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전통과 해와 달

해와 달은 하늘 세계를 대표하는 물상(物象)으로 우리의 인간 삶과 밀착되어 있는 친숙한 존재이며, 한국의 전통 문화 속에서도 자주 접할 수 있는 소재로 등장한다. 한국의 역사ㆍ문화에서 태양과 달이 어떻게 기능해 왔을까. 태양과 달이 지닌 속성과 상징성을 살펴보고, 태양과 달을 상징하고 이를 형상화 한 일상문(日象文)과 월상문(月象文)의 다양한 용례들을 통해 그 실마리를 풀어보고자 한다.

태양 속성ㆍ상징은 광명과 풍요

태양은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자연물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 애니미즘의 대표적인 대상 가운데 하나이다. 눈부신 광명과 뜨거운 열기를 지닌 태양은 천지를 밝혀주고 모든 생물을 소생ㆍ번식시키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존재로 오랫동안 동경의 대상이 되어 왔다. 특히 농경이 시작된 이후 곡식을 생장시키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로서 그 중요성이 배가되었다. 태양에 대한 이 같은 친연관계의 형성과 농경의 풍요를 기원하는 바람이 태양을 경외와 숭배의 대상으로 생각하게 함은 물론, 태양 자체를 신격화 또는 의인화함으로써 종교적인 신앙의 대상으로 삼게 했다.

 사진1) 천전리 암각화.

 

 

사진2) 양전리 암각화

태양은 원(圓) 또는 여러 개의 원으로 이루어진 동심원으로 그려지며, 빛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태양을 동심원으로 표현한 예는 울주군 천전리(川前里) 암각화에서 볼 수 있다.(사진 1)

빛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태양의 속성을 형상화 한 것은 고령 양전리(良田里) 암각화에 나타나 있다. 고령 양전리 암각화는 태양을 신상(神像)으로 표현한 태양신의 얼굴 주위에 태양 광선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모습을 표현한 짧은 직선들이 돌려져 있다.(사진 2)

치천하(治天下) 및 왕권의 상징

태양은 주기적 회귀의 규칙성과 불변의 항상성을 지닌다. 그러므로 태양은 우주의 지배 신으로 오랫동안 그 절대적 권위를 인정받았다. 전통적인 사회일수록 태양을 우주와 자연의 질서의 중심에 두고 있는데, 이는 우주와 자연에 국한된 질서뿐만 아니라 인간 사회의 규범적 질서를 확립하는데 있어서도 태양의 이 같은 속성이 이의 없이 수렴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태양의 절대성과 위용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천신(天神)사상 및 음양설(陰陽說)과 연계되어 국가의 최고 권력자인 왕을 천자(天子)와 일월지자(日月之子) 등으로 부르게 되었다. 이러한 예는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성왕(東明聖王)을 ‘황천지자(皇天之子)’와 ‘일월지자’로 각각 기록한 광개토대왕비와 <모두루묘지(牟頭婁墓誌)> 등을 통해서도 살필 수 있다.

예부터 ‘태양은 임금의 정령(精靈)이다’, ‘태양의 정기는 임금의 표상이다’라 하여 태양이 임금을 상징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고, 그런 연유로 태양의 속성을 반영하는 글자가 고대 사회의 통치자 이름에 많이 포함되어 있다.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환인(桓因)과 환웅(桓雄)의 이름 중 ‘환’은 ‘환하다(밝다)’는 의미이다. ‘단군(檀君)’의 한자어를 한글로 풀이하면 ‘박달나무 임금’으로 여기서 ‘박달’을 ‘밝다’가 변화한 소리로 볼 때, 단군은 ‘태양’과 ‘성수(聖樹)’를 숭배했던 임금을 지칭한다.

또한 북부여의 해모수(解慕漱)는 ‘해를 모시는 분 〔일시자 : 日侍者〕’을 의미하며, 고구려 동명성왕의 ‘동(東)’과 명(明)’, 신라 박혁거세(朴赫居世)의 ‘박(朴)’과 ‘혁(赫)’은 각각 밝음을 뜻한다.

