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귀 막아주고 복<福>을 부르는 덕금<德禽>

닭의 울음과 일출을 묘사한 계명도(鷄鳴圖). 온양민속발물관 소장. 〈사진제공=국립민속박물관〉

등잔불꽃 떨어지고 북두칠성 기우니
花落殘燈北斗傾
새해 알리는 새벽닭 울음소리
新年消息曉鷄聲

조선의 선비들은 제야(除夜)를 꼬박 뜬 눈으로 세우며 닭이 울기를 기다렸다. 수세(守歲)라 하여 섣달 그믐날은 잠을 자지 않고 새로 떠오르는 첫 햇살을 받았다. 이런 저런 생각과 감흥이 어찌 없으랴. 하여 제야나 설날 아침의 생각과 감흥을 읊은 시는 매우 많다. 위 조선 후기의 문신 윤기(尹) 선생의 ‘설날 새벽에 입에 나오는 대로 짓다[元曉口占]’라는 시도 그런 시다.

등잔불이 밤새 타다가 불똥이 떨어진다. 이를 옛 선비들은 등잔불의 꽃, 즉 등화(燈花)라고 불렀다. 밤새 선비의 벗이 되어주던 등잔불이 불꽃이 되어 낙화할 때쯤 북두칠성은 이미 북쪽 지평선으로 가라앉고, 새벽닭이 힘차게 운다. 새로운 해는 으레 닭 울음과 함께 떠올랐다.

다섯 덕을 갖춘 덕금(德禽)

예로부터 닭은 다섯 가지 덕을 갖춘 동물로 여겨졌다. 한(漢) 나라의 한영(韓)이 지은 〈한시외전(韓詩外傳)〉에는 닭의 오덕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머리에 관(冠)을 쓴 것은 문(文)이요, 발에 발톱이 있는 것은 무(武)요, 적을 앞에 두고 용감히 싸우는 것은 용(勇)이요, 먹을 것을 보면 서로 부르는 것은 인(仁)이요, 밤을 지켜 때를 놓치지 않고 알려주는 것은 신(信)입니다.

문ㆍ무ㆍ용ㆍ인ㆍ신. 닭은 이 오덕을 고루 갖춘 짐승이었기에 덕금(德禽)이라고도 불렀다. 시성(詩聖) 두보(杜甫)도 “그 덕을 기리어 다섯 가지로 표명하네[紀德名標五]”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이어서 “처음 울면 반드시 세 번을 헤아려 우네[初鳴度必三]”라고 하여 오덕 중에서도 시간을 알려 주는 신(信)을 가장 높이 칭송하고 있다.

옛 사람들은 새벽빛이 밝아 올 때까지 닭은 세 번을 울며 알려준다고 생각하였다. 그러고 보니 〈성서〉에는 베드로가 닭이 울기까지 예수를 세 번 부인하였다는 말이 나온다. 닭과 삼(三)이란 숫자에 어떤 특별한 연관성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다만 시간을 알려주는 일은 단 한 번으로 끝낼 수 없을 만큼 소중히 여겼던 것은 동서양이 공통이었던 것 같다. 중동에서도 닭이 우는 시간은 한밤을 깨우는 새벽이었다.

닭을 시야(時夜)라고도 불렀다. 밤에 때를 알려준다는 의미인데,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 “계란을 보고 새벽에 시간을 알려 줄 것을 구한다[見卵而求時夜]”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가 “우리네 사람이 참으로 가장 영명하지만, 시야는 누가 너에게 미치겠느냐.”라고 읊은 그대로, 시야만큼은 인간이 닭에 미칠 바가 아니다. 그래서 〈회남자(淮南子)〉에서는 천계(天鷄), 즉 ‘하늘 닭’이라고 한 것이리라. 해가 뜰 때면 천계가 울고 천하의 모든 닭이 따라 운다고 한다.

