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걷는다, 무소의 뿔처럼(264호)

FM 전파 통해 대중포교
“미디어 홍수 속 소중한 가치 지켜내요!”

녹음실에서 포즈를 취한 최윤희 제작국장.

최윤희 불교방송 라디오제작국장 1990년 불교방송 공채 2기로 입사했다. ‘차 한 잔의 선율’, ‘거룩한 만남’, ‘무명을 밝히고’, ‘성전스님의 행복한 미소’, ‘정목스님의 마음으로 듣는 음악’, ‘월호스님의 당신이 주인공입니다’, ‘특집 다큐멘타리, 대승불교의 고향 간다라를 가다’ 외 다수의 프로그램 및 특집 프로그램을 기획·연출한 바 있다.

1990년 11월의 어느 늦가을 오전, 서울 마포 다보빌딩 15층에서는 BBS불교방송 공채 2기 선발을 위한 최종 임원면접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제는 고인이 되셨지만 당시 BBS 초대사장이자 (재)대한불교진흥원 이사장이셨던 장상문 사장님께서 나의 입사지원서에 눈길을 둔 채 질문을 던지신다.

“졸업 논문 주제가 뭔가요?”

나는 당시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졸업예정자 자격으로 지원을 했던 터라 아직 논문 제출 전이었기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불교의 태아관(胎兒觀)에 대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그 어느 것 하나 인연 아닌 것이 없다. 어린 시절 고전무용과 어린이합창단 활동을 한 덕에 그 옛날 동아방송(DBS)의 어린이 프로그램이나 KBS-TV ‘황인용의 장수만세’에 출연한 경험이 훗날 방송국 입사의 길로 이끈 것 같기도 하니 말이다.

우연한 기회에 마포 석불사 연화어린이법회와 중·고등학생법회를 다니면서 10대를 보낸 나는 불교방송 입사 후 27년째 마포로 출퇴근하고 있다. 자그마치 40년째 ‘마포’와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몇 해 전 울산지사에서 근무한 2년여 기간을 제외하더라도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을 나는 여전히 ‘마포’에서 근무 중이다. 그러고 보니 BBS불교방송 PD로서 적지 않은 시간을 많은 스님들과 진행자, 각계각층의 다양한 출연자는 물론 제작스태프들과 만나고 헤어졌다. 전파를 통해 만남과 헤어짐의 인연을 반복한 애청자들도 여럿이다.

입사 27년차 최윤희 제작국장은 "여전히 방송은 잡힐 듯 말 듯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고고하기만 하다."고 말한다.

방송 포교 밑거름은 불자

수년 전, 아침 9시에 방송한 ‘차 한 잔의 선율’ 프로그램에서 선방 수좌 스님들의 지대방이야기를 극화해 일주일에 한 번씩 소개한 적이 있다. ‘지대방’이란 것이 참선하는 스님들이 수행 틈틈이 잠깐씩 쉬는 공간이다 보니 이곳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만만찮게 훈훈할 뿐 아니라 입가에 절로 미소 짓게 하는 이야기들이 많다. 그만큼 제작진이 취재 반, 귀동냥 반으로 선가에 내려오는 스토리 취재를 위해 직접 발품 팔아 고생해서 구성하는 코너였다.

그날 방송도 결제기간 중 안거에 드신 스님들을 위해 어느 불자님께서 보내신 빵과 야쿠르트를 대중공양하는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방송프로그램에서 주인공으로 내세운 가상의 스님이 어른스님들과 소임자 스님들을 다 챙겨드리고 나니 정작 자신의 몫이 남아있지 않아 속상한 마음을 다스리려 전각 뒷마당에서 속가 시절 배웠던 국민체조며, 이상야릇한 몸동작으로 호흡을 내쉬다 입승스님(안거기간동안 대중을 통솔하고 전체적인 운용을 책임지는 스님으로 학급의 반장 스님 격)에게 수행자답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은 데 이어 억울한(?) 대중 참회를 해야 했다는 내용을 방송했다.

