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의 눈(269호)

우리집 영원한 애물단지 사랑하는 그대, 탱구!

우리 집에는 ‘깡패’ 한 녀석이 산다.

청개구리처럼 매사가 제멋대로요, 힘이 장사로 천방지축 나대는 녀석은 ‘헐크’, ‘조폭’, ‘날쌘돌이’, ‘먹돌이’ 등 별명도 가지가지로 이름은 ‘탱구’다. 견종은 보스턴테리어 불도그. 수컷이다.

올해 초 어느 추운 날 저녁, 생후 2개월이 조금 넘은 체중 5백 그램의 새끼 강아지로 우리 집에 들어온 녀석은 이번 11월 29일이면 난 지 꼭 1년이 되는 첫 번째 생일을 맞게 된다. 한 이불 속에서 같이 뒹굴다시피 하면서 이뻐 어쩔 줄을 모르는 우리 집의 막내는 벌써부터 그날을 어떻게 축하해줘야 최고의 생일이 될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는 눈치로, 녀석은 주인을 참 잘 만났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그렇다고 나는 주인만 보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대면서 애교가 넘치는 이 건강하고 ‘잘 생긴’ 녀석을 마냥 예뻐할 수만은 없는 답답한 상황에 있다. 전혀 예기치 않던 어느 날, 우리 집에 불쑥(?) 나타나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된 ‘탱구’. 그러나 그가 우리집 네 식구와 함께 하게 된 순간부터, 아니, ‘내 곁’에 있게 된 순간부터 나는 녀석의 존재감에 묻혀 내 생활의 많은 부분을 희생당하고 있고, 꿀처럼 달게 누리던 나만의 시간들 역시 많은 부분 할애하면서 녀석을 향한 사랑과 미움의 이율배반적 감정에 적잖이 비틀대고 있는 것이다.

우리 가족이 반려견과 함께 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금은 청년들로 장성한 우리 집 두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숲속 작은 무당벌레에서부터 새, 병아리, 햄스터 등 세상 온갖 움직이는 생명체에 무한애정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막내가 강아지를 키우던 미술학원 선생님을 졸라 하얀 털복숭이 새끼 강아지 한 마리를 얻어 집으로 데려왔던 것이다.

‘번개’라고 불리던 그 강아지를 7년 가까이 키우면서 공(?)을 들이던 나는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내 일의 분주함을 핑계로 변심,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없는 사이 남편과 공모(?)해 지방 소도시에 살고 있는 지인에게 보내 버렸다. 그런데 이 일은 아마도 아이들의 기억 속에 잊지 못할 치명적인 사건으로 각인됐던가 보다. 형제가 만나 지나간 얘기를 하기라도 하는 날이면 그날 겪었던 엄마의 잔혹한 행위에 대한 슬픔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최근에야 아이들의 고백을 통해 알게 됐고, 형제는 자기들에게 사전 통고나 동의 한마디 구한 법 없이 독단적으로 일을 저지른 엄마의 비정함을 규탄해 왔던 듯하다.

그리하여 어느 날 의기투합한 형제는 내게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라는 희망 선포를 했고, 나는 별다른 이견을 내보이지도 못한 채 그들의 강권(?)에 굴복, 백기를 들어야했다. 과거에 저지른 ‘만행’의 보상으로 새로운 식구를 떠안게 된 것이다.

‘탱구’. 녀석은 정말 신기할 정도로 영리하고 귀엽다. 헤드라이트처럼 큰 눈을 말갛게 뜨고 제 속마음을 얘기라도 하는 것처럼 가만히 날 쳐다볼 때면 세상 이보다 더 착하고 사랑스러운 녀석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가슴이 따뜻해지면서 애틋한 감정이 솟아오른다. 그러나 강아지를 키우는 일에 어찌 고통이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엄마를 절대 힘들게는 하지 않을게요.”라고 했던 우리 큰 아이는 얼마 전 회사에서 해외 주재원으로 발령이 나 외국지사 근무 차 떠나버렸다. 거기다 의상 디자이너로 일이 꽤나 분주한 막내는 퇴근이 항시 늦어 시간이 자유롭질 못하고, 내 옆의 최대 조력자 남편까지 가세해 지방 건설현장에 나가 있고 보니 ‘탱구’를 돌보는 일은 오롯이 내게로 떠넘겨지고 말았다.

