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신문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지상설법
<지상설법> 비워야 얻을 수 있는 행복
  • 천태종 운덕 대종사
  • 승인 2017.03.28 13:12
  • 댓글 0

인간이라면 누구나 행복해지길 원합니다. 행복은 인간의 기본 욕구 중 하나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행복과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유엔이 해마다 발표하는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15년 기준 156개국 중 41위를 차지했습니다. 세계경제수준 10위권에 드는 우리나라인데 왜 행복지수는 여기에 미치지 못하는 것일까요?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만 가장 큰 이유는 지나친 탐욕이 행복을 침해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욕심이 지나쳐 원하는 정도를 넘어서 모든 것을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마음이 결국 불행을 부르는 사례들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프랑스의 유명한 소설가 알베르 까뮈(Albert Camus, 1913~1960)가 쓴 소설 〈오해〉는 인간의 탐욕이 낳은 비극을 사실감 있게 표현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내용은 여인숙을 운영하는 모녀가 가난이 지긋지긋해 끔찍한 범행을 은밀하게 저지르기 시작합니다. 여인숙을 찾는 손님들 중에서 부자처럼 보이는 이를 골라 음식에 독약을 타 죽입니다. 그리곤 시체를 아무도 모르게 강물에 버립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청년이 투숙객으로 찾아옵니다. 바로 모녀에겐 아들이자 오빠였습니다. 이 청년은 어릴 때 객지에 나가 성공해 큰돈을 벌었습니다. 청년은 어머니와 누이가 어떻게 사는지 보고 싶어 신분을 숨기고 숙박을 신청했습니다. 투숙객이 오빠인 줄 모르는 누이는 음식에 독약을 타면서 이렇게 독백합니다. “우리에게 행복과 사랑의 문을 열어줄 돈을 위해서 살인을 하는 거야.”
모녀는 이튿날 죽은 청년의 지갑에서 돈을 꺼내다 신분증을 보고서 어릴 때 집을 나간 아들이고 오빠임을 알게 됩니다. 절망한 모녀는 결국 청년의 뒤를 따라 갑니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입니다. 돈에 집착한 어긋난 욕심이 끔찍한 비극으로 이어지는 것은 비단 이 소설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탐욕(貪慾)을 성냄과 어리석음과 함께 반드시 끊어야 할 삼독심(三毒心)이라 정의하고 있습니다. 즉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란 탐진치(貪嗔癡)는 이를 제어하지 못할 경우 인간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떨어뜨린다고 해 특별히 경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탐욕이 미국의 증권가에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미국 CNN머니는 공포&탐욕지수라는 용어를 개발했는데 주식시장이 현재 공포로 움직이는지, 아니면 탐욕으로 움직이는지 측정하는 지수입니다. 공포&탐욕지수는 50을 중립으로 해서 지수가 80이상이면 탐욕이 극심한 것으로, 20이하면 공포가 시장을 지배하는 것으로 분석합니다. 경제전문가들은 여기에서도 탐욕지수가 주식시장을 지배할까 매우 걱정합니다. 탐욕지수가 높아지면 자칫 경제 위기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가끔 탐욕이 지나쳐 주식과 부동산 시장에 탐욕지수 경보를 울리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탐욕을 끊으라는 가르침은 무작정 욕심을 버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생활의 진보는 무엇을 이루어내겠다는 인간의 욕심과 과학문명이 결합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바람은 희망입니다. 희망이 없는 삶은 무미건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누구나 원하는 바를 가슴에 품고 이를 이루고자 노력하고 앞을 향해 달려갑니다. 탐욕은 필요 이상의 것, 심지어 허황된 로또복권을 꿈꾸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일상 삶에서 추구해야 할 경제적 사회적 목표마저 버리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불교에선 탐욕을 줄일 때 행복과 가까워진다고 가르칩니다. 그 비유로 ‘빈그릇’을 예로 듭니다. 즉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자신이 가진 그릇의 크기만큼 빗물을 담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릇을 비워야 빗물을 채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기도 합니다. 그릇을 비워야 빗물을 채울 수 있듯이 나를 비워야 자비와 사랑을 나눌 수 있다는 법도 일러줍니다.
인도에서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숲 속에 성자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귀한 책을 선물로 받게 되었습니다. 성자는 매일 그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쥐들이 밤마다 성자가 자는 시간을 틈타 책을 쏠았습니다. 성자는 책을 지키기 위해선 쥐들을 물리칠 고양이가 필요해 고양이를 구해왔습니다. 고양이를 키우려니 우유가 필요했고 그래서 암소를 키웠습니다. 고양이와 암소를 키우며 살려니 큰집도 필요했습니다. 큰집에서 살다보니 혼자서는 다 돌볼 수가 없어 암소와 집안일을 돌봐줄 여자를 구했습니다. 여자와 함께 살다 마침내 아이까지 생겼습니다. 살림살이도 더욱 늘어났습니다. 그는 더 이상 성자가 아니었습니다. 혼자 살 때보다 걱정이 많아지고 신을 섬기며 진리를 추구하던 그의 머리는 아내와 아기들, 고양이, 소 따위를 염려하는데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곰곰 생각했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그는 선물로 받은 한 권의 책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자그마한 욕심이 또 다른 욕심을 낳았고 결국 자신을 성자에서 한낱 세속의 평범한 범부로 만들어놓았던 것입니다.
행복은 이 이야기가 암시하듯 채워서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비워야 얻을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천태종 운덕 대종사  ggbn@ggbn.co.kr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천태종 운덕 대종사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