새벽, 밝음을 여는 닭

〈동방삭 점서(東方朔占書)〉에 “새해 정월 초하루는 닭을 점치고, 초이틀은 개를, 초사흘을 돼지를, 초나흘은 양을, 초닷새는 소를, 초엿새는 말을, 초이레는 사람을, 초여드레는 곡식을 점친다. 해당하는 날이 온화하고 맑으면 번식하며 편안하고, 흐리며 추우면 병들고 쇠한다.”라고 하였다.

한 해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것과 새벽을 여는 닭의 이미지는 어렵지 않게 오버랩 된다. 어둠을 깨고 밝음을 여는 닭의 이미지. 거기에는 질병과 재앙을 막고 건강과 복을 바라는 사람들의 소망이 들어 있다.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이 그린 ‘닭’엔 그런 소망이 가득하다. 붉은 벼슬과 길고 검은 꼬리. 옛날 문헌에 자주 등장하던 긴 꼬리 닭 장미계(長尾鷄)가 분명하다. 그리고 하늘을 응시하는 형형한 눈. 그 위풍당당한 수탉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악귀가 감히 덤빌 엄두를 못 낼 것만 같다. 이렇게 닭은 벽사초복(闢邪招福)의 징표였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새해에 닭 그림을 대문에 붙임으로써 그 소망을 나타내었던 것이다.

옛 그림에서 암탉은 대개 여러 병아리들을 몰고 다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포근한 어머니의 품, 따뜻한 가족의 사랑. 이보다 더 좋은 게 있을까. 그래서 풍수지리학에서는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 황금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을 최고의 명당으로 꼽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신라에서 프랑스까지

닭은 우리민족에겐 더욱 각별하였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어느 날 신라의 왕이 금성(金城) 서쪽 시림(始林) 숲속에서 닭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호공(瓠公)을 보내어 알아보니 금궤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흰 닭이 그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 금궤를 열어보니 안에 사내아이가 있었다. 이 아이가 경주 김씨의 시조 김알지(金閼智)이다. 그리고 이때부터 시림을 계림(鷄林)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신화에서 닭은 새 중의 새, 즉 봉황(鳳凰)이다. 그리고 나무는 지상에서 하늘을 향해 뻗어간다. 하늘에서 새가 내려오고, 땅에서는 나무가 올라간다. 그 접점에 하늘과 땅과 사람이 만나고 있는 것이다.

민속학에서 새와 나무는 중앙아시아 샤머니즘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다. 중앙아시아의 유목문화가 동서양 문화의 원류라는 학설이 거의 정설이라고 볼 때, 극동의 끝 신라 사람들과 예수가 살던 중동의 유목민들이 닭을 매개로 꿈과 소망을 함께하고 있다는 게 참으로 신비롭다. 교회당 첨탑 장식물이지 닭이지 않은가. 하늘의 전령사, 혹은 어둠과 악을 깨뜨리고 여명을 여는 상징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닭은 가톨릭 국가 프랑스를 상징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스포츠용품업체의 로고가 수탉이고, 국가대항 축구경기장엔 으레 이 위풍당당한 수탉이 등장한다. 프랑스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왕인 앙리4세가 “일요일에는 반드시 백성들이 닭고기를 먹을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다는데, 지금도 프랑스인들은 일요일엔 닭고기 스튜를 즐겨 먹는다고 한다.

유신(酉神)과 군다리보살

12지지(地支)에서 닭은 유(酉)다. 방위로는 서방, 계절로는 가을, 하루 중엔 저녁 5시에서 7시 사이이다. 오행(五行)으론 금(金)이며 오색(五色)으론 백색에 해당한다. 음양오행으로 유신(酉神)을 타고난 사람은 대개 총명하고 강한 결단력의 소유자라고 한다. 너무 강한 결단력이 때론 실수를 유발하기도 한다.

당당한 수탉의 이미지와 벽사(邪), 그리고 지나치게 강한 결단력이 합쳐지면 곧 군다리보살(軍茶利菩薩)의 형상이 된다. 군다리보살은 광활한 우주의 별나라마다 고통과 혼란을 일으키는 악마들을 무찌르고 선을 지키는 보살이다. 보살이 벽사호법(闢邪護法)의 사명을 안고 불철주야 두 눈을 부릅뜬 채 지키다가 잠깐 조는 사이에 온갖 악마가 세상을 어지럽히게 된다. 이에 보살은 분기탱천, 큰 칼을 빼어들고 악마들을 모조리 내리친다.

