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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다니는 코끼리

윤세원 시립인천전문대 교수대선이 가까워 오면서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들을 보면서, 어느 문명 비평가의 책에서 읽은 「인식의 차이」라는 재미있는 의미가 함축된 짤막한 글이 생각난다. 

일단의 학자들이 어린이들이 현실을 보는 인식의 문제를 알아보기 위하여 캘리포니아 주의 초등하교 1학년 학생들을 상대로 하나의 조사를 하였다. 

조사 내용 중에는 왼쪽에 단어 하나를 써 놓고, 오른쪽에는 그 단어와 연결될 수 있는 그림을 세 개쯤 제시해 주면서 가장 관계가 깊은 것끼리 선으로 연결하는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제시된 문제들 중에 한 문제가 왼쪽에는 ‘날다'라는 단어가 쓰여 있고, 오른쪽에는 코끼리, 새 그리고 개가 그려져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절반 이상의 어린이들이 코끼리에다 선을 연결시켜 놓았더라는 것이다. 날아다니는 것은 새이므로 새에다 선을 연결시켜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코끼리에 연결시켜 놓은 것은 매우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코끼리에다 선을 연결시킨 어린이들에게 그 연유를 알아보니, 디즈니랜드에 있는 코끼리 ‘덤보'도 날아다니고 책에도 날아다니는 코끼리가 많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이야기를 소개한 문명 비평가의 의도는 어린이와 어른,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인식의 차이와 사회의 유지라는 명제에 대한 탐색이었다. 하지만 필자는 우리의 현실과 관련하여 전혀 다른 상상을 해 보게 된다. 날아다니는 코끼리는 코끼리에 관한 한 백지 위에 떨어진 최초의 물감 색깔이 되어버린 셈이었다.

실물의 코끼리를 모르는 사람에게 제공되는 최초의 정보가 갖는 위력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예는 어린들의 상상력을 키우기 위한 흥미본위와 상업적 목적에 의한 것이지만, 만약 이 최초의 정보가 불순한 의도에 의하여 고의적이고 악의적으로 왜곡된 것이라면 문제는 매우 심각해 질 것이다. 또한 필자는 이러한 인식의 오류가 비단 어린들에게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겠는가 하고 의문을 제기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사실이나 현상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없고, 이와 관련된 여러 가지 상황과 조건에 대한 종합적인 해석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전달되는 최초의 정보는 얼마든지 날아다니는 코끼리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리사회에는 특정한 목적 하에서 악의적으로 왜곡되고, 뒤틀리고, 부풀어진 ‘날아다니는 코끼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정보들이 난무하고 있고, 이 정보의 홍수는 금년 년 말까지 이 땅의 모든 것을 휩쓸고 갈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올해 말까지 대한민국에는 대통령 선거와 이에 관련되는 일 이외에는 일은 어느 누구의 주목도 받을 수 없게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필부들에게 전달되는 난무하는 정보 속에는 코끼리를 날게도 하고, 새를 물속에서 헤엄치게도 하며, 땅 위를 걸어 다니는 생선을 만들어 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이라는 직책은 조작되거나 터무니없이 부풀어진 능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자리이다. 그리고 더욱 난감한 일은 조작된 이미지에 의지하여 행해진 우리들의 선택은 코끼리가 어린이들의 인식 속에서 날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숲속에서 무리지어 걸어 다니는 실물의 코끼리로 전환될 수 있는 과정이나 기회조차 없다는 사실이다. 설혹 선택 이후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과정이나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이미 엎질러진 물일뿐이다.

윤세원 시립인천전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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