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동지 음식
쌀·팥 부족해 수수로
겨울 이겨내는 보양식

옛 선인들의 지혜적인 통찰력은 대단하다. 밤보다 낮이 줄어들었다가 동지(冬至)를 기해 다시 낮이 더 길어지는 것을 보고, 고대인들은 죽은 태양이 다시 되살아나는 것으로 보았다. 작은설로 불리는 동짓날 먹는 음식인 팥죽에 대한 유래는 중국 청나라 연경(북경)지역의 세시풍속을 실은 〈제경세시기승(帝京歲時紀勝)〉에 보면 세 가지로, 음력 12월 8일 부처님이 깨달은 날(成道節)에 수자타의 유미죽을 되새기는 뜻과 명나라 태조 주원장이 왕이 되고서 배고픈 시절을 생각하며 다시 죽을 끓여 먹었다는 설과 중국 신화에 나오는 것처럼 죽은 역귀를 물리치기 위해서 팥죽을 끓이게 되었다고 한다.

동짓날이면, 불가에서는 제불보살님이 계시는 전각 불단에다 팥죽 공양을 올리고 민간에서는 부엌의 조왕대신을 비롯하여 마루, 안방, 광, 대문, 헛간, 해우소 등에도 팥죽을 내놓거나 수저로 떠서 벽에다 뿌린다. 근래에 와서는 팥죽 대신에 붉은 생팥을 뿌리고 난 다음에 먹는다.

북한에서는 1967년 3월에 시작된 ‘사회주의식 문화혁명’ 시기를 거치면서 ‘봉건잔재의 청산’이란 명분으로 절기문화를 일상에서 거의 대부분 없앴다. 동짓날 사찰 불단에도 팥죽 공양을 올리지 않는다. 공양물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별도의 음식을 개인적으로 만들만큼의 경제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와 “고유한 민족음식을 향토성에 맞게 개발시켜야 한다”는 김일성 주석의 교시에 따라 민간에서도 절기음식을 만들어 먹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주민들의 식생활 습관이 죽보다 밥을 좋아하기에 팥죽을 먹지 않고 ‘팥밥’을 주로 해먹는다. 팥죽에 넣는 새알심은 찹쌀이 귀해서인지 이런 경향이 짙다.

또 다르게는 ‘참팻기짬’이란 일종의 팥잼을 만들어 겨우내 영양보충제로 먹는다. 북한의 량강도, 함경도, 평안도 등 추운 지방에서 주로 만들어 먹는 참팻기짬은 동지를 기해 만들어 먹기보다는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는 북한지방의 보양식으로 알려져 있다. 삶은 팥에다 설탕을 거의 1:1일 비율로 섞어 버무린 다음 항아리에 넣어 오래 보관하면서 먹는 것인데, 어떤 집안에서는 찹쌀을 함께 버무려 넣기도 한다. 개암열매짬과 더불어 참팻기짬은 당분이 부족한 주민들에게 겨울철에 먹는 특별한 민간음식이기도 하다.

배급제로 인해 팥과 찹쌀을 구하기 어려운 북한에서는 팥죽을 만들 수 없을 경우에 수수(?黍, ??)로 죽과 떡을 절기음식으로 해먹는다. 1988년 영화인 <붉은 수수밭(Red Sorghum)>의 배경이 된 만주지방의 붉은 수수는 주로 술을 빚는데 많이 쓰인다. 수수는 우리나라에서 조(粟), 기장(黍), 피(稗) 등과 함께 가장 오랜 재배 역사를 가진 알곡작물의 하나다. 부족시대의 유적지인 함경북도 무산군호곡(虎谷) 유적에서 수수낱알이 발견된 점으로 보아 삼국시대 이전부터 수수가 식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북한말로 출촉(??)이라는 수수는 국토의 70%가 산지인 북한지역에서 많이 재배되는데 강냉이보다 소출을 더 많이 낼 수 있어 주민들이 집 울타리 등 뙈기밭(텃밭)에 많이 재배하는 작물로 꼽힌다.

쌀과 팥이 부족한 북한 주민들에게서 동짓날 먹는 수수쌀밥에 대한 아침 인사로는 “팥곽 한 통 든든히 드셨습니까?”로 말을 건넨다. 이 말에는 팥죽에 들어 있는 새알을 나이만큼 먹었냐는 속담도 같이 묻어 있다고 한다. 이처럼 한 살 더 먹는 새해에는 남북한에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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