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기도수행’ 했다 (262호)

제가 종달(宗達) 이희익 선사님 문하에서 간화선 수행을 이어가며 온몸으로 체득한 것은 바로 날마다 일상 속에서 ‘상속(相續)’, 즉 ‘있는 그 자리에서 매순간 하고자 하는 일과 하나 되기’였는데, 보다 구체적으로 선사께서는 이 상속에 대해 늘 다음과 같이 제창(提唱)하셨습니다.

“불법(佛法)은 나를 체득하는 것이며 이 체득은 나를 잊는 일을 통해 이루어진다. 나를 잊으면 전 우주가 ‘나’ 아님이 없다. 실제로 우리의 일상생활이 모두 이러하며 자신도 눈치 못 채는 사이에 이렇게 계속되고 있다.

자판을 칠 때 자판치는 일과 한 몸이 되었다가 그 일이 끝나면 또 다른 사물과 한 몸이 된다. 예를 들어 문서 작성이 끝나면 바로 찍혔는지 교정하고 교열하는 일과 한 몸이 되는 것이다. 선에서는 이를 가리켜 상속(相續)이라고 한다. 세속에서는 자식에게 재산을 넘겨주는 것을 상속이라고 하는데, 이는 선에서 나온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는 일부터 저녁에 잘 때까지 매순간 일어나는 일과 하나가 되는 이 경지를 선에서는 ‘수처작주 입소개진(隨處作主 立所皆眞)’이라고 표현한다. 이 말은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과 하나가 되면 가는 곳마다 모두 진리가 드러난다는 뜻이다. 물론 이것은 선의 경지에 이른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이고 보통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하다. 원래는 모두가 이런 경지에 서기 마련인데 무지(無知)와 무명(無明)에 가리어져 그것을 벗겨내기 전에는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 선가(禪家)에 몸 담아온 지난 40여 년을 돌이켜 보니 제가 날마다 일상 속에서 염송했던 일련의 기도(祈禱)들이 바로 상속(相續)의 원동력이었습니다.

눈 뜨자마자 신사홍서원(新四弘誓願)

저는 1975년 10월 선가에 입문해 2011년까지 새벽 6시 무렵 눈을 뜨자마자 다리를 틀고 앉아 ‘사은(四恩)’, 즉 부모와 이웃과 나라와 스승에 대한 네 가지 고마움을 온몸으로 새기며 하루를 여는 첫 기도문으로 ‘사홍서원’을 염송하였습니다. 그러다가 2011년 12월말 어느 날 문득 이 사홍서원은 보살의 경지에 오른 분들은 실천 가능하나 일반인들은 불가능하며 단지 형식적으로 염송하고 있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끼고 누구나 실천 가능한 ‘신사홍서원’을 널리 제창하며 저 역시 이 기도문으로 하루를 열며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그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날마다 한가지 선행(善行)을 행하오리다.

날마다 한가지 집착(執着)을 버리오리다.

날마다 한구절 법문(法門)을 익히오리다.

날마다 한차례 화두(話頭)를 살피오리다.

日日一善誓願行 日日一着誓願捨

日日一敎誓願學 日日一回誓願看

좌일주칠(坐一走七)

그리고는 ‘이른 아침 잠깐 앉은 힘으로 온 하루를 부린다’[좌일주칠] 가운데 ‘좌일(坐一)’, 즉 이른 아침 잠깐 앉을 때 처음 몇 분간은 수식관으로 머리를 맑게 한 다음, 선종 최후의 공안집인 〈무문관(無門關)〉에 담긴 핵심 성찰 구절들을 기도문으로 삼아 몇 개 염송하는데 하나 보기를 들면 제19칙 ‘평상심이 바로 도’[平常心是道]란 화두 본칙에 붙인 무문혜개 선사의 다음과 같은 절창(絶唱)입니다.

봄에는 백화 만발하고 가을에는 달빛 밝으며

여름에는 바람 시원하고 겨울에는 흰 눈 내리네.

만약 사소한 일조차 마음에 두지 않으면

바로 이것이 인간세계의 좋은 시절이로구나.

春有百花秋有月 夏有凉風冬有雪

若無閑事掛心頭 便是人間好時節

그런 다음 1시간 정도 화두[성찰주제]를 참구하고 마칠 무렵 독화살을 맞은 사람이 즉시 해야 가장 시급한 일을 일깨워주는 석가세존의 ‘독화살의 비유’를 떠올리며 오늘 해야 할 시급한 일을 새기며 ‘주칠(走七)’, 즉 ‘하루 일과에 온몸을 던져 뛰어들기’를 위한 준비를 마칩니다. 그리고는 아침 식탁에 대개 빵 한쪽과 우유 또는 과일쥬스 한 잔 및 약간의 건과류를 차려놓고 자리에 앉아 합장을 하고 ‘식사오관(食事五觀)’ 기도문을 염송한 다음 식사를 합니다.

집을 나서며 선행 실천 어렵지 않아요

출근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서며 집근처 전철역으로 가는 길이나 학교에 도착해 연구실이 있는 과학관 입구 근처에는 저로 하여금 신사홍서원 가운데 첫 번째인 선행(善行)을 실천하게 하는 쓰레기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들 주변에 쓰레기통이 어디 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눈에 띄는 즉시 집어서 쓰레기통에 넣습니다.

