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삶, 희생ㆍ자비
수행·성직자라면
대중들에게 헌신해야

마하트마 간디는 1925년 창간한 주간지 〈영(청년) 인디아〉에서, ‘원칙(철학) 없는 정치,’ ‘노동이 없는 부(富),’ ‘도덕성 없는 경제,’ ‘인격 없는 교육,’ ‘인간성 없는 과학,’ ‘양심 없는 쾌락’ 등과 함께 ‘헌신 없는 종교’를 ‘7대 사회악’으로 규정했다. 선각자적인 현명한 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악’이란 사회가 지닌 모순으로 인해 발생하는 해악으로, 흔히 도박·매춘·빈곤·범죄·부정부패 등을 꼽는다. 그 밖에도 고리대금업자, 마약 밀매범, 조폭 등도 사회를 좀 먹는 악이다. 18세기 중국 청말의 아편 탐닉, 한말(韓末) 관리들의 심각한 부정부패도 시대가 낳은 사회악으로서 한 국가를 몰락의 길로 걷게 했다.

간디가 ‘헌신(희생) 없는 종교’를 ‘7대 사회악’으로 규정한 것은 뜻밖이지만 매우 예리한 지적이다. 그는 성직자나 다름없었고, 그의 종교는 힌두교였다.

“나는 힌두교를 어떤 종교보다도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내가 말하려는 종교가 아니다. 내가 말하는 종교란, 힌두교를 초월하여 인간의 성품까지도 바꾸어, 사람이 진리로부터 떠날 수 없도록 굳게 결속하고 정화시키는 일이다.”

종교의 역할과 목적은 어려움에 처한 민중들을 가난과 고통, 병고(病苦)로부터 해방시켜 주고, 악을 선으로 인도하고 불행을 행복으로 이끌어 주는 데 있다. 더 나아가 오늘날에는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것도 종교의 매우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나라 종교의 수행자·성직자들을 본다면 사회적 역할에 인색한 편이다. 사회와 중생을 위하여 헌신·희생하는 성직자가 그다지 많지 않다. 설교에서는 사랑을, 법문에서는 자비를 외치면서 실제는 영 다르다. 오히려 대형 종교시설을 확대하는 등 종교를 빙자한 출세, 부(富)의 축적 등에 매달려 있는 종교나 성직자가 더 많아 보인다.

불교의 개조인 고타마 붓다는 깨달음을 이룬 후(35세), 80세로 열반할 때까지 45년 동안 헌신과 희생, 자비로 일관했다. 어리석은 사람들을 교화하기 위하여 고통 받고 있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여 4~5차례나 중인도 전역을 왕복했다. 붓다의 교화방법의 특징은 자비심, 즉 헌신이었다. 그 장면이 빠알리본 〈대반열반경〉에 한 폭의 거대한 그림처럼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오늘날 한국의 불교도들, 특히 스님들은 어떤가? 우리는 불제자이므로 붓다의 모습을 닮아야 한다. 더 헌신해야 하고 더 자비와 보시를 실천해야 한다. 중생 교화에 헌신해야 하고, 토굴에서 일신(一身)의 안일을 위하여 시간을 보내기 보다는 움직일 수만 있다면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서, 남을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자기 자신만을 위하지 말고, 사회를 위하여, 타자를 위하여 이타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종교 수행·성직자로서 희생과 헌신이 없다면 그것은 무위도식이며 생계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 신자본주의, 무한 경쟁시대에서 낙오한 사람들의 상처난 마음을 보살피는 데 헌신해야 한다. ‘N포’, ‘헬조선’을 외치고 있는 젊은 세대들을 위로하고 금수저보다는 흙수저에게 헌신해야 한다.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바람직한 종교인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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