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구석구석 불교문화재 262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고려시대 석장. 중앙에 관음보살입상과 위에는 5층탑이 장식되어 있다. 고리장식은 없다.

석장(錫杖)은 스님이 길을 나설 때 사용하는 지팡이로, 스님이 들고 다닐 수 있게 허용된 18가지 물건 중 하나이다. 요즘처럼 교통과 문물이 발달한 때에 석장을 포함한 비구 18물을 들고 다니는 스님을 보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운 일이다. 사실 석장을 지니고 다니는 스님들이 아직도 계시다면 석장이 낯선 존재가 아닌 굉장히 친근한 존재였을 텐데, 이제는 무협게임의 아이템이나 중국 영화 혹은 지장보살의 지물에서나 볼 수 있게 되었다. 석장은 한국·중국·일본 삼국에서 모두 사용되었으나 중국도 요즘은 거의 사라졌고 일본만 예불이나 의식 때 사용되고 있다.

석장은 산스크리트어로는 칵카라(khakkhara)라고 하며 유성장(有聲杖)·명장(鳴杖)·지장(智杖)·덕장(德杖)·금주석이라고도 한다. 보통 육바라밀을 상징하는 6개의 고리가 달려있어 육환장(六環杖)이라고 하며, 고리의 개수에 따라 4환장·9환장·12환장으로 부른다. 서유기의 삼장법사가 들고 다니던 것은 9환장과 비슷하며, 덕이 높은 고승들이 사용하였던 것이다.

석장은 장두부(杖頭部:머리 부분)와 병부(柄部:자루 부분)로 나누어진다. 장두부는 하트모양의 큰 고리로 구리 혹은 청동으로 만들었으며, 병부는 나무를 주로 쓰는데 철제도 있으며 머리부분에 긴 나무를 끼어 사용하였다. 장두부 정상 또는 고리의 안에 보주(寶珠:보배로운 구슬)나 보탑(寶塔:보배로 장식한 탑)·불상 등을 조각하고, 장두부 좌우에 앞서 말한 4개, 6개, 9개 혹은 12개의 작은 고리를 매달아 짚을 때마다 소리가 울리게 되어있다.

참고로 비구 18물은 다음과 같다.

*비구 18물 ①양지: 이빨을 청결히 하기 위한 버드나무 ②조두: 대두, 소두의 분말로 손을 씻는 비누로 쓴다 ③삼의(三衣): 법복 ④병 ⑤발우 ⑥좌구: 앉고 누울 때 까는 천 ⑦석장 ⑧향로 ⑨녹수낭: 물을 마실 때 수중벌레들의 목숨을 보호하고, 자신의 위생을 지키기 위하여 물을 거르는 천으로 된 주머니 ⑩수건 ⑪도자: 손칼 ⑫화수(火燧): 불을 피우는 도구 ⑬섭자(子): 콧수염을 빼는 족집게 ⑭승상(繩床): 노끈 등으로 만든 상 ⑮경 ⑯율 ⑰⑱

석장의 8가지 교의적 의미

호림미술관 소장 고려시대 석장.서울시유형문화재 209호. 중앙에 삼존불, 위에는 5층탑이 정교하게 조각돼 있다. 작은 고리 3개가 있다.

석장을 사용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스님이 산속을 거닐 때에는 석장을 짚으며 있을지 모르는 독사와 해충과 같은 생명들에게 ‘내가 지나가니 놀라지 말아라’라며 살생을 피하기 위함이고, 민가에서는 염불을 하며 탁발을 하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다. 그리고 교의적으로는 〈득도제등석장경(得道梯橙錫杖經)〉을 통해 석장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알 수 있다. 〈득도제등석장경〉은 5세기에 번역된 경전으로 가섭존자가 부처님께 석장의 의미와 석장을 지니는 예법, 고리의 개수에 대한 의미 등 석장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묻고 답하고 있다.

가섭존자가 부처님에게 석장의 의미에 대해 묻자 부처님은,

“석장이란 지혜의 지팡이[智杖]며, 덕의 지팡이[德杖]이다. 성인의 지혜를 뚜렷하게 나타내는 까닭에 지혜의 지팡이라 하고, 공덕을 행하는 근본인 까닭에 덕의 지팡이라고 한다. 이러한 석장은 성인의 표식(表式)이며, 현명한 이의 밝음의 표시[明記]이며, 도법(道法)에 나아가는 바른 당기[正幢]이며, 생각한 이치를 이룩하는 뜻이다.”

