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해요, 천태수행(264호)

세상이 혼란스럽고 사건사고가 많이 일어나면, 우리는 ‘오탁악세(五濁惡世)’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오탁악세는 사람들의 삿된 견해가 난무하여 서로 시기하고 다투므로 견탁(見濁)의 시대라 하고, 이런 시대에는 그 사회 사람들이 근심 걱정이 많아서 번뇌가 치성하므로 번뇌탁(煩惱濁)의 시대라 하며, 사람들이 사견에 쉽게 좌우되고 쉽게 번뇌에 물드는 등 그 자질이 낮으므로 중생탁(衆生濁)의 시대라 하고, 이와 같이 중생들의 자질이 낮아서 정의를 잊어버린 채 주의·이념에 휩싸여 다툼과 전쟁 등으로 기아와 빈곤·병고가 일어난 혼란한 겁탁(劫濁)의 시대라 하며, 이런 시대에는 중생들이 서로 해쳐서 자신의 수명대로 살지 못하므로 명탁(命濁)의 시대라 부른다.

우리는 가끔 세상을 한탄하면서 ‘요즘은 오탁악세’라고 하듯이, 예전에도 사건 사고가 일어나면 으레 오탁악세의 세상이라 하였다. ‘정법(正法) 시대’는 부처님의 바른 법을 가르치고, 바른 법을 배워 행하여, 누구나 바른 법을 증득하여 널리 바른 법이 행해지므로 ‘해탈견고(解脫堅固)’라고 한다. 그런데 시대가 변하여 부처님의 가르침과 수행은 있으나 비슷하게 수행을 흉내 내어 실제로 증득하는 사람이 점점 드물어지는 ‘상법(像法) 시대’에는 사람들이 외형적인 불사나 겉치레 신행에 더 신경을 쓰다 보니 법을 듣기는 하지만 정작 불도를 증득하는 자는 거의 나오지 않기 때문에 ‘다문견고(多聞堅固) 시대’, ‘다조탑사견고(多造塔寺堅固) 시대’가 온다. 그리고 ‘말법(末法) 시대’에는 사람들 사이에 참다운 진리는 몰락하고 교파 간이나 종교 간에 다투고 투쟁과 다툼이 횡행하여 선법은 숨어버리게 되어 ‘투쟁언송백 법은몰견고(鬪諍言訟白 法隱沒堅固)’의 시대라고 한다.

이와 같이 혼탁한 오탁악세에 꼭 필요한 것이 참회(懺悔)다. 삼보와 일체 중생에게 뉘우치고 사죄하는 것을 ‘참(懺)’이라 하고, 자신의 행위를 부끄러워하는 것을 ‘회(悔)’라 한다. 또 자신의 잘못된 죄행이 악한 것임을 아는 것이 ‘참’이고, 그 악업의 과보를 두려워하는 것이 ‘회’다. 우리가 사는 세상인 욕계(欲界)는 수많은 중생들의 욕망으로 건립되고 유지된다는 뜻이다. 그러다보니 중생들이 각기 원하는 것이 충족되지 않음으로 인해서 이들 사이에서 충돌이 일어나 오탁악세가 초래된다.

세상은 아이러니하게도 악업을 많이 지을수록 참회를 적게 하고, 선업을 많이 지을수록 참회를 많이 하는 것 같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기라성 같은 고승들이 출현했던 신라시대에는 한결같이 깊은 참회행을 닦았다. 일찍이 원광(圓光)은 〈삼국유사〉 원광서학조에서 “귀계멸참(歸戒滅懺)의 법으로 어리석고 미혹함을 깨닫게 했다.”고 하며, 점찰보(占察寶)를 두어 이를 뒷받침하도록 했다고 전한다. 여기서 ‘귀계멸참’이란 삼귀의(三歸依)·오계법(五戒法)으로 업장을 참회하는 법이다. 원효가 죽은 사복(蛇福)의 어머니를 참회시킨 것도 원광으로부터 신라에 전래되어온 이 점찰교법이었을 것이다.

또한 신라의 대표적인 참회 수행가 진표(眞表)는 삼업(三業)으로 닦는 망신참법(亡身懺法)을 행하였다고 전한다. 선계산(仙溪山) 부사의암(不思議庵)에서 삼업을 닦고 망신참법을 써서 지장보살과 미륵보살을 친견하고, 미륵보살로부터 〈점찰경〉과 미륵보살의 수지골(手指骨) 간자(簡子)를 받았다고 한다. 그가 행한 참회법은 중국에서 개황 13년(593)에 행한 기록이 있는 박참법(撲懺法)·탑참법(搭懺法)이며, 이를 행하여 죄업을 소멸했다고 한다.

신라시대 최고의 고승 원효대사에게는 〈대승육정참회(大乘六情懺悔)〉라는 저술이 있다. 우리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입으로 맛을 보고 말을 하며, 몸으로 접촉하여 촉감을 느끼고, 뜻으로 무언가를 생각하여 여섯 가지 마음이 일어난다. 원효는 이를 육정(六情)이라 하였다. 우리는 육근으로 살아가면서 신업과 구업과 의업을 짓고, 두 가지 결과를 초래한다. 하나는 자신에 그 결과가 미치므로 정보(正報)라고 하고, 이 정보에 따라 주위 환경이 따르는데 이를 의보(依報)라고 한다.

