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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스님의 따뜻한 법문 外독자마당 '도란도란' 263호

어느 스님의 따뜻한 법문
김보덕화 서울시 노원구 월계동

“꼬끼오~”

정유년(丁酉年)의 첫 새벽을 깨워 주는 닭의 우렁찬 소리가 귓전에 메아리친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여 나도 모르게 살짝 잠겨있었던 마음의 창문을 활짝 열어보려 이래저래 마음을 써본다.

20대 후반, 전생에 어떤 복을 지었는지 나는 깊고 깊은 불연(佛緣)을 맺고 불교에 입문하게 됐다. 불교를 알고부터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수행하려고 이래저래 발버둥 치고 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봉사’를 하게 됐고, 불교교리 공부까지 하게 됐다. 지난 날 나에게 잔잔한 법문으로 큰 가르침을 주셨던 한 스님이 떠오른다.

우리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일이 스님의 본분인 건 두말 할 나위없다. 그래도 그 스님은 내가 불자로서의 삶을 살게 하는 데 큰 도움을 주신 분이라 잊을 수가 없다. 후에라도 잊혀지지 않을 그런 분이다.

내가 스님을 뵈었을 때 스님께서는 봉사에 전념하고 계셨다. 스님께서는 어느 날 법회에서 ‘무주상보시’에 대하여 설법을 해주셨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베풀어도 베푼다는 마음조차도 없는 보시, 이 무주상보시를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하신 스님의 말씀이 오래된 기억 속에서 깨어난다. 스님은 절대 ‘말’이 앞서는 분이 아니었다. 말보다는 실천행(實踐行)을 우선으로 생각하시며 수행하고 포교하는 스님이었다.

스님은 절살림이 넉넉하지 못하면서도 가정형편이 어려운 소년소녀가장을 돕는 일이나 장애우를 지원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사회의 어두운 곳까지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여러 기관을 다니시면서 교화에 앞장섰다.

모든 불자들에게 언제나 “우리는 가족”이라고 말씀하시며 따뜻하게 챙겨주신 스님.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세계에는 훌륭한 스님들이 많다.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던 그 스님 또한 이 시대의 참 수행자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지금은 가까이에서 뵙지 못하지만 봉사를 하거나 다른 일을 할 때 스님께서 일러주셨던 가르침을 생각한다. 지금도 어렵지만 온 몸을 던져 활동하시는 스님을 생각하면서 나도 스님처럼 말보다 실천이 앞서는 불자가 되겠다고 다짐, 또 다짐한다.

편견과 모순, <금강경>의 패러독스
김그린 부산 수영구 수영성로

<금강경>에서는 소위 말하는 ‘선문답’처럼 부처님과 수보리 사이의 대화가 이어진다. 대화를 통해 부처님은 ‘상(相)’이 없는 것, 마음을 어딘가에 머무름 없이 하는 것을 강조하시며 우리 모두가 무주상보시를 행하는 것을 권장하신다. <금강경>에서 중요시되고 있는 이 ‘무주상보시’는 상이 없어서 복덕만 있을 뿐, 복덕을 짓는 주체도 복덕을 받은 대상도 보시로써 사용되는 물건도 없다. 그래서 우리에게 <금강경>은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내용도 혼자만 잘 살라고 가르치는 현대의 교육관과 사뭇 다르지만, 현대가 지향하는 논리에 입각하여 내용의 전개를 보면 더더욱 어렵게 느껴지기 쉽다. 1 더하기 1은 2, 2 더하기 2는 4로 일률적인 사고체계를 가진 현대인의 입장에서는 절대 공존할 수 없는 ‘크고 작음’이나 ‘많고 적음’ 등의 상반된 것을 어떤 때는 큰 것을 작은 것이라고, 어떤 때는 작은 것을 큰 것이라고 이야기를 이어가니 혼란을 가중하고 있는 것이다. 소위 ‘자랑스러운 현대인의 일원’으로서 스스로를 ‘나는 논리적으로 생각 한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이것은 분명한 모순일 것이다.

