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함께 배우는 부처님 말씀(261호)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그 점에서 사람의 모든 행위는 행복을 얻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불자들 또한 예외는 아닙니다.

그런데 행복에는 여러 차원이 있습니다.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 불제자가 아닌 사람들도 행복을 추구하지만 우리 불제자들은 그중 보다 높은 차원의 행복을 추구합니다. 바꿔 말하면 불교는 가장 높은 차원의 행복을 가르치는 학교이고, 우리는 그 학교의 학생입니다.

학생이 초등학교, 중등학교, 대학교 등 여러 단계를 거치며 공부를 하게 되듯이 행복을 배우는 단계에도 여러 단계가 있습니다. 우리 불제자들은 부처님이야말로 그 단계들 중 가장 높은 단계에 오르신 분이라고 믿습니다. 말하자면 부처님은 행복학 박사인 것이지요. 물론 이때의 박사는 세상에 흔하고 흔한 박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이상 배울 것이 없는 가장 높은 지혜를 가진 분으로서의 박사, 부처님은 그런 박사이십니다.

현자는 마음을 잘 집중하여
내적 고요와 평화를 성취하나니
열반은 모든 얽매임으로부터 벗어난 경지,
열반은 위없는 기쁨이요 행복이다.

―《법구경》 25번 게송

열반은 행복의 가장 높은 차원입니다. 열반(涅槃)이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ana), 팔리어 닙바나(nibbāna)를 중국의 역경가들이 소리나는대로 옮겨 적은 것으로 본래의 뜻은 ‘번뇌의 불을 꺼진 상태’입니다. 열반은 번뇌가 모두 사라진 경지입니다. 번뇌는 고(苦)이고, 고는 불에 비유됩니다. 그 불이 모두 꺼져버려 더 이상 행복해질 여지가 없는 경지가 열반입니다.

열반을 성취하면 마음이 어떻게 될까요. 열반을 성취한 마음은 서늘합니다. 추석날 밤이 되면 하늘에 뚜렷한 달이 떠오르고, 서늘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지나갑니다. 그때 느끼는 서늘한 기분, 그때 하늘에 떠오른 밝은 달 같은 명징한 지혜가 부처님의 마음 상태이자 지혜의 경지인 것입니다.

열반은 부처님께서 성취하신 박사급 행복입니다. 그 행복에 도달함으로써 우리의 행복 공부는 끝나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인류 역사상 맨 처음으로 이 경지를 성취하신 다음 제자들에게 이 경지로 나아가는 길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비유하자면 부처님은 열반이라는 박사급 행복을 성취하는 교육 과정을 열어놓으신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등학생이 갑자기 박사가 될 수 없듯이 범부인 우리가 오늘 갑자기 열반을 성취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이 초등학생이면 중등학교로 나아가는 공부를 해야만 하고, 중등학교 학생이면 대학교로 나아가는 공부를 해야만 합니다. 그런 다음 마지막에 열반을 성취해야만 합니다.

다행하게도 열반으로 가는 중간 과정에도 행복이 있습니다. 다만, 그것은 일시적인 행복입니다. 잠깐은 행복하지만 얼마 안 지나 덤덤해지거나 불행해지는 행복인 것이지요. 행복→덤덤함→불행, 다시 불행→덤덤함→행복…. 이것이 아직 부처님의 경지에 오르지 못한 우리 범부들의 삶입니다.

이렇게 행복과 불행이 반복되는 상태는 시소가 오르내리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놀이 기구인 시소의 왼편을 불행, 오른편을 행복에 대입해봅시다. 이때 시소의 왼편과 오른편은 한쪽이 올라가면 다른 쪽은 내려간다는 점에서는 반대이지만 서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는 한 몸입니다.

시소의 왼쪽이 올라간다는 것은 오른쪽이 내려간다는 것을, 왼쪽이 내려간다는 것은 오른쪽이 올라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반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왼쪽이 올라가는데 오른쪽은 가만히 있는 것이나 오른쪽이 올라가는데 왼쪽이 가만히 있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행복의 크기가 불행의 크기를, 불행의 크기가 행복의 크기를 결정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신발이 발에 안 맞아 아프다고 해봅시다. 그렇게 한참을 아파하다가 신발을 벗으면 우리는 편안해집니다. 이때의 편안함, 즉 행복의 크기는 발이 아팠던 정도, 즉 불행의 크기와 같습니다. 발이 10만큼 아팠으면 편안함의 정도는 10이고, 20만큼 아팠으면 편안함의 정도는 20인 것이지요.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어린이가 좋은 신발을 선물 받고 기뻐한다고 합시다. 그런데 잠시 후 아버지가 와서 그 신발을 도로 가져가 버렸습니다. 이때 아이가 느끼는 불행은 선물을 받고 기뻐했던 정도와 같습니다. 그 아이가 선물을 받고 10만큼 행복했다면 10의 불행을 느끼고, 20만큼 행복했다면 20만큼 불행한 것이지요.

