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걷는다 무소의 뿔처럼(267호)

광주전남불교환경연대는 매년 1월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동남아시아 불교권 국가를 탐방하고 있다. 지난 1월 인도성지순례 중에.

‘자연과 조화로운 삶, 세상과 함께하는 삶.’

지금 현재 내가 몸담고 있는 ‘광주전남불교환경연대’가 추구하는 활동의 방향이자 목표이기도 한 이 캐치프레이즈는 내가 지향해 가고자 하는 삶의 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신만을 위한 삶이 아닌 이웃과 자연과 세상을 보듬어 안는 삶이야말로 참된 길임을 자각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1988년 5월 어느 날, 당시 삼수생이었던 나는 광주 원각사 앞을 지나 가다가 청년회원 모집 안내 문구를 보았다. 옷깃을 스치는 듯한 이 짧은 인연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놓는 계기가 되리라곤 당시엔 미처 알지 못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불교와 별다른 인연 없는 삶을 살아오다 우연히 시작한 청년회 활동은 마치 마법에 빠져든 것처럼 나를 불법의 세계로 흠뻑 빠져들게 만들었다.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이라 했던가? 나는 사찰에서 진행하는 법회, 교리공부, 수련회, 수계식 등 모든 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당시 내겐 부처님의 가르침이 세상 전부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수줍고 말이 없는 숙맥에 가까웠는데, 이런 활동을 접하면서 성격과 삶의 방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만나는 사람들의 폭도 넓어지고, 다양한 신행활동을 하면서 축 쳐져 있던 삶에 활기도 넘쳐났다. 만나는 사람마다 절에 가자고 할 정도로 불심(佛心)이 가득했고, 내 모든 삶이 절을 중심으로 새롭게 재편되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우리나라 엄마들. 이들에게 산사에서의 쉼의 시간을 선물하는 프로그램 자따마따(자연따라마음따라) 1박2일. 지난 3월 합천 해인사에서.

대학에 입학 하자마자 가장 먼저 불교학생회에 가입해 활동을 시작했다. 함께 인연 맺어진 교내 불교학생회와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도반들과 함께, 날이면 날마다 기쁘고 즐겁게 활동했다. 매주 법회를 다니고, 교리 공부하고, 수련회를 가서는 1080배를 하는 등의 활동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세상을 다 얻은 듯 무엇 하나 불평불만이 없었던 웃음꽃 가득한 나날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 우리 사회는 혼돈의 연속이었다. 전두환 군사정권에 이어 노태우 정권이 들어서면서 군부독재 퇴진 구호가 거리에 가득했고, 최루가스가 난무했다. 자연스럽게 대불련도 사회적 저항을 담은 집회가 이어졌고, 찬불가 대신 민중가요를 더 많이 부르게 되었다. 갈등과 혼돈의 시간이 밀려왔다.

그동안 내가 생각하는 불교, 부처님 가르침의 세계는 고요히 참선하고 명상하고 절하고 수행하는 것이 전부였다. 즉, 정적이고 나 자신을 살피고 성찰하는 게 불교라고 여겨왔는데, 갑자기 ‘불교의 대사회화’라는 낯선 모습이 내 삶에 불쑥 끼어들어 온 것이다.

1년에 여섯 차례 어린이들을 위한 자따마따 1박2일을 진행한다. 지난 3월 합천 해인사.

처음에는 거부감도 들었었다. ‘이건 불교가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법회에도 나가기가 싫어졌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씩 흐르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개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개인이 지은 업(業)을 풀어내는 것 못지않게, 사회적 공업(共業)을 풀어내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걸 느끼게 됐다.

개인의 업은 각자 스스로 기도하고 정진하며 풀어갈 일이지만 사회의 공업, 즉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제반문제를 풀어나가는 일은 사회구성원 모두가 함께 참여하고 지혜를 모아 실천할 때 풀어낼 수 있다는 걸 이 과정에서 배우게 됐다.

광주전남불교환경연대 가족들을 위해 마련한 환경오계수계식이 지난 4월 광주 원각사에서 열렸다. 앞줄 3사7증사 스님과 수계자들이 함께 합장하고 있다.

불교와의 만남이 삶의 첫 번째 방향을 설정해주었다면, 불교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민 속에서 사회적 존재일 수밖에 없는 개인의 역할과 의무, 그 방향에 대해 고뇌하게 된 것은 내 삶에 있어 두 번째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불교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뜬 것이다. 새로운 영역을 접하고, 배우는 과정은 비록 힘들고 어려웠지만 내 자신의 삶과 가치관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이웃과 자연과 세상을 보듬어 안는 삶. 이것은 내가 평생 지향해나가야 할 화두로 단단하게 자리 잡았다. 2002년 인연 있는 보살님과 함께 광주 충장로 거리에서 매일 저녁 한두 시간씩 100일간 북한어린이돕기 거리모금을 전개했던 게 내 삶의 첫 백일기도가 되었다. 길거리에서의 모금활동은 내 삶을 역동적이고 더욱 깊이 있게 바꿔놓았다. 이후 2003년 광주지역에 불교의 사회적 역할을 담보하기 위해 ‘평화실천광주전남불교연대’를 창립하고 사무국장 소임을 3년 가까이 맡았다.

