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복장 장엄한 종교의식
불자들 개인물품 넣기도
간절한 소망 담는 장치

영남의 어느 사찰에서 불상을 조성해 모실 때였다. 점안을 앞두고 불상 내부에 여러 물목을 봉안하는 불복장(佛腹藏)을 하면서, 신도들에게 특별히 원하는 납입물품이 있으면 미리 가져오도록 하였다. 그 가운데 눈길을 끈 것이 있었는데, 천주교 신자였던 이가 불교에 귀의하면서 자신이 지녔던 묵주를 발원문과 함께 가져온 것이다. 발원문에는 “십자가를 부처님께 바쳐 불가에 귀의함을 증명코자 합니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불상 안에 십자가를 넣다니, 뭔가 불경스러운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복장법사를 맡은 스님은 말없이 잘 챙겨두었다가 불복장 의식을 행할 때 부처님의 품에 소중하게 넣고 마무리하였다. 자신이 끼고 있던 반지를 발원문에 싸서 가져온 신도들도 여럿 있었다.

실제 불복장은 〈조상경〉에 따라 경전ㆍ발원문 등 80~100점을 봉안하며, 여러 단계의 납입이 이루어지는 장엄하고 체계적인 종교의식이다. 탑을 조성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탑의 내부에 사리ㆍ경전ㆍ불상 등을 봉안하는데 이를 사리장엄(舍利莊嚴)이라 부른다.

이러한 ‘불복장’과 ‘사리장엄’의 물목은 반드시 시주로 채워야한다는 전통에 따라 신도들은 불상과 탑을 모시는 불사에 동참하거나, 납입물목에 보시하거나, 사경으로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위의 사례처럼 끼고 있던 반지나 십자가를 넣는 것은 규범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그러나 규범적 납입과 나란히, 중생의 바람을 반영한 이러한 자유로운 종교적 행위가 끊임없이 행해졌다. 고대의 탑에서는 사리장엄과 함께 장신구ㆍ화폐ㆍ생활용품이 나왔는데, 이는 당시 고분에서 출토된 부장품과 같은 성격의 유물이었다. ‘부처님의 무덤’인 탑의 상징성을 공유하면서, 선왕추복(先王追福)이라는 탑을 세운 조성목적과 관련된 인물의 사후를 위한 부장품을 넣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신라의 분황사 모전석탑에서는 침통ㆍ가위 등 바느질 용구가 나왔는데 이는 탑의 조성주체인 선덕여왕의 것이었다. 불상에서도 법식 밖의 물품들이 납입되어 오대산 상원사 문수동자상에서는 회장저고리와 명주적삼이 나왔다. ‘장씨소대(長氏小對)’라는 글이 새겨진 회장저고리는 장씨 성을 지닌 세조 후궁의 것으로 보인다. 바느질 용구와 저고리는 모두 산 자들의 물품을 탑과 불상에 넣은 파격적 사례로, 선덕여왕과 후궁 장씨는 이를 신앙대상에 봉안하여 자신의 소망을 빌었다.

이처럼 법식과 무관한 불복장과 사리장엄은 고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몇 해 전 문경 김용사에서는 규범대로 불복장을 하는 한편, 지역에 전승되는 전통문화 장인에게 작품을 한 점씩 받아 유기ㆍ한지ㆍ자수ㆍ검 등을 함께 납입하였다. 수백 년이 지났을 때 이 지역의 당대문화를 알 수 있는 타임캡슐의 역할을 염두에 둔 것이다.

신앙대상의 내면에 자신의 소망을 담는 것은, 인간의 종교적 심성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행위이다. 엄격하고 체계적인 교리배경에 따라 사리장엄과 불복장이 이루어지지만, 이는 탑에 부장품을 넣었던 고대사회의 양상처럼 간절한 소망을 담는 장치이기도 한 것이다. 결국 탑과 불상을 조성하는 것은 출가수행자의 몫이 아니라 재가자에 의한 신앙의 문제임을 깨닫게 한다. 불교의례가 전통의 엄격한 계승에만 머물지 않고 중생의 마음과 적절히 조응하며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대목이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