더욱이 동양에서는 태양을 단순히 자연과학의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천심(天心)과 함께 천하관(天下觀)을 파악할 수 있는 치천하(治天下)의 상징으로 인식함으로써, 해를 상징하고 이를 형상화 한 일상문(日象文)은 왕권의 상징물로도 사용되었다. 이 때 일상문은 태양의 영속성과 함께 팽배하는 힘과 작열하는 역동성을 상징하며, 이는 왕조의 영속과 영위에 대한 희구를 의미한다.

일상문이 왕권의 상징으로 사용된 대표적인 예로는 고려의 태조 ‘왕건상(王建像)’과 조선의 ‘일

사진3) 태조 왕건상 통천관 보관의 달 문양.

월오악도(日月五嶽圖)’가 있다. 태조 ‘왕건상’은 보관(寶冠) 상단에 여러 개의 원형판들이 장식되어 있는데, 원형판의 내부 하단에는 둥근 원으로 일상문을, 그 위에는 초승달 모양으로 월상문(月象文)을 각각 나타냈다. 일상문과 월상문이 결합된 이 원형판들은 보관의 전후좌우와 그 사이사이에 배치되어 있다. 이는 해와 달이 온 천하를 비추는 것과 같이 고려의 군주가 세상을 밝게 하는 정치를 폄으로써 그 은택이 모든 백성에게 미침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사진 3)

조선시대의 ‘일월오악도’는 임금이 앉는 용상의 뒷면을 장식했던 병풍의 그림으로 왕의 절대 권위를 칭송하고 왕조가 무궁하기를 기원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일월오악도’의 화면 상단 좌우에는 음양을 상징하는 태양과 달이 붉은 원과 흰 원으로 그려져 있다. 이 역시 태조 왕건상의 보관 상단의 일월상이 결합된 원형판들과 같이, 낮과 밤을 밝히는 해와 달처럼 임금의 정치가 세상을 밝게 함을 뜻한다.(사진 4)

사진4) 일월오악도.

회귀성과 신생(新生)

사진5) 고구려 창천 1호분 일상문.

일출하여 일몰에 이르는 태양의 운행은 탄생하여 성장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인간의 일생과 비견된다. 다만 양자의 차이는 태양은 무한하나 인간은 유한하다는 점이다. 매일 아침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인간은 죽은 후 태양과 같이 소생하기를 소망했고, 이러한 믿음은 태양에 초월적인 신격을 부여했다.

또한 이 같은 속성을 지닌 태양에 영혼 불멸과 신생을 염원하는 종교적 내세관이 투영됨으로써 죽은 자와 관련된 묘제(고분 벽화, 부장품, 탑비 및 묘비 등) 장엄에 일상문이 표현되었다.(사진 5, 사진 6) 이처럼 묘제 장엄에 일상문이 등장하는 것은 저녁에 지더라도 아침에 다시 떠오르는 영원성과 초월성을 지닌 태양처럼 재생과 부활의 삶이 사후 인간에게 영속되길 희망했기 때문이다.

사진6) 광해군 묘비 중앙 해.

일상문의 기본 구성 요소인 원은 항상적인 곡선으로 무한의 순환론을 반영하기 때문에, 항상적·주기적 회귀성을 지닌 태양을 상징화하는데 적합하다. 후한 때 허신(許愼)이 편찬한 <설문(說文)>에는 원에 대해 ‘원회야 원환전야(圓回也 圓圜全也 : 원은 회전하며 또한 온전하게 둥글다)’라 기록하고 있는데, 이 역시 원의 회귀성과 순환적 특성을 나타낸 것이다.

원은 또한 세상의 중심을 기하학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성지·영생의 땅, 성스런 궁전, 복된 자들의 땅, 선택된 자들이 사는 곳 등을 의미한다. 영생의 공간으로 만들어진 고구려 고분과 성스러운 부처님의 공간으로 조성된 석굴암 등의 지붕이 모두 궁륭형〔穹窿形 : 활처럼 둥글게 휘어진 모양〕으로 이루어진 것도 바로 이런 까닭이다.

달 속성과 상징성은 음양 합일

달은 음의 속성을 지닌 물ㆍ땅ㆍ여성과 밀접한 관련성을 지닌다. 재생의 상징인 달, 생명의 근원인 물, 생장과 결실의 땅,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는 여성 모두 생성과 생명의 아이콘으로 인식되고 있다. 음양 중 음(陰)을 상징하는 달은 양(陽)을 상징하는 해와 함께 표현됨으로써 음양의 신성한 합일과 풍요 및 다산을 의미하며, 남자와 여자, 임금과 신하, 임금과 백성과의 조화의 뜻을 함축한다.

