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단상(267호)

“간혹 지하철에서 ‘임산부 배려석’ 안내방송을 듣는다. 방송을 들은 후 자연스레 눈을 돌려 분홍색 시트로 표시된 임산부 배려석을 쳐다보면 역시나 자리에는 사람이 앉아 있다. 여성이 앉아 있으면 ‘임신한 티가 나지 않는 초기 임산부겠지…….’라고 애써 생각하지만 남성이나 누가 봐도 임산부가 아닐 것 같은 여성이 앉아 있을 때는 마음 한편에 우울한 생각이 자리 잡는다.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한 건 아니다. 최근 들어 나이 든 어르신들이 임산부 배려석에 앉거나 노약자석에 앉은 임산부들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고 막말을 한다는 기사를 자주 접했기 때문이거니와 아내가 임신했을 때의 경험 때문이다.(지금은 출산 후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

만삭이고, 누가 봐도 임산부라는 것이 티가 났을 때, 기사에서만 봤던 일이 아내에게도 생겼다.

그날도 아내는 퇴근 후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집에 오고 있었다. 그런데 한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아내가 들으라는 식으로 자기 일행에게 “요즘 젊은 것들은 양보를 할 줄 몰라.”고 말을 했다는 것이다. 순간 아내는 “저 임산부에요.”라고 대꾸를 했지만 가슴속에 일어나는 서러움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렸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본 할아버지는 미안한 내색도 없이 일행과 대화를 하면 자신의 목적지까지 갔다고 했다.

아내에게 “지하철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가만히 있더냐?”라고 묻자 아내는 “그냥 쳐다만 보지 뭐…….”라고 씁쓸하게 답했다. 문득 내가 그 지하철 안에 있었어도 선뜻 나서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처음 들었던 분노는 어느새 부끄러움으로 바뀌었다.

우연히 JTBC에서 방영하는 ‘김제동의 톡투유-걱정 말아요 그대’를 우연히 보았다. ‘자리’를 주제로 진행된 방송에는 지하철 배려석과 관련, 임산부들에게 악성 댓들이 달린다는 내용이 나왔다. 한 여성 방청객이 보낸 ‘임산부 배려석 누굴 위한 자리인가요?’라는 사연에 사회자 김제동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한때 임산부였던 사람들의 후손 아니냐. 우리들의 엄마 이야기”라며 안타까워했다.

우리들은 어렸을 때부터 어르신을 공경하는 마음가짐인 ‘경로사상’이 몸에 배어있다. 자리를 양보할 때 어르신들에게 ‘몇 살이세요?’라고 물으며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은 없다. 저출산 시대, 이제는 경로사상보다 ‘경아사상’을 더 가져야 되는 게 아닐까 싶다. 임산부만큼이나 태어날 아이에 대한 배려가 필요한 세상이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