자신이 악업을 지으면 그 악업의 정도에 따라 자신의 오온에 영향을 주고, 다음으로는 그 오온이 살아가는 주위 환경에 영향을 끼친다. 이런 세상에는 사람들이 사악해서 서로를 해쳐서 악행이 발생하고 크게는 전란이 일어나며, 가뭄과 기아와 질병이 일어나 환경도 황폐해진다는 것이다. 이런 악세에서 만약 자애롭고 불쌍한 마음을 일으켜 선법을 행하면 점차 좋은 세상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대개 큰 절에는 대중들이 사용하는 방이나 요사채 혹은 종무소로 다양하게 사용하는 건물인 육화료(六和寮)가 있다. 여섯 가지로 화합하는 집이라는 뜻일 것이다. 삼보(三寶) 중에 승보(僧寶)에 화합하는 대중의 뜻이 들어 있듯이, 대중들이 화합해서 일을 처리하라는 은근한 뜻이 들어 있는 건물이다. ‘육화(六和)’란 여섯 가지 화합하고 공경하는 법을 말한다. 불경에서는 신업(身業)으로 화합하고 공경하는 일, 구업(口業)으로 화합하고 공경하는 일, 의업(意業)으로 화합하고 공경하는 일, 이익[利]에 화합하고 공경하는 일, 계(戒)를 같이 지켜서 화합하고 공경하는 일, 견해[見]를 같이 하여 화합하고 공경하는 일을 들고 있다.

선업을 짓고 선법을 행하기 위해서는, 선정을 닦아야 선업이 이루어져 선법이 증장된다고 한다. 몸소 계를 지키고 선정이 일어나게 하려면 자신의 악업에 대해 참회행을 닦아야 한다. 이와 같이 계를 지키고 참회를 닦지 않으면 선정 삼매가 일어나지 않는다. 마치 옷에 오물이 묻으면 이를 빨아야 깨끗해지듯 우리도 계가 청정하지 못하면 반드시 참회를 닦아야 한다.

〈불명경〉에는 “불법 가운데 두 종류의 건강한 아이가 있으니, 하나는 성품이 악을 짓지 않는 아이요, 다른 하나는 악을 짓고 나면 부끄러이 여겨 참회할 줄 아는 아이다.”라고 하셨다. 그런데 참회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마치 더러운 옷을 세탁할 때 비누와 세제를 달리하는 것처럼, 우리가 참회하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이다.

천태대사는 우리가 과거로부터 현재, 그리고 미래에 지을 업까지 몸과 뜻과 입으로 지은 육근의 악업을 모두 드러내어 참회하도록 하였다. 그의 〈법화삼매참의〉는 이 참회행을 통하여 법화삼매를 얻도록 참법(懺法)으로 만들어 대대로 천태 조사들에게 전승하도록 하였다. 그 참회문은 다음과 같다.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하옵니다. 저 ○○○는 일체중생과 더불어 멀고 먼 옛적부터 진심을 미혹하여 잊어버리고, 생사 바다에 흘러 다녀, 육근으로 지은 죄와 장애는 한없이 무거워서 원만하고 묘한 부처님 가르침을 열어 이해할 수가 없고, 모든 소원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중략)… 뜻의 허물과 죄 드러내어 참회하고 감히 감추지 않고 설하오니 이 인연으로 저와 법계의 중생이 의근의 일체 무거운 죄와 육근이 일으킨 일체 악업, 그리고 이미 일어났고 지금 일어나며 미래 일어날 것 참회로 씻어서 끝내는 청정하게 하소서.”

 

이때 참회의 관법은 작법참회(作法懺悔), 관상참회(觀相懺悔), 관무생참회(觀無生懺悔)를 한다. 작법참회란 일정한 계율절차에 따라 참회하는데 주로 소승불교에서 행한다. 관상참회는 선정에 의하여 참회하는 것이고, 관무생참회는 지혜에 의하여 참회하는 것으로 이 둘은 대승의 참회법이다.

천태대사가 중시한 관무생참회는 지혜의 법을 중시해서 참회를 밝히는 것이다. 대참회라고도 한다. 깊이 죄의 근원을 통달해서 자기의 죄악도 공하다고 알고, 그것을 통해서 멸죄에 이르는 참회이다.

일체제법은 본래 공적하게 있으니 복도 없는데 하물며 죄가 있으랴. 다만 중생은 잘 생각하지 못하고, 망령되게 유위(有爲)에 집착해서 무명(無明)·에()·애(愛)의 삼독을 일으키고, 이 삼독으로부터 널리 무량무변의 일체 중죄를 짓는다. 그러나 (이러한 근원을 찾아보면) 모두 일념에 마음을 요달하지 못하여 생긴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죄를 없애려고 한다면 이 마음을 돌이켜 관해서 이 마음이 어디에서 왔는가. 과거·미래·현재 찰나에도 주하지 않고, 상에 주함이 없는 가운데 마음을 얻을 수 없다.

이와 같이 참회해 나아가면 실상을 깨닫게 된다. 먼저 일체제법이 본래부터 공하다는 것을 알고, 또 그 본래 공적한 마음에서 생겼던 죄도 같은 양상으로 공하다고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죄와 복·일체만법이 공하게 있다고 안다면, 자기의 죄업도 공하게 있고 항상 청정하게 있다는 것을 알아, 죄악을 멸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관무생참회하는 방법이다. 이 참회가 이루어지면 보현보살뿐만 아니라, 시방의 부처님을 보게 된다고 한다.

〈차제법문〉에서는 이때 세 가지 죄업을 멸하게 된다. 첫째는 도를 장애하는 죄이고, 둘째는 체성의 죄이며, 셋째는 무명의 근본이라고 한다. 이중 첫째와 둘째는 작법참회와 관상참회로 없앨 수 있지만 셋째의 죄는 오직 관무생참회로 없앨 수 있다. 천태대사는 이 관무생참회는 그 작용이 아주 크기 때문에 육근으로 일으킨 일체 악업의 근원까지 씻어서 청정하게 하므로 육근청정을 얻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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