그렇게 생방송을 마치고 사무실에 내려와 보니 청취자들로부터 답지한 메모가 한 다발 쌓여있는 게 아닌가? 오늘 아침에 방송된 그 선방에 떡을 대중공양하고 싶으니 주소를 알려달라는 것부터 그 수좌 스님의 법명과 출가본사를 알고 싶다는 등의 민원성 메모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뿔싸. 그것은 단지 방송을 위한 허구였다고, 아무리 말씀을 드려도 불자로서 도리를 다하고 싶으니 그 스님의 연락처를 내놓으라신다. 참으로 순수하기 그지없는 우리 청취자들이다. 방송 멘트 하나하나를 허투로 듣지 않고 신행생활의 지침으로 삼아 듣고 또 듣는 청취자들. 아마도 이것은 종교방송이기에. 아니 불교방송이기에 가능한 일이리라 생각한다.

뿐인가. BBS불교방송 로고가 새겨진 취재차량을 보고 합장 배례하는 노보살님이나 마포에 자리한 불교방송 건물을 드나들 때마다 부처님 도량을 참배하듯이 곱게 손 모으고 합장 반배하시는 모습은 이 시대 불교방송이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존재하고 발전해야 하는지를 다시금 일깨워 주기에 충분하다.

때론 셀 수 없이 많은 청취자들이 편지로 엽서로 인터넷으로, 또 문자메시지로 프로그램에 대해 보내는 즉각적인 반응들이, 그 어떤 모니터보고서나 시청자위원회의 메시지보다 더 매서운 경책으로 다가올 때가 종종 있다. 사실 새로운 방송 아이템을 구상하거나 특집기획의 단초는 항상 신행과 수행의 현장에서, 그것도 불자들을 비롯한 청취자들에게서 나왔다.

미디어 홍수 속 방송 포교의 가치

방송된 프로그램을 다시 들으며 모니터링 하는 일도 최윤희 제작국장의 소임 중 하나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며 흘러가는 방송환경과 뉴미디어의 출현으로 이제 라디오는 참으로 예스러운 매체가 되어버렸지만, 디지털로 중무장한 수많은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도 여전히 그 가치는 찬란하기만 하다.

혹자는 한국불교 대중포교의 역사는 BBS불교방송의 개국 전(前)과 후(後)로 나뉜다고 말한다. 또 어떤 이는 통도사·해인사·송광사의 삼보사찰에 빗대어 불교방송을 두고 ‘사보사찰’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며 BBS불교방송이 지닌 숭고한 역할과 기능에 대해 역설하기도 한다.

어쩌면 BBS-FM 라디오의 저력은 우리네 범부들의 소박한 일상을 중중무진의 인연들로 만나게 하고, 익명의 중생들이 평범하기 짝이 없는 하루하루를 고스란히 수행의 세월로 이어갈 수 있도록 지금 여기 실상으로 존재하는데 있지 않을까?

‘방송을 알면 불교를 모르고, 불교를 알면 방송을 모르고…….’ 27년 전, 불교방송 개국의 감격을 뒤로하고 이제 막 입사한 햇병아리 PD인 내게 당시 한 고위 간부가 털어놓은 속내다. 호기롭게 시작한 프로듀서의 길. 20대의 야문 청춘으로 시작해서 어느덧 30, 40대의 능숙한 직관을 넘어 지천명을 목전에 두고 보니 이제야 노련한 안목인가 싶었는데, 여전히 방송은 잡힐 듯 잡힐 듯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고고하기만 하다.

어쩌면 전파를 통해 이름 모를 수많은 청취자들과 경험치를 공유하고, 방송프로그램을 방편삼아 타인과 공동체의 삶에 대해 고민할 수 있다는 그 자체가 바로 연기적 삶의 실재라는 생각도 든다. 그것도 방송경력의 두께가 더해질수록 온 몸으로 섭수케 하니 이 역시 헤아릴 수 없는 불연(佛緣)이어야만 가능한 것임을 잘 알기에 늘 감사한 마음뿐이다. 나는 오늘도 내 인생의 이정표, BBS불교방송에서 삶의 여정을 수놓고 있다.

월호 스님이 진행하는 'ㄷ아신이 주인공입니다3'의 생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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