달 가운데 보름달과 초승달은 상징적 의미가 큰데, 보름달의 경우는 전체성·완전함·풍요를 뜻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월대보름과 팔월한가위에 사람들이 둥근 보름달을 보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보름달만 같아라.”라고 했는데, 이는 보름달이 전체성·완전함·풍요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름달이 뜨는 정월대보름과 팔월한가위에 행해지는 달맞이와 달집태우기, 강강수월래와 같은 제의적 성격이 강한 민속놀이를 통해 농경의 풍요를 기원하고 수확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다.

사진7) 터키 국기.

한편 초승달(‘Crescent’ : 점점 커지는)은 고대 이슬람 문화권인 서아시아에서 우주적 힘의 상징으로 인식되었고, 만월(滿月)로 가며 점점 커지는 달이므로 팽창과 발전을 상징한다. 이런 연유로 터키·리비아·튀니지 등과 같은 이슬람 국가 중에는 이슬람의 팽창과 국가의 발전을 염원하고자 국기에 초승달을 등장시키고 있다.(사진 7)

 

사진8) 복희 여와도의 일월상.

중국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복희(伏犧)·여와(女媧)는 남매 또는 부부로 묘사되며, 복희·여와도는 하반신이 뱀 모양으로 표현된 복희·여와가 상하로 길게 뻗은 꼬리를 서로 틀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때 복희ㆍ여와도의 상부에는 해가, 하부에는 달이 표현된다.(사진 8) 이에 반해 길림성(吉林省) 집안시(集安市) 오회분(五盔墳) 4호묘(4号墓)와 같은 고구려 고분의 복희·여와도는 해와 달을 머리에 이고 있고, 하반신이 뱀 모양인 복희·여와가 횡으로 마주보고 있다.(사진 9)

우리나라에서는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설화가 남매가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는 점에서 복희·여와 신화와 유사하고, 연오랑과 세오녀 설화는 해와 달의 회복을 통한 음양의 조화 및 합일로서 풍요를 이루고자 했던 농경 의례적 측면을 반영한다.

 

군민(君民)의 상생과 민본의 상징

사진9) 고구려 오회분 4호묘의 복희 여와형의 일월상.

한낮의 강렬한 빛의 광원으로 하늘 세계를 대표하는 태양이 지상의 최고 권력인 왕권의 상징으로 기능했다면, 깜깜한 밤의 어둠을 은은하게 비추는 달은 음지에서 살고 있는 민중과 밀착된 측면이 강하다. 그런 까닭에 달 신앙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민속놀이가 농촌 사회를 중심으로 형성·전개되었고, 서정성이 짙은 달은 민중과 가까이 호흡하며 시와 노래, 그림의 소재로 자주 선보였다.

한편 달은 시간 측정의 수단으로 사용되었고, 달이 변화하는 각 단계의 관찰을 통해 달력이 제작되었다. 사람들은 달을 관찰하여 절기를 파악했고 이를 농사짓는데 십분 활용했기 때문에 달력은 농경을 위주로 한 지역에서 일찍 출현했고, 본격적인 농경사회로의 진입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아울러 달력은 국가 행사와 제의 등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요소였기 때문에 위정자에게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따라서 달력의 제작과 사용은 왕권 강화와 중앙 집권을 특징으로 하는 고대 국가 성립에 중요한 매개 요소가 되었다.

사진10) 대한제국의 일기.

이처럼 낮과 밤을 밝히는 해와 달은 오래 전부터 천상을 대표하는 영원성을 지닌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태양을 형상화한 일상문(日象文)이 국가의 위력과 통치 조직이 천상의 해처럼 지상에서 절대적이며 무궁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왕권의 상징물로 사용되었다면, 민중과 밀착된 관계를 가지며 신앙되어 온 달을 형상화 한 월상문(月象文)은 왕권의 상징인 일상문(日象文)과 함께 표현됨으로써 군민(君民 : 임금과 백성)의 상생과 민본의 중요성을 함축한다.

 

사진11) 대한제국의 월기.

