 내용으로 조금은 사변적인 면도 있으나 당시 절대주의적 기독교 위주의 서구 사회에 신선한 충격이 될 만하였으리라 생각한다.

파울 달케의 〈불교와 과학〉 개정판.

불타(佛陀)는 정각을 이룸으로써 법계체성지(法界體性智)를 체득하여 여섯 가지의 무애자재한 초인간적 능력을 가지게 되었는데, 과학의 입장에서 보면 그 능력 중에 천안통이 매우 주목할 만하다. 천안통은 선정을 수행함으로써 직관으로 중생의 고락(苦樂) · 원근(遠近) · 추세(麤細) 등을 모두 완전하게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들 중 고락의 관찰력은 현대의 인지과학· 신경과학· 신경정신의학 등 심리학과 유관한 학문 분야와 관련된다.

한편 원근과 추세의 관찰력은 현대의 물리학과 관련된다. 이 두 관찰력으로 깨달은 사람은 이 법계에 존재하는 큰 것, 예컨대 온 우주의 구성과 운행으로부터 가장 미세한 것, 아원자(亞原子) 세계의 소립자들과 그의 작용에 이르기까지 세밀하게 다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이 천안통에 의해 불타가 본 그대로 경전 속에 서술한 내용이 현대과학의 중요 원리들과 계합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과학자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20세기의 위대한 물리학자들인 오펜하이머(Julius R. Openheimer)나 보아(Niels Bohr) 그리고 하이젠베르그(Werner Heisenberg) 등도 현대과학과 불교 간의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현대과학의 발전에 기여하리라는 기대 어린 표현을 한 바 있다.

불타가 45년에 걸쳐 베푼 설법은, 인간을 교화하여 고(苦)를 없애고 해탈을 얻도록 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그런데 그 법문 속에는 인생과 대자연의 실상도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어서, 과학자가 불경을 읽다 보면 곳곳에서 불교의 과학성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가 주요 종교인 나라들에서는 불교의 교설과 과학을 비교 고찰한 책이 적지 않은 게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번 글에서는 불교와는 전혀 다른 신앙 체계의 지역으로 자연과학이 발달하고 현대과학의 산실이 된 서구에서 불교와 과학이 교감한 주요 발자취를 살펴보고자 한다.

카프라의 〈물리학의 도(道)〉

유럽에서는 종교와 과학 간에 오랫동안 분쟁의 역사가 있었다. 그런 과정에서 과학적 원리들이 신의 계시와 합일되지 않아서 무시되기도 하였다. 그러한 까닭에 과학적 원리와 종교적 교시가 배치될 때에는 그것을 노출하지 않고 두 갈래로 나누어 고려하거나 서술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20세기 중반에 들어서며 현대과학과 동양의 종교사상을 평행적으로 고려함으로써 종교와 과학의 분리를 초월하려는 시도가 일기 시작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가 카프라(Fritjof Capra)의 저서 〈물리학의 도(The Tao of Physics)〉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김용정 교수에 의해 번역되어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그 책에서 카프라는 불교, 힌두교, 도교 그리고 유교와 같은 종교 내지 철학을 통틀어 ‘신비주의’라는 하나의 범주에 넣어 고려하였다. 불자의 입장에서 보면 아쉽고 불합리하게 느껴지는 바도 있으나, 서양의 합리주의적 물리학자의 눈에는 동양의 종교적 수행의 결과로 얻는 직관적 통찰력이 그렇게 신비주의로 보일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책은 서양에서는 물론 동양에서도 대단히 인기가 있었으며, 매우 가치 있는 새로운 사상을 자극하고 있다.

카프라는 젊은 시절 그가 말하는 동양의 신비주의에 대하여 매우 열심히 공부함으로써 동양의 종교사상에 대하여 매우 넓고 깊은 지식을 소유하게 되었음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얻은 신비주의적 세계관을 현대물리학의 세계관과 광범위하면서도 세밀하게 비교 고찰함으로써 상호 유사성을 발견하고, 그런 관점에서 동양사상과 현대과학을 대비하였으며, 물리학의 미래를 대비할 새로운 패러다임에 따른 신사고(新思考)의 여섯 가지 기준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 20세기의 위대한 물리학자들은 현대과학과 불교 간의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현대과학의 발전에 기여하리라 생각했다.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과 오펜하이머(Julius R. Openheimer).