문제는 우리의 삶이 행복과 불행을 반복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 즉 시소가 자꾸만 오르내린다는 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행복과 불행을 반복하는 삶은 행복한 것일까요, 불행한 것일까요. 부처님께서는 그것은 불행하다고,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삶을 고(苦)라고 한 것은 그 점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고라는 말에 두 가지 뜻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는 좁게는 시소의 왼편(불행, 괴로움)을 의미하고, 넓게는 시소의 왼편과 오른편(행복, 즐거움)을 합친 것을 의미합니다.

자,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우리는 먼저 불행한 시소 왼편에서 행복한 시소 오른편으로 가야만 합니다. 그렇지만 그 또한 언젠가는 기울어져버릴 것이므로 우리는 그보다 더 높은 행복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왼편과 오른편으로 오고가지 않는 행복, 한번 행복하면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바로 그 행복이 열반의 행복입니다.

다른 모든 종교와 철학은 시소의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가는 행복법만을 말하지만 불교는 일단계에서만 그 행복을 말합니다. 그 다음 단계에서 불교는 시소 자체를 버리라고 말합니다. 시소를 버림으로써 불행과 상대되는 반쪽짜리 진짜 행복인 열반을 성취하라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소를 버린다는 것은 대체 어떻게 한다는 것일까요. 시소를 버린다는 것은 행복과 불행이라는 감정으로부터 초연해진다는 뜻입니다. 즉, 훌륭한 불제자는 행복과 불행에 대해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행복이 다가올 때는 그것이 곧 사라질 것을 기억하고, 불행이 다가올 때에도 그것이 곧 떠나갈 것을 기억합니다. 그것은 파도가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모양을 묵묵히 바라보는 것과 같습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모든 것은 마음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마음에 의해 결정된다는 불교 진리를 기억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마음의 본성은 부처님과 중생 간에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바꿔 말해서 우리에게는 부처님으로서의 마음이 있습니다. 부처님의 마음, 즉 불성은 번뇌를 초월해 있습니다.

행복과 불행은 감정 상태이지만 불성은 감정 상태가 아닙니다. 감정 상태로서의 행복과 불행은 밀려왔다가 밀려가기를 반복하는 파도와 같고, 번뇌를 초월한 불성은 그것을 묵묵히 지켜보는 사람인 것입니다. 비유로 말하다보니 어떨 수 없이 사람이라고 했지만 불성이 사람은 아닙니다. 불성은 인격체가 아닙니다. 그것은 성(性), 즉 비인격적인 마음의 성품입니다.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행복과 불행, 시소처럼 한쪽 편이 올라가면 다른 쪽이 내려가는 행복과 불행…. 우리는 이런 상태에서 불행을 벗어나 행복하기를 바라며, 그 행복은 물론 소중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불제자로서 그 행복 또한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그 행복조차 넘어서는 행복을, 진정한 행복인 열반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를 위해 가장 먼저 우리는 부처님에 대한 간절한 믿음을 확립해야만 합니다. 부처님은 겉보기로는 육신을 가진 분이지만 본성으로는 삶과 죽음을 초월한 불성 그 자체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불성이 있으며, 그 불성은 행불행을 초월해 있습니다. 불성은 그 자체로 이미 열반인 것입니다. 이 법문을 확고하게 믿는 것, 그 믿음을 바탕삼아 내 앞에 닥쳐 있는 갖가지 번뇌에 초연히 대처하는 것은 불제자의 엄중한 의무이자 고귀한 권리입니다.

〈행복경〉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번잡한 세상살이에 이리저리 부딪혀도
마음이 안정되어 동요하지 않으며
걱정과 어리석음 없이 청정하면
이것이 으뜸가는 행복이다.

마음을 다스려 청정하게 살고
사성제의 진리를 분명히 알아
실천하고 수행하여 열반을 성취하는 것
이것이 으뜸가는 행복이다.

부처님의 이 가르침을 따라 여러분의 삶이 하루하루 더 행복해지기를,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이 더욱더 질 높은 행복으로 채워지기를 부처님 전에 기원합니다.

 

김정빈
현대문학과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1985년 소설 <단>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지금까지 70권의 책을 냈다. 불교와 동양사상을 중심으로 삶의 진실을 탐구해왔으며, 마음과 명상에 대해 글을 쓰고 강의를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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