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단상 (265호)

‘불타는 금요일’을 즐길 나이는 지났지만, 여전히 금요일에는 술 약속이 잦은 편이다. 그래서 토요일 오전에는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이불 속에서 뒤척인다. 가족들까지 용인해 주는 이 오랜 습관은 간혹 아파트 관리실에서 내보내는, 소음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안내방송에 방해를 받곤 한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알려드립니다. 오늘 오후 2시 당 아파트 관리실 앞에서 선착순 50세대 한정, 세대 당 두 자루까지 무료 칼갈이를 실시합니다. 입주민 여러분께서는 늦지 말고 오셔서 무료 칼갈이 서비스를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수년 전부터 한 달에 한 번꼴로 나오는 안내방송이라 첫 문장만 들어도 내용이 파악되는데, 스피커는 주저리주저리 소음 아닌 소음을 쏟아낸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반복해서. 꿀잠을 방해받긴 하지만, 무료 칼갈이 서비스를 해준다니 누군지는 몰라도 기특하다는 생각이 스치듯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관리사무소 앞을 지났고, 그 앞에는 칼갈이 서비스를 받으려는 사람 20여 명이 길게 늘어 서 있었다. 덤덤히 지나던 나의 눈에 띈 것은 트렁크가 열려 있는 봉고차였다. 그리고 차에 옆면에 적혀있는 ○○교회. 나는 그때서야 칼갈이 서비스의 실체를 깨달았다.

올해 여든 다섯이 된 어머니는 대구에서 홀로 살고 계신다. 평소 아침식사를 드신 후에는 인근 경로당에 가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낸다. 이야기도 나누고, 밥도 같이 차려 먹는다는데 그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일거리가 바로 화투다.

민화투든, 고스톱이든 화투가 재미있으려면 현금이 오가야 한다. 어르신들이야 10원짜리 100원짜리 동전을 놓고 화투를 치지만, 얼마 안 되는 돈이라도 잃고 나면 서운하고, 기분 나빠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어머니와 얘기를 나누던 중 판돈을 대주는 물주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물주는 바로 인근 교회의 목사님과 신도들이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연중 이런저런 날이면 찾아와 갈비탕을 대접하고, 떡과 과일을 놓고 간단다. 버스를 대절해 무료 관광도 시켜준다니 멀리 떨어져 전화조차 자주 드리지 않는 자식보다 백 배 낫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런 판돈 선교는 평생 절에만 다니던 어머니를 급기야 교회에도 다니게 만들었다. 어머니는 ‘양다리 신자’가 된 것이다.

사찰 법당에 앉아 목탁만 치면 불자들이 제 발로 찾아오던 시대는 지났다. 수십 년 간 포교사 역할을 톡톡히 해 오던, 천 년 전에 만든 불교문화유산의 약발도 떨어진 지 오래다. 수년 만에 300만 불자가 감소한 원인을 두고 네 탓, 내 탓하면 무엇할까? 다 자업자득이다. 늦었지만 불교계도 칼 좀 갈고, 판돈 좀 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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