라고 하였다. 그러자 가섭존자는 다시 부처님에게 석장을 어떻게 지녀야 하는지, 왜 석장이라고 하는지 물었다. 그러자 부처님은 자세히 잘 듣고 기억하라고 하며 석장의 여덟 가지 뜻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석장에서 석은 가볍다[輕]는 뜻이다. 이 석장을 의지해 번뇌를 제거하고 삼계를 벗어나기 때문에 가볍다고 한다. 또 석은 밝다[明]는 뜻이며 석장을 짚는 사람은 지혜의 밝음을 얻기 때문에 밝다고 한다.

석은 돌아오지 않는다[不]는 뜻이니, 이 석장을 짚는 사람은 삼계(미혹한 중생이 윤회하는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의 세계를 벗어나 다시는 물들고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돌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석은 깨어나다[惺]는 뜻이니, 이 석장을 짚는 사람은 괴롭고 공한 삼계의 번뇌를 깨달아 4제(고집멸도(苦集滅道)의 깨우침)와 12연기, 즉, 무명(無明)·행(行)·식(識)·명색(名色)·육처(六處)·촉(觸)·수(受)·애(愛)·취(取)·유(有)·생(生)·노사(老死)를 분명히 알기 때문에 깨어난다고 한다.

석은 거만하지 않다[不慢]는 뜻이니, 이 석장을 짚는 사람은 거만한 업을 제거하여 끊어 버리기 때문에 거만하지 않다고 한다.

석은 멀리 한다[疏]는 뜻이니, 이 석장을 짚는 사람은 5욕(다섯 가지 욕망)을 멀리하여 탐애의 번뇌를 끊고 모든 음(陰: 오음, 오온)을 산산이 무너뜨리고 5개(五蓋: 사물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장애물 5가지)를 멀리 여의며 열반으로 나아갈 뜻을 세워 유위업(有爲業, 의지작용이 있어 윤회를 만들어 내는 중생들이 지닌 업)을 멀리하기 때문이다.

석은 채취(採取)한다는 뜻이니, 이 석장을 가지는 사람은 모든 부처님의 계율·선정·지혜의 보배를 채취하여 해탈을 얻기 때문에 채취한다고 한다.

석은 이룬다[成]는 뜻이니, 이 석장을 가지는 사람은 모든 부처님의 법장(法藏)을 이루고 부처님 말씀대로 수행하여 모자라거나 줄어들지 않게 하고 모두 성취하기 때문에 이룬다고 한다.” 라고 하였다. 결국 ‘석’이란 단순히 스님들의 지팡이가 아니며 걸림이 없이 지혜를 성취하게 되는 ‘지혜의 지팡이’라고 하였다.

경주 석장사지와 양지 스님의 마법지팡이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석장.(가마쿠라시대 13세기)고리 꼭대기에는 오륜탑을, 중앙에는 보탑을 조각하였으며 6개의 고리가 있다. 전체길이는 41.6cm이다.

〈삼국유사〉에 경주 석장동 석장사지에 얽힌 재미난 일화가 있다.

신라 선덕여왕대(632~646)부터 문무왕대(661~680)에 활동한 양지 스님(?~?)은 글씨도 잘 쓰고 그림과 조각에도 능숙하여 경주 부근의 부처님은 거의 다 스님이 조각하였다. 스님은 항상 석장을 짚고 돌아다니며 시주를 청하였다. 마을사람들은 석장소리만 들으면 으레 스님이 온 줄 알고 시주할 준비를 하였다.

