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특집 260호

서울 경국사 관음전 동자상 ⓒ 전제우

시심불심(詩心佛心)

윤효 시인

최근 서울 어느 초등학교에 시 쓰기 수업을 두 차례 다녀왔습니다. 어린이들과 함께 시는 무엇이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먼저 헤아렸습니다. 그리고 보름 후에는 어린 벗들이 쓴 시를 함께 읽었습니다.

그 순백의 도화지 위에 무엇부터 어떻게 펼쳐놓아야 할지 도무지 종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4층 강당을 향해 걸어 오르며 뜻밖에도 실마리가 풀렸습니다. 계단에 예쁘게 붙여 놓은 세 낱말, “사뿐사뿐”, “차례차례”, “소곤소곤”……. 어린이가 반듯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선생님의 마음이 전해져왔습니다.

바로 이 마음이 시심이고, 이 말을 고르기까지 여러 날 이어졌을 선생님들의 궁리가 바로 시 쓰기 과정이라고 들려주었습니다. 어린 벗들의 눈빛이 반짝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보름 후 3학년 교실에서 절대긍정의 사랑과 그 사랑을 고스란히 받아 안을 줄 아는 천진한 동심을 만났습니다.

 

우리 할머니는 호랑이 얼굴

고양이도 놀래키는 할머니 얼굴

하지만 다르다. 얼굴과 다르다.

“TV 봐도 돼요?”

“오냐”

“컴퓨터 게임해도 돼요?”

“오냐”

“나가서 놀아도 돼요?”

“오냐”

“밥 조금 이따 먹어도 돼요?”

“오냐”

오냐, 오냐, 오냐, 오냐

얼굴과 다른 우리 할머니.

 

―서울흥인초등학교 3학년 2반 조성주, ‘우리 할머니’ 전문

 

어린 벗들 속에서 부처님 친견하듯 옷깃을 여며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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