2010년 1월 광주 원각사에서 열린 시국법회. 광주전남불교환경연대는 시대의 아픔이 있는 현장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활동을 펼친다.

당시는 노무현 참여정부 때였는데, 이라크 파병반대 108일 1인 시위를 회원들과 함께하면서 평화를 위한 작은 몸짓으로 땀을 흘렸고, 천성산 도롱뇽을 지켜내고자 길거리에서 서명과 캠페인을 오랜 기간 진행했다. 평화와 통일, 뭇 생명의 존귀함을 보존하는 일이라는 확고한 믿음 속에 용맹정진 했던 시간들이었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대내외적인 상황과 여건 때문에 활동을 접어야 했다. 이후 광주지역에서 불교라는 이름을 내세워 사회에 목소리를 내는 단체는 전무하게 됐다.

매년 광주전남지역 시민 · 사회단체활동가들을 위한 ‘자비의쌀 나누기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3월 행사 중에.

그러다 2008년 1월, 지역의 불교활동가 네 명이 다시 의기투합했다. 광주지역에 불교NGO단체를 설립하고자 발원한 후 동분서주했다. 그렇게 시작한 단체가 광주전남불교환경연대다. 이 활동을 시작했던 나이가 불혹(不惑)이라 불리는 마흔이었다. 이후 10년 동안 불교NGO활동의 저변을 넓히고자 40대의 몸과 마음과 시간을 오롯이 바쳤다.

광주전남불교환경연대는 지금도 불교의 사회적 역할과 참여에 방점을 두고 • 불교환경운동 • 소모임 활동 • 어린이·청소년 프로그램 운영 • 불교계 및 시민사회 연대활동 등 다채로운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주요 사업으로는 • 탈핵운동 • 4대강 재자연화운동 • 환경교육 및 실천사업 • 한반도 평화와 통일사업 • 시민사회단체활동가 자비의 쌀나누기 • 망월동구묘역 작은음악회 • 5.18추모법회 • 시민사회단체에 전하는 붓다의 떡공양 • 제등행진 연희단 참여 • 광주시민과 함께하는 연꽃등만들기 • 에코맘 도시텃밭 • 환경오계 수계식 등을 펼쳐오고 있다.

또 소모임 활동으로는 • 책읽는모임 보리수아래 • 대중공양모임 초록세상 • 생태문화기행모임 산애들애 • 친환경살림을 선도해가는 에코맘 • 풍물패 간다르바 • 절수행모임 절로절로 등이 있다.

부설기관인 ‘어린이청소년공동체 나무숲’에서는 • 자따마따 1박2일 • 어린이생태학교 • 청소년리더십캠프 • 청소년지리산마음캠프 • 청소년자전거캠프 • 선재역사문화탐방 • 청소년자원활동가모임 해피트리 등 다양한 어린이청소년 활동을 10년째 지속적으로 펼쳐오고 있다.

이런 다양한 활동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물론 그 부모들, 불교를 새롭게 접하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과 교류는 나 자신을 조금씩 성장시켜주는 훌륭한 자양분이다. 또 다양한 불교NGO활동을 통해 시민사회활동가들과의 끈끈하고 유기적인 인연도 맺어오고 있다.

2015년 4월 ‘세월호참사 1주기 걷기순례 및 광주시민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회원들과 함께 손 피켓을 만들었다.

이런 활동이 지역 내에서 불교의 대사회적 위상을 높이는데 일조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부처님 가르침은 지금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 쉬어야 한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고, 함께 마음을 나누지 못하는 종교는 아무리 뛰어난 가르침을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 개인의 수행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웃과 자연과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개인의 수행 못지않게 이타행(利他行)이 중요하다.

개인의 수행과 개개인의 사회적 역할은 수레의 두 바퀴이자 새의 두 날개와 같다. 부처님 가르침을 통해 자신의 삶을 수행의 향기로 가득 채우고, 그 향기를 이웃과 사회와 자연으로 널리 퍼뜨리고 싶다.

나는 ‘자연과 조화로운 삶, 세상과 함께하는 삶’이야말로 모든 불자들이 걸어가야 할 진리의 길임을 확신한다.

소모임 ‘산애들애’는 매달 전국의 암자를 찾아 생태문화기행을 한다. 지난 4월 서산 개심사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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