어느 날 스님이 부처님을 조성하느라 일이 바빠져 탁발을 나갈 시간이 없게 되었다. 바빠진 스님은 석장에 커다란 포대를 매어서 밖으로 석장을 던지자 석장 혼자 짤랑짤랑 소리를 내며 마을로 내려갔다. 마을로 내려간 석장은 동네 구석구석을 돌며 짤랑짤랑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석장소리가 나자 사람들은 미리 준비한 쌀과 돈을 가지고 나왔는데 스님은 없고 커다란 포대가 달린 석장만 덩그러니 서 있었다. 사람들은 스님의 신통력에 놀라며 석장의 포대에 시주를 하게 되었고 그 후 사람들은 스님의 절을 석장사라고 부르게 되었다. 석장사지는 1986년과 1992년에 발굴되어 불상 5점, 금강역사상 5점과 ‘석장’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조선시대 도자기가 발견되어 말로만 내려오는 전설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존재했던 절이었으며 신라 선덕여왕 때부터 조선후기까지 유지되었음이 밝혀졌다. 또한, 양지 스님은 영묘사(靈廟寺) 장륙삼존상(丈六三尊像)과 천왕사 팔부신장(八部神將), 법림사(法林寺) 주불과 삼존불, 좌우금강신 등도 모두 조성하였다.

밝고 바르며 어진 지혜의 지팡이, 정시자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겸재 정선의 선인도해도(조선시대).석장을 들고 있는 노인을 그린 그림으로 '밤은 고요한데 바다 물결은 삼만리, 달은 밝은데 석장을 날려 하늘에 이는 바람을 타고 내려서네'라는 시구가 적혀있다.

고려 말에 식영암(息影庵) 스님이 지은 정시자전(丁侍者傳)이라는 소설은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 등 모든 미덕을 갖춘 인재가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인재를 알아볼 줄 모르는 당시의 사회상을 풍자하고 배불사상을 비판한 것이었다.

어느 날 식영암은 암자 안에서 벽에 기대앉은 채 졸고 있었는데 이때 정시자가 찾아와 절을 하였다. 졸다 깬 식영암 스님은 밖을 내다보았는데 거기엔 사람이 서 있는데 몸은 가늘고 키는 크며 색은 검고 빛났으며 붉은 뿔은 뾰족하고 우뚝하여 마치 소의 뿔과 같았다. 눈은 새까맣고 툭 튀어나와 마리 부릅뜬 눈과 같았다. 이상하게 여긴 식영암 스님은 그에게 성과 이름, 부모, 살아온 삶과 찾아온 목적 등에 대해 물었다.

정시자는 자신이 소의 머리를 가지고 있던 아버지 포희씨(包犧氏, 伏犧氏)와 뱀의 몸을 하고 있는 어머니 여와(女瓦)의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하였다. 그리곤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숲 속에서 버려지고 서리와 우박(세월을 뜻함)과 비바람을 맞으며 살아왔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은 남을 모시고 도와주고 있으나 모든 사람이 자신을 부리기만 해서 항상 천하고 고달프기만 하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을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을 부리지 못한다고 하였다.

정시자의 그동안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 식영암 스님은

“정상좌(丁上座, 정시자를 높여 이르는 말)는 옛 성인이 남겨준 사람이로다. 몸의 뿔이 허물어지지 않은 것은 씩씩함이요, 눈이 없어지지 않은 것은 용맹스러움이다. 몸에 옻칠을 하고 은혜와 원수를 생각한 것은 믿음과 의리가 있는 것이며, 쇠로 된 입부리를 가지고 재치 있게 묻고 대답하기도 하는 것은 지혜[智]가 있어 변론[辨]을 잘하는 것이로다. 사람을 붙들어 모시는 것을 직책으로 삼는 것은 어진[仁] 것이요, 예의가 있는 것이며, 돌아가서 의지할 곳을 택하는 것은 바름[正]이요, 밝은[明] 것이로다.” 라고 하며 정시자의 덕이 높기에 자신은 스승이 될 자격이 없다며 거절을 하였다.

여기서 정(丁)이란 지팡이, 석장을 가리키는 말이고, 시자(侍者)란 귀한 이를 모시는 사람을 뜻하는 것으로 앞서 말한 〈득도제등석장경〉에서 말한 지장(智杖, 지혜의 지팡이), 덕장(德杖, 덕의 지팡이), 명기(明記, 밝음의 표시), 정당(正幢, 바른 당기)과 의미가 통하고 있다.

석장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표면적으로 석장은 바르고 밝게 이끄는 지혜와 덕의 지팡이를 뜻하며, 궁극적으로 욕망과 장애물로부터 내 마음을 일깨워 깨달음을 성취해 해탈의 길로 인도 하는데 있다고 하겠다.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지상보살도(고려 14세기, 위)와 지장보살상(가마쿠라시대).석장은 민머리 혹은 두건을 쓴 지장보살의 지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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