서산대사 휴정, 그리고 소크라테스

머리카락 희다하여 마음도 흰 건 아니라고
髮白非心白
옛 사람이 일찍이 설파하였다
古人曾漏洩
지금 닭 울음 일성을 들으며
今聽一聲鷄
대장부 하는 일 다 끝냈다
丈夫能事畢

서산대사 휴정(休靜)의 “봉성을 지나다가 한낮의 닭소리를 듣다[過鳳城聞午鷄]”란 시다. 인생의 경륜이 쌓였다고 하여 반드시 지혜로워졌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물며 구도의 길에 나서서 검은 머리 하얗게 되었다고 해서 마음도 깨끗해졌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다 어디선가 한 낮에 우는 닭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대장경 천언만어가 본래 백지”임을 홀연 깨닫는다. 사사물물이 모두 본래면목, 자기 자신인 경계. 무슨 말이 필요하랴. 깨달음은 그렇게 온다. 닭소리와 함께 문득 미망(迷妄)이 파한다.

미망을 깨치고 깨달음이 열리는 순간과 닭이라. 소크라테스에게 죽음이 이런 것이었을까? 그가 사형선고를 받고 감방에서 독배를 마실 때의 얘기다. 몇몇 제자와 지인들과 함께 죽음에 대해 마지막 대화를 나누고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신다. 약기운이 잘 퍼지라고 감옥 안을 거닐고는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마지막 유언을 남긴다.

“여보게 크리톤, 아스클레피오스 신께 닭 한 마리를 빚지게 되었군. 부디 나 대신 갚아주게.”

아스클레피오스는 의술(醫術)의 신으로, 병이 나은 자는 반드시 이 신에게 보답으로 닭을 한 마리 바쳤다고 한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에게 죽음이란 병든 삶으로부터의 쾌유인가? 아마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에게서 죽음이란 분명 육체로부터 영혼의 해방이었으니 말이다.

저것은 악성이 아니다

그날도 진(晉) 나라의 조적(祖)은 유곤(劉琨)과 함께 어울리다가 잠이 들었다. 그러다가 한밤중에 닭 울음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 조적은 유곤을 차 깨우고는, 일어나 춤을 추며 외쳤다.

“저것은 악성(惡聲)이 아니다.”

닭은 새벽에 울어야 한다. 캄캄한 한밤중에 우는 닭 울음소리는 전란이나 재앙을 알리는 나쁜 소리, 곧 악성이다. 그 재앙을 경고하는 소리를 조적은 악성이 아니라고 한다. 난세의 영웅이 되고 싶어서?

중원은 이미 흉노(匈奴)를 비롯한 오호(五胡)들에 의해 유린되고 있었다. 조적 또한 이들을 피하여 장강(長江) 남쪽으로 피난해있던 처지이다. 지방관으로 소일하던 조적에게 한밤의 닭울음소리는 분발의 계기였다. 떨치고 일어나 분위장군(奮威將軍)이 되고, 마침내 북벌(北伐)을 단행하여 황하 이남의 중원을 회복하는 대업을 이룬다. 군대를 이끌고 장강을 건너며, 조적은 말했다. “중원을 맑게 하지 않고는 다시 이 강을 건너지 않으리라.”라고.

병신년 한 해는 참으로 어지러웠다. 그 여파가 정유년 새해에도 거세게 일고 있다. 절망과 희망이 이처럼 교차하던 때도 없었던 것 같다. 군다리보살의 장검이 바람소리를 가르며 모든 적폐를 일소하길 소망해본다. 일제치하 그 엄혹했던 시대, 광야를 앞에 두고 천고의 백마 탄 초인을 외쳐 불렀던 이육사의 마음을 조금은 헤아릴 것만 같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린 이래, 방방곡곡 어디든 새벽닭 우는 소리 우렁차길 간절히 기원하는 아침이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