근무 시간 일과 중 오전에는 주로 복잡한 수식을 다루는 물리학 전공 강의 준비와 최근 발표된 연구논문들을 세밀히 살피는 일들을 합니다. 대개 동료 교수님이나 연구원들과 교직원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게 되는데 종교가 다른 여러 사람들이 같이 앉아서 밥 먹기 때문에 아침처럼 합장하고 ‘식사오관’을 염송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때는 음식을 알맞게 담은 식판을 들고 식탁으로 가는 도중에 마음속으로 ‘식사오관’ 기도문 염송을 마치고 앉자마자 바로 식사를 하면 됩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친 다음에는 연구실에서 차 한 잔을 마시며 오전 일과를 돌아보고, 중간평가를 하거나, 성찰에 관한 글들을 새기거나, 제가 성찰한 바를 정리해 선도회 홈페이지에 올리기도 합니다.

오후 일과

요즈음 오후에는 주로 제가 맡고 있는 교양강좌인 ‘참선’ 또는 ‘우주와 인생’에 관한 강의 준비를 하는데 이 또한 성찰의 연속이며 강의록을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레 책으로 엮기도 합니다.

강의가 없는 날 오후에는 여유를 가지고 현재 진행 중인 연구논문에 집중하곤 합니다. 그런 다음 저는 하루를 일찍 시작하기 때문에 오후 5시 무렵 퇴근을 하기 위해 연구실을 나섭니다. 귀가까지는 버스와 전철로 약 1시간이 걸리는데 이때는 대개 낮의 피로를 풀 겸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수식관’에 몰두하거나 선도회 목동본원(2·4주 목요일 저녁 7시 〈선가귀감〉 제창)과 인사동모임(1·3주 토요일 아침 7시 〈신무문관〉 제창)을 위한 법문 구상을 합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귀가 후 저녁 무렵

하루 일과를 마치고 아내가 차려주는 저녁상 앞에서 역시 합장을 하고 ‘식사오관’을 염송하고 식사를 합니다. 그런 다음 저녁 식사 후에는 편안하게 아내와 함께 뉴스나 EBS 교양 프로그램을 시청하거나 유튜브 동영상 가운데 성찰에 관한 자료들을 다리를 틀고 앉아 눈 감고 듣기도 합니다. 또한 이틀에 한 번 정도 저녁 9시쯤 단지 내에 위치한 체력단련실에 가서 40분 정도 재활치료 겸 노쇠지연을 위한 운동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루를 마무리할 무렵 다리를 틀고 앉아 몇 분간 수식관을 수행하며 정신을 가다듬은 다음, 오늘 이른 아침 하루를 열면서 계획했던 일들을 제대로 실행했는지, 그리고 누구와 다투지 않을 일을 가지고 다투지는 않았는지 등을 잠시 되돌아보고 1시간 정도 화두[성찰주제]를 참구한 다음, 하루를 회향하는 마지막 기도문인 ‘참나 찾기’(사람마다 나름대로 나란 멋에 살건마는 이 몸은 언젠가는 한줌 재가 아니리. 묻노니 주인공아 어느 것이 참나이련고?)를 다음과 같이 염송하고 숙면적정(熟眠寂靜)을 위한 잠자리에 듭니다.

마치는 말

결론적으로 최근 월간 ‘금강(金剛)’으로부터 ‘기도’에 대한 원고 청탁을 받고 저의 일상을 세밀히 살펴보니 바로 날마다 일상 속에서 제가 징검다리 식으로 염송해온 선적(禪的) 기도문들이 상속의 원동력이었음을 분명하게 인득(認得)하게 되었습니다. 1975년 선가에 입문하고 5년이 지난 후 제 자신을 돌아다보다가 가슴에 한 달 맺혀있을 일들이 일주일이면 사라지고, 일주일 맺혀있을 일들은 하루면 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즉 일상 속에서 상속의 흐름을 방해하던 일들이 빠르게 사라지는 것을 체험한 것입니다.

그러다 종달 선사님 문하에서 〈무문관〉 점검을 이어가며 또 5년의 세월이 더 흐르던 어느 날 문득 상속의 흐름을 방해하는, 가슴에 맺혀있는 일이 더 이상 없음을 명료하게 알아차렸습니다.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기도문들과 함께 하루하루를 이어온 지난 30년 동안, 하고자 하는 일들이 보다 철저히 순간순간 이어져오고 있음을 뼈 속 깊이 통찰하고 앞으로는 염불 기도와 참선 수행이 둘이 아닌 ‘염수불이(念修不二)’를 새롭게 제창하고자 합니다.

순천시도(順天是道)

끝으로 올해는 정유년, 즉 닭의 해입니다. 어둠을 몰아내며 새벽을 여는 수탉의 힘찬 홰치는 소리와 함께 우리 모두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습관을 가지면서 ‘좌일주칠(坐一走七)’, 즉 이른 아침 잠깐 앉은 힘으로 온 하루를 부린다면 더욱 좋겠기에, 이 정신이 담긴 널리 알려진 격양가(擊壤歌)를 앞의 두 구절로 재활용하고 제가 뒤 두 구절을 새롭게 붙인, ‘순천시도(順天是道)’란 제목의 다음 게송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기도하다) 해 뜨면 곧 일하고 해 지면 (성찰하며) 곧 쉬고

(상속하며) 자연에 따르니 복덕과 지혜가 저절로 오는구나.

日出而作 日入而息

隨順自然 福慧自得

박영재

서강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1978년 서강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했다. 1987년 뉴욕 주립대(스토니부룩) 이론물리연구소 연구원을 역임했다. 종달 이희익 선생의 뒤를 이어 선도회 지도법사를 맡아 수행을 지도하고 있다. 저서로 〈두문을 동시에 투과한다〉, 〈삶과 수행은 둘이 아니네〉, 〈석가도 없고 미륵도 없네〉, 〈무문관-온몸으로 투과하기〉, 〈날마다 온몸으로 성찰하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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