새벽 일찍 눈을 뜨면 방 앞에 와 바각바각 문을 긁어대며 단잠을 설치게 하고 저물 녘 잠들 때까지 하루 중 거의 대다수의 시간을 내 뒤만 졸졸~ 따라 다니면서 크고 작은 사고를 쳐대는 애물단지! 그러나 녀석은 우리 집에 온 지 거의 열 달이 다 되어가는 요즈음, 신기하리만치 파워풀한 자존감을 뿜어내면서 신음 같은 특유의 목소리까지 곁들여 싫고, 좋고, 기쁘고, 슬픈 제 마음을 다 표현해내고 있으니 가히 폭풍성장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나가면 힘이 넘쳐 날 끌고 다니고, 제가 가고 싶은 곳이면 어디든지 꼭 가야 직성이 풀리는 녀석. 밖에만 나가면 집에 들어오기 싫어서 길 위에 꼼짝 않고 앉아 버티다 결국에는 10킬로그램이나 나가는 거구(?)를 내 두 손으로 받쳐 안고 들어와야만 되는, 막무가내! 고집불통!

그런데 문제는 이런 ‘탱구’를 어느 때부터인가 내 마음이 ‘영혼’을 소유한 한 생명체로, 다시 말해 ‘인격체’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신의 마음을 다 읽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한없이 날 쳐다보는 맑고 깊은 눈. 생각에 잠긴 듯 미동도 않는 어떤 순간의 긴 침묵. 나는 그때마다 우리 인간들이 ‘말 못하는 저들의 자유로움을, 행복할 수 있는 권리를, 철창 속에 가둬놓고 사육하면서 박탈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구심을 갖게 된다. 젖을 떼기도 전 어미의 품에서 떨어져 나와 돈을 주고 사고 파는 인간들에 의해 주인이 결정되고 살 곳이 결정돼 자신들의 의지와는 무관한 종속 관계로, 영원한 약자로 살아가야하는 운명. 그렇다면, 우리 탱구 역시 행복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잔디밭에서 뒹굴기를 좋아하고, 풀과 나무와 꽃향기 맡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고, 제 또래 강아지들과 놀기를 좋아하고, 겁도 없이 나대는 약방 감초! 나는 항시 그가 원하는 바를 다 들어주지 못하고 제어만 하고 있음에 늘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 이렇게 속삭여주곤 한다. “탱구야! 다음 세상에는 꼭 사람으로 태어나거라. 그래서 먹고 싶은 것 원 없이 다 먹고, 가고 싶은 곳 다 가고, 하고 싶은 일도 죄다 하거라. 세상 아름다운 색깔, 아름다운 꽃들도 다 보거라!”라고.

석가모니불의 ‘오계(五戒)’에서도 ‘불살생(不殺生)’- 다른 생명을 아끼면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란 미덕을 가르치셨듯, 녀석과 내가 만난 것도 전생의 인연일진대, 나는 어쩌면 탱구가 나의 바람처럼, 아니, 녀석이 품고 있을 지도 모를 간절한 바람처럼, 훗날 꼭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주길 바란다. 그리고 그때마다 내가 대학시절에 만났던 고은(高銀) 선생님의 명저 〈절을 찾아서〉에서 가슴을 흔드는 한 구절을 떠올리곤 한다.

‘나는 끝없는 중생으로 윤회하면서 이 모습 저 모습으로 살아가는 삼라만상의 편에 서고 싶지 부처보다 더한 것이 되고 싶지 않다. 그리하여 내가 나뭇잎도 되고 어느 나뭇잎이 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아득하게 함으로써 살고 싶은 것이다.’

그대! 내 사랑, 탱구! 미워할 수 없는 녀석!

나는 요즈음 녀석을 생각하는 애틋한 감정에 빠져 어쩌다 울컥 눈물에 젖곤 한다. 그걸 아는 막내가 웃으면서 해주는 말이 있다.

“엄마! 제발 좀 오버하지 말아요!”

박남준
방송작가. 동국대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MBC 공채작가로 방송계 입문, MBC FM <가요 응접실>, 특집 다큐, MBC 베스트극장 <달하달하>, KBS 다큐드라마 <이것이 人生이다>, TV문학관 <새> 등 다수의 작품을 집필했다. 경기대학교, 한국방송작가협회 작가교육원, MBC아카데미 강사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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