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등불이 되어 준 초발심(263호)

고준환
서울대 법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국민대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동아일보사 기자, 동아방송 PD, 경남대 교수, 경기대 법정대학장, 중앙도서관 관장, 한국교수불자연합회 창립 회장, 본각선교원 원장 등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누가 불두에 황금똥 쌌나?>, <활빨빨한 금강경> 등이 있다.

불교학생회와 교수불자연합회를 거치며
평생을 찾아헤맨 ‘마음자리’

석가모니불께 경배 찬탄합니다.

내가 이번 세상에 와서 부처님 법문을 처음 들은 것은 5·16군사쿠데타가 일어난 1961년 ‘부처님 오신 날’이었다. 그때 서울법대 1학년이었던 나는, 서울법대 불교학생회가 연 ‘고승대덕 청담 스님 초청법회’에 참석하였다.

그 당시 서울 낙산(駱山) 밑에 있던 서울법대 캠퍼스에는 황산덕ㆍ서돈각 교수님 등 독실한 불자 은사님들이 계셨다. 청담 스님께서는 부처님 탄생을 기리며 ‘마음’ 법문을 해 주셨다. 내가 감명 깊게 들은 그 주요 내용은 마음은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확실히 존재함을 논증하는 것이었다.

나는 경기도 화성의 유교적 농가에 태어났고, 한때 교회에 나간 적도 있었으나, 그 당시에는 인생관 확립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였다. 그 법회 후 법불회 회원들과 어울리면서 불교의 진리성으로 하여 고승대덕들을 만나고 부처님 가르침이 마음에 차츰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런 뒤로 주로 김동화 박사님의 <불교학개론>, <선으로 읽는 금강경>(무사인 선생님), 묘법연화경>(설송 스님), <대방광불화엄경합론>(탄허 스님), <우리말 팔만대장경>(법정 스님), <선문염송요론>(진각국사, 백봉 선생님), <그곳엔 부처도 갈 수 없다>(대우 선생님) 등을 읽었다. 그러나 마음이 무엇인지, 생각이 마음인지 아니면 수상행식인지, 지정의(知情意)를 합친 것인지, 심의식(心意識)과는 어떻게 같고 다른지를, 불교서적들의 ‘마음’에 관한 용어사용 혼란으로 십수 년을 헤맨 바 있었다.

결국 불교는 일체가 마음이 만든다고 가르친다. 진리는 말을 떠나 있으나, 말로 표현한다면 나는 <화엄경> ‘야마천궁게찬품’의 한 게송인 화엄게에 주목하여 그 구절을 정리하여 보았다.

약인욕요지(若人欲了知)
삼세일체불(三世一切佛)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심여공화사(心如工畵師)
능화제세간(能畵諸世間)
심불급중생(心佛及衆生)
시삼무차별(是三無差別)

사람이 만약 삼세일체 부처를 알고자 하면,
응당 일체존재의 성품이 마음의 지음이라고 보라
그 마음은 화가와 같아서 능히 모든 세간을 그리나니,
마음과 부처와 중생이 차별이 없다.

실천적 의미로는, 처음에 마음으로 안 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되게 하는 것으로, 마음을 바꿔 실천하는 게 생활 속의 유심조라는 이생 대행(大行) 스님의 법문이 떠오른다.

6근 6경 6식의 18계는 유심유식(唯心唯識)이며, 아말라식(amala識)이고, 청정무구심이며 순수의식(pure consciousness)이다.

그런데 불교는 명심견성성불제중(明心見性成佛濟衆)에 목적이 있으므로 마음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삼보에 대한 믿음과 10선계 등을 지키는 것, 실천사항으로 선정, 염불, 다라니, 기원 등을 수행하는 것이 긴요하다.

특히 선교일치라고 이론과 실천을 함께하는 정혜쌍수(定慧雙修)가 불자에게는 절실히 요청된다 하겠다. 나는 특히 실천면에서 참선을 통해 삼매에 드는 선정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통도사 극락암에 계셨던 경봉 스님과 해인사 원당암에 계셨던 조계종 종정 혜암 스님에게서 화두를 결택받기도 했다.

속리산 법주사에서 개최한 '제1회 대불련 전국 수련대회' 모습. 맨 앞줄 오른쪽에서 네번째가 고준환 선생이다.

그 밖에 수련방법으로 초월명상(TM), 해리팔머의 아바타 코스, 신선도(神仙道)의 심기신(心氣身) 삼공법(三功法)을 수련하면서 조화점을 찾기도 했다. 특히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가 창도한 초월명상을 도반인 박준수 변호사의 안내로 접하게 되었고, 삼매에 드는 체험을 하기도 했다. 한때는 온 가족이 함께 초월명상 등 심기신 수련을 실천하기도 하였다.

나는 군복무를 마친 후, 동아일보사 기자 생활 약 10년(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로 이어짐), 경남대와 경기대에서 법학교수 생활로 약 30년을 보내고 정년퇴직 하였다.

대학 3학년 때는 대불련 창립에 나섰고, 교수가 된 후 한국교수불자연합회를 창립하고 초대회장을 맡기도 했으며, 불승종(佛乘宗)에서 법사로써 <법화경> 설법도 했다.

교수정년 후에는 서울 종로오피스텔에서 참선과 불경을 함께 공부하는 본각선교원(本覚禪敎院)을 약 3~4년간 운영하였다.

그런 가운데 경영 문제도 있고, 건강에 이상이 생겨 신장 등에 여러 차례 수술을 받고, 생사 공포와 수술후유증으로 초발심인 신심이 크게 흔들렸다. 그 뿐 아니라 ‘생사불이(生死不二)’라고 해 왔음에도 생사의 갈림길에서 크게 당황해 했다.

지금 여기 불성의 자리에서 보면, 본래 무병(無病), 본래 무죄(無罪)인 것을! 참으로 부끄러웠고, 인생을 되돌아보며 수많은 반성과 참회를 하였다.

나는 가장 중요한 일로서 참선공부에 정진하여 언제나 삼매에 들 수 있게 했어야 했는데, 이를 너무 소홀히 하고 게을렀다. 그리고 중요한 시기에 주제파악을 못하였으나, 뒤늦게 깨닫고 참회하면서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 중이다.

나는 참으로 어리석은 자였다. 그렇기는 하나 일행삼매와 견성성불은 언제나 잊지 않으려 했다.

우리는 인생길을 걷는 나그네, 구름나그네 이다.
원효 스님께서는 인간의 생사는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과 같다 하였다.
(一片浮雲起滅)
한 자락 흰 구름이 하늘을 감도는데,
어느 곳 한 자리도 머물 수가 없더니,
구름 새 푸른 하늘은 예와 이제 같더라.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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