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만의 이달의 찬불가(270호)

연등축제 대표곡 자리매김
90년대 초 발표, 지난해 리메이크

새해 첫 날, 첫 출근. 왠지 모를 넉넉한 마음으로 우려낸 따뜻한 차 한잔이 사무실의 음악과 함께 그럴듯하게 여유롭다. 무심코 흐르다 머문 시선에 들어오는 CD수납장과 빼곡한 음반. 벽 한 면을 가득 메운 음반들을 바라보며 풍경소리와 함께 한 시간들이 째깍째깍 흘러든다.

아이들의 노래를 만들고 부르고 참견하다가 스며든 불교. 종로에서의 낮과 밤이 인생이 되었다. 이럴 때 인연이라고들 하던데.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어머니가 절에 가셨기에 불자였지, 나는 부처님의 ‘佛’자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런 상태에서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처럼, 친구의 땜빵(?)으로 우연히 조계사를 알게 됐다. (당시 친구는 어린이법회 지도교사였음) 그 인연이 싹을 틔워 어린이 찬불가를 만드는 사람으로 지금까지 살고 있으니, 인생 정말 모를 일이다.

돌이켜보니 나름 오래됐다. 그렇게 시작되어진 불교음악과의 인연이 ‘좋은 벗 풍경소리’라는 음악단체 결성의 시발점이 되었다. “잘한다! 잘한다!”하는 부추김에 꾸준히 음반을 발표했는데, 어느덧 불교음악계에서 최장수(?)하는 시리즈 작품집을 발표하고 있다.

모든 일이 그렇고, 많은 분들이 그러하겠지만, 지나온 시절의 어려움이나 역경을 떠올리는 일은 즐겁지 않다. 불교권내에 있는 단체들도 여러 가지 속사정이 만만치 않은데, 굳이 새해 벽두에 그런 기억을 떠올릴 필요는 없으리라. 기왕이면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했던 시간들의 노래 이야기를 하고 싶다.

길 떠나자

‘저물지 않는 영원한 우리의 세계
꿈이 피어나는 평화의 나라 니르바나
늘 사랑이 피는 행복한 우리의 세계
니르바나로 떠나자.’

지난해 11월 큰 선물을 받았다. 찬불가를 만들고 부른 지 어연 30여 년, 처음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누군가로부터 노래 선물을 받은 것이다. 헌정곡이라고나 할까? 평소 불교음악을 하며 가깝게 지내기는 했어도, 전혀 뜻밖이었던 후배 지휘자 서근영 선생이 1990년대 초 내가 작곡한 곡 ‘길 떠나자’를 새롭게 편곡하였다는 소식을 전해 온 것이다. 더욱이 애정과 우정이 넘치는 사연과 함께 자신이 지도하는 합창단이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는 대목에선 가슴이 뭉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아름다운 인연은 꽃으로 피어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풍경소리’의 정규 앨범 45집에 수록, 또 한 번의 기쁨 가득한 노래가 탄생하게 되었다.

나의 치명적인 게으름과 정리 미숙으로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이 노래가 만들어진 시기는 거의 30년도 더 지난 듯하다. 그 시절 나의 불교 스승(?)이며, 종로 곡차 친구였던 황학현 선생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아마도 1980년대 후반이었을 터. 나름 음악을 열심히 한다고 하면서 대중음악으로 작은 기쁨도 누리던 시절이다. 알량한 실력에 거드름까지 피우던 허세와 달리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갔다. 그렇게 인생 내리막을 경험하던 그 시절, 나에게 적당한 도피처요, 위안의 친구가 되어 준 황 선생과 종로의 친구들이 나를 자연스레 조계사로 이끌었다.

적당한 공간을 흔쾌히 내어 준 황 선생. 나에게 그와의 의기투합은 신세계로의 진입이었으리라. 원고지 한 장의 ‘이쁜 노랫말’이 내 책상에 놓이면 바로바로 ‘콩나물’이 심어져 한 곡의 노래가 되었다. 참 많은 노래를 함께 만들었던 즐거운 추억의 시간이었다. 그 당시의 노래들이 훗날 어린이 찬불가 모음집으로 태어났고, 풍경소리의 ‘찬불동요 창작곡집’의 시초가 됐음은 물론이다.

그 시절 내가 만든 노래의 대부분은 동요였는데, 전공이랄까? 대중적인 찬불가, 신나는 찬불가를 만들어 보겠다는 욕구에 맞춰 흥을 부려 본 곡들도 간혹 있었다. 그중에 대표적인 곡이 바로 이 곡 ‘길 떠나자’이다.

찬불가란 무엇보다도 노랫말이 중요하고, 그 글에 담겨 있는 여러 가지 의미와 사상이 멜로디를 끌고 간다는 생각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일반적인 노래도 그러하겠지만 종교음악, 더욱이 불교노래에 있어서는 노랫말과의 어우러짐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어쨌든, 아이들 동요와는 확연히 다른 노랫말에 몇 날 며칠 고민을 하다가, 불교 공부와 귀동냥 끝에 만든 ‘니르바나의 노래’(‘길 떠나자’의 부제)는 신바람이 넘쳐났다. 기존의 찬불가들과는 다소 다른 모양새가 더욱 관심을 갖게 했지만, 나름 선율과 비트(박자)에 힘을 가미했고, ‘통기타를 튕기며 부를만한 코드와 스트로크 주법이 흡사 대중가요 같다.’면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많이 좋아해 주었다. 학생회 · 청년회 등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대중적인 찬불가의 새로운 등장이었던 것이다.

이후 찾아 온 부처님오신날 행사곡으로 추천을 받게 된 ‘길 떠나자’는 정규음반의 음원으로 출시되었고, 이 곡이 도화선이 되어 연등축제에 걸맞은 신나는 찬불가 ‘오늘은 좋은날’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 일은 많은 분들에게 찬불가의 새로운 장르, 문화포교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도화선이 되었다는 점에서 지금도 그 때를 떠올리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이종만

불교음악인이자 좋은 벗 풍경소리 대표. 싱어송 라이터로 노래와 공연활동을 하고 있다. 1995년 찬불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좋은 벗 풍경소리’를 창단해 현재까지 찬불가 제작 및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대표곡 ‘오늘은 좋은날’, ‘길 떠나자’, ‘좋은 인연’, ‘너와 나’ 등 다수의 곡을 발표했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