임금과 백성과의 상생을 해와 달과 결부시켜 인식한 것은 고구려의 모두루묘지에서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성왕을 ‘일월지자(日月之子)’로 표현한 것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아울러 군민의 상생과 민본의 상징으로 해와 달을 함께 등장시킨 것으로는 앞서 언급한 고려 태조 왕건상의 보관(寶冠) 상단의 여러 개의 원형판들과, 조선시대의 일월오악도 외에 대한제국 시기의 일기(日旗)와 월기(月旗)가 있다.(사진 10, 사진 11) 이때 해와 달은 왕실과 왕의 입장에서는 왕조의 무궁과 영속을 나타내지만, 백성의 입장에서는 왕의 은덕이 해와 달처럼 온 세상에 골고루 미치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한 것으로 파악된다.

신생(新生)과 영혼 불멸

사진12) 고구려 덕흥리 고분의 월상문.

고대인들은 조류(潮流)에 영향을 미치는 달을 여성 삶의 리듬에도 깊이 관여한다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달의 순환과 여성의 생리 주기가 모두 28일로 같아 달이 여성의 운명을 통제하는 힘을 가졌다고 보았고, 그런 연유로 여성의 생리를 ‘월경’ 또는 ‘달거리’라 했다.

한편 무한의 순환론을 상징하는 달은 신생과 영혼 불멸, 장생과 불사(不死)의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죽은 후 달처럼 다시 태어나고 영생을 누리길 바라는 마음에서, 죽은 자와 관련된 유적과 유물에 달을 상징하고 이를 형상화 한 월상문을 표현했다.

사진13) 통일신라시대 골함.

이러한 사례로는 죽은 자의 영생의 공간으로 마련된 고구려 고분 벽화에 그려진 달(사진 12), 골함(骨函)으로 추정되는 통일신라의 납석제(蠟石製) 남녀 합장상의 해와 달(사진 13), 고려 지광국사(智光國師) 현묘탑비 비신(碑身) 앞 상단 좌측의 달(사진 14) 등이 있다.

태양 및 달의 속성과 상징성, 해와 달을 상징하고 이를 형상화 한 일상문과 월상문이 어떠한 용례로 사용되고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태양은 광명과 농경의 풍요, 치천하(治天下) 및 왕권의 상징, 회귀성과 신생의 의미를 지니며, 달은 음양의 합일 및 풍요와 발전, 군민(君民)의 상생과 민본의 상징, 신생과 영혼 불멸의 상징성을 함축하고 있다.

사진14) 지광국사 현묘탑비 상단 달문양.

해와 달 모두 내포된 상징성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해는 지배계층인 최고 권력과 밀착된 관계를 보이고, 달은 민중과 좀 더 가까이 있으며 그들 삶에 많은 영향을 미쳐왔던 것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기존의 지배자 중심으로 역사 문화를 보고자 했던 거시사적 접근 방법에서 벗어나 일반 민중의 발자취와 그들이 향유했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자 하는 미시사가 부상하고 있는 오늘날, 해와 달은 그 우위성을 나눌 수 없을 만큼 대등한 위치로 거듭나고 있다.

해와 달은 한국인의 정서 속에 밀착되어 있고 현실 세계의 규범으로부터 벗어나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초월적인 대상이며, 감성이 중요시되는 21세기에 있어 활용 가능한 문화 콘텐츠 개발은 물론 민족문화유산의 새로운 가치 창출을 모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아울러 일상문과 월상문은 한국 전통 문화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을 유도하고 해와 달이 주는 메시지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중요한 사례다.

해와 달은 따로따로 등장하기 보다는 늘 함께 표현된다. 이는 대립과 반전이라는 이분법적인 논리를 지양하고 상생과 조화의 세계를 추구하고자 했던 옛 사람들의 지혜가 반영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김주미

경기도문화재전문위원, 국립문화재연구소 전통문양사업 목공예, 기와 부문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경기대학교와 가천대학교, 동국대학교, 단국대학교 등에서 강의했다. 저서로 <한(韓) 민족과 해 속의 삼족오>, <한류와 한사상>(공저), <삼족오>(공저) 등이 있다. 현재 경기대ㆍ가천대ㆍ한국교통대학교, 성북문화원과 송파시니어뜨락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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