그러나 리처드 도킨스는 그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류의 이타적인 행동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우리의 유전자가 이기적이라고 말했다. 책에서 도킨스 박사는 그가 말하는 ‘이기적임’은 유전자에 국한된 현상일 뿐, ‘개인’이 이기적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우리의 유전자는 ‘나’와 ‘내 몸’ 따위를 위해 이기적인 것이 아니고, 종 전체의 장기적인 생존을 위해 ‘유전자로써’ 이기적인 행동을 발현한다는 것이다. 진화가 더 된—즉, 오래 살아남은 유전자들은 언뜻 보기에는 쓸모없어 보이는 협력과 공존이 자신들의 유전자를 계승하는 데에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잘 안다. 그래서 인류를 비롯한 많은 고등생물군이 ‘이기적인’ 유전자 덕분에 이타적인 행위를 권장 받는다.

우리는 도킨스의 예와 같이, 시점을 바꾸어 생각을 전환할 시간이 필요하다. 마치 유전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진화론이 이기적임과 이타적임의 상반된 성격의 근거가 공존하더라도 논리적으로 술술 풀리듯, <금강경> 역시 우리의 관점을 벗고 아무런 편견없이 보다 자유로이 사고한다면 이 모든 경전 속의 말씀이 모순도 아니고 역설도 아닌, 진실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유전자의 이기적임은 결코 우리의 이기적임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유전자의 이기적임이 바로 우리의 이타심과 관용의 근거가 될 수 있듯이 사람들의 협소한 생각 속에서 갇혀 있을 때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상반된 특징들이 사실 진리에 입각하여 공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과도하게 세분된 세상 속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시적인 특징에 집착하는 것을 강요받는다. 선착순 할인, 시험점수, 마감시간, 다이어트와 같은 상대적이고도 순간에 지나지 않는 가치들을 스스로 원하고 서로서로 권유하고 이상적인 인간상으로써 규정하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허무하고 덧없는 것이며, 우리는 더 거시적이고 큰 관점으로 통찰력을 가지고 모든 것의 가치를 심도 있게 검토하여 조금 더 궁극적인 인생을 살아갈 필요가 있다.

불교는 내 성장의 원동력
이채은 서울시 서대문구 세문로

나의 첫 대학생활은 불교 동아리로 시작되었다. 졸업을 열흘 남겨둔 지금, 4년 동안 불교와의 연결고리를 되짚어보게 되었다.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찾아간 불교 동아리방은 작지만 아늑했고 부처님과 회장 언니가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동아리에 신입생이 들어오지 않을까 걱정하던 회장 언니에게는 신입생인 내가 가장 아끼는 후배 1순위가 되었다. 불교 동아리뿐만 아니라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이하 대불련)에서도 신입생은 언제나 환영 받았다. 환영을 받거나 친절한 것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나를 반겨주는 대불련 사람들이 참 좋았다.

생각해 보면 절집에서는 어디를 가던 많은 분들이 예뻐해 주시고 기특하게 생각해 주셨다. 젊은 사람보다 노보살님들이 더 많은 곳에서, 생기 넘치는 대학생들은 눈에 뜨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대불련 법우들과 절에 갔을 때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이 많았다. ‘젊은 사람들이 절에 왔네.’ 하시며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시기도 하셨다. 불자 대학생이라고 하면 예쁘고 기특하다면서 ‘어린 나이에 부처님 법을 만난 것은 정말 큰 행운’이라는 말씀을 해주시는 분들도 많았다. 덕분에 나는 행동거지를 단정하게 하기 위해 꽤나 힘썼다. 또한 불교를 배우기 위해 책을 읽고 바른 마음을 갖기 위해 노력하며, 불자로서 살기 위해 노력하였다.

새해가 되면서 어른들께서는 이번 세뱃돈이 마지막이라 하셨다. 동시에 나의 대학생 불자로서의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돌아보니 불교와 법우들 그리고 대학생 불자들을 예뻐해 주셨던 분들로 4년의 내 대학생활은 반짝 반짝 가득 채워질 수 있었다.

불교와 함께 했던 빛나는 대학 생활을 마치고 내가 받았던 것들을 대학생 청년 불자들에게 되돌려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불교를 통해 내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경험을 이야기 해주고, 많은 분들에게 받았던 사랑을 나눠 줌으로써 그간에 받았던 은혜를 나누어 주고 싶다.

월간 금강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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