카프라는 그 책에서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나 보아 등 20세기 현대물리학계를 이끈 많은 석학들의 주장뿐만 아니라 동양 종교의 경전으로부터 매우 설득력 있는 문장을 다수 인용함으로써 자기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 책은 동양의 종교들을 혼합하여 지칭한 이른바 신비주의 사상과 현대과학의 교감을 담고 있으나 그 안에는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불교사상과의 교감이 포함되어 있다.

나아가 그는 현대과학이 가야할 두 갈래 길을 극단적으로 표현할 때 한 길은 부처님으로 이어지고, 다른 한 길은 폭탄으로 이어진다고 말하면서 선택은 과학자 자신에게 달려있다고 하였다. 그는 더욱 부처님으로 이어지는 길 즉 ‘진정한 사랑의 길(Path with heart)’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불교를 가장 자비롭고 평화지향적인 종교로 인정한 것이 인상적이다.

그 밖의 다양한 교감들

20세기 중반을 넘어서면서 불교와 과학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높아지기 시작하여 관련 서적이 나왔다.

1984년 유명한 외계생물학자이며 유전과학자인 킬즈싱허(Buddhadasa Kirthsinghe)가 주관하고 스리랑카의 불교계가 후원하여 〈불교와 과학〉이란 제목의 책이 발간되었다. 이 책은 불교에 조예가 깊고 자기 전문 분야에서 인정받는 학자들의 논설을 모아 구성한 논집이다. 이 책에는 미국 · 영국 · 스리랑카의 불교학 · 생물학 · 생화학 · 핵물리학 · 천문학 · 심리학 및 민속학 분야의 중진 학자 9명이 불교의 교의(敎義)와 관련하여 자기 전문 분야의 특성을 집필한 논설 23편이 실려 있다.

1994년 웰레이스(Alan Wallace)는 저서 〈실상의 선택(Choosing Reality)〉에서 과학과 불교 양쪽의 관점을 면밀히 분석하고 그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안으로 불교의 중도적 관점에 기반한 적극적인 철학적 대안을 제안하였다. 이 제안은 사실주의와 도구주의는 물론, 물질주의와 이상주의에도 숨겨져 있는 위험한 요소들을 피하고, 과학적 관찰과 이론화의 참여적 특성(Participatory Nature)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리학과 마음의 불교적 조망’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이런 맥락에서 허공 · 에너지 · 양자(量子) · 우주 등 제반 물리과학과 직관으로 본 몸, 마음 그리고 의식에 대하여도 설명하고 화합된 세계에 대하여도 논하고 있다.

20세기 중반을 넘어서면서 서구의 현대과학과 동양의 종교사상을 평행적으로 고찰하려는 경향이 일기 시작했는데 서구의 과학자들이 그들의 연구과정에서 봉착하는 어려운 문제점들을 극복하거나 또는 새로운 연구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서 동양의 종교사상에 접근하여 직접 대화하려는 욕구가 일기 시작했다.

어느 대화든 대화에는 그 주제에 동의하고 실제로 협조할 수 있는 상대가 있어야 한다. 그와 같은 현대과학자들의 요구에 동의하고 대화의 상대로 자청한 분이 티베트 불교를 대표하는 달라이 라마(Dalai Lama) 성하이다. 달라이 라마의 위상과 활동에 대하여는 여기서 긴 설명은 생략하기로 한다. 달라이 라마는 1980년대 후반부터 정기적으로 불교와 과학 간의 대화를 주관하고 있으므로, 관련 내용은 다음 호부터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준

건국대 명예교수. 전북대 화공과를 나와 서울대 대학원에서 공학박사를 취득했다. 마흔에 불교에 입문, 봉선사 통신강원에 입교해 월운 스님 문하에서 수학하며 불교서울전문강당을 졸업했다. 1983년부터 퇴직 때까지 19년 간 건국대 불교학생회 지도교수를 맡았다. 교수불자연합회장과 참여불교재가연대 총회의장을 역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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