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장경 초조본 ‘첨품법화경’ 조성불사를 봉행하고 있는 대한불교천태종이 11월 30일 오후 2시 서울 관문사 2층 대강당에서 ‘고려대장경 초조본 ‘첨품법화경’ 조성불사와 그 의의’란 주제로 관련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발표 논문을 요약했다.

천년의 자부심, 고려대장경에 대한 재인식

이봉춘 천태불교문화연구원장

佛力 의한 사회통합
한국 고인쇄기술의 역사
보존의 과학성도 주목

불교의 가르침을 집성한 대장경은 모든 중생의 이익을 위한 진리의 보고(寶庫)이며, 지혜의 바다이다. 이런 대장경을 그 성립의 순서대로 말하면 ①팔리어삼장 ②티베트대장경 ③한역대장경 세 가지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팔리어삼장은 팔리어로 쓰여진 초기불교의 성전이다. 붓다가 설한 가르침(경)과 계율(율), 그리고 부파불교시대의 교법에 대한 연구결과들(논)을 포함하고 있다. 경장과 율장이 성립된 이후 한참 지나 논장이 성립되었으며, 그 시기는 기원전으로 본다. 티베트대장경은 7세기경부터 번역을 시작하였고 9세기에 그 대부분이 완성되었다. 산스크리트 원전이 제대로 전하지 않아 티베트대장경은 특히 후기 인도의 경론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마지막은 한역대장경이다. 경전의 한문 번역은 2세기부터 시작하여 거의 1천년 동안 진행해왔다. 이렇게 해서 이룩된 한역대장경에는 대승과 소승의 경율론 삼장은 물론, 넓게는 한중일의 학자들이 지은 저술들까지 함께 포함시킴으로써 그 분량이 가장 많다.

한역대장경은 그동안 중국에서 15~16회, 우리나라 고려에서 3회, 일본에서 6회의 조성(雕成) 및 출판이 있었다. 이처럼 동북아시아에서 많은 대장경이 조성ㆍ간행 되었지만 이들 가운데 현재까지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은 오직 우리나라의 고려대장경뿐이다. 따라서 고려대장경은 세계 유일의 현존 한역대장경으로서 우선 그 가치가 진중(珍重)된다. 또 고려대장경은 중국에서 오랫동안 진행해 온 불교 보존의 노력과 결실을 거의 그대로 반영ㆍ망라하고 있으며, 대장경의 중보 수록과 함께 그 내용의 교정이 가장 정밀하고, 판목(板木)과 문자의 수려함 등 여러 측면에서 가장 완벽한 대장경으로 평가 받는다.

그러나 고려대장경에 대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이해는 충분하지가 못하며 곡해되고 있는 부분 또한 적지 않아 보인다. 고려대장경의 정확한 역사는 물론, 그것이 지닌 가치와 의미에 대해서도 단편적인 지식이나 편향된 시각에 머물러 있다. 고려대장경 조성과 관련하여 일본인 학자들의 주장과 설들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대장경을 오직 호국불교 차원에서만 바라보는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국보 제32호 고려대장경은 우리민족문화의 정화(精華)이자 자부심이다. 나아가 그것은 세계인이 함께 귀중하게 여겨 영구히 보존 전승하고자 하는 인류의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유네스코가 고려대장경을 ‘세계기록유산’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등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와 같은 귀중한 고려대장경에 대해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소홀히 해왔다면, 이는 곧 우리들 스스로 민족문화의 가치를 방치ㆍ훼손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초초대장경의 조성 시점으로부터 치면, 고려대장경은 천년을 이어온 위대한 민족문화 유산이다. 그것에서 새삼 우리의 자부심을 확인하게 되는 것은 고려대장경이 지닌 역사, 정신과 사상, 문화 등 다양한 측면의 가치와 의의 때문이다.

무려 16년에 걸쳐, 그것도 이민족의 외침에 대항하는 상황 속에서 이루어낸 결실이라는 점에서이다. 그러나 이 고려대장경을 단순히 진병 또는 호국의 차원에서만 논할 수 없는 것은, 특히 그 질적 내용의 우수함과 탁월성 때문이다.

고려대장경을 통해서는 고려 지배층의 사업 주선과 수기 등 고려 학문승 등의 역할 이외에도 사업에 함께 참여 협력했을 문인 지식인 그룹과 서민 대중의 역할에 이르기까지 전 고려적 합의와 공감을 읽어 낼 수도 있다. 불력에 의한 국난 극복의 과정이 대대적인 사회통합의 결과를 이루어내고 있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그것의 가치로서는 불교를 중심으로 한 인쇄술의 전통과 그 기술의 발달을 빼어 놓을 수 없다. 1ㆍ2차 대장경, 그리고 고려교장의 조성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은 그대로 한국 고인쇄기술의 역사라고 말하기에 충분하다. 더 나아가서는 재조장경의 완성 이후 그 경판이 오늘에까지 온전히 전해질수 있게 한 그 보존의 과학성까지도 크게 주목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고려대장경이 지닌 여러 측면의 가치와 의의에 대하여 우리는 그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새삼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고려대장경의 호국성을 인정하더라도, 그것이 오직 진병호국차원에서만 머무는 것으로는 충분하지가 않다. 이제 고려대장경의 가치와 의의는 호국성의 밖에서 더욱 폭넓고 자유롭게 향유되어야 한다.

‘첨품법화경’과 이전 ‘법화경’ 번역본에 대한 一考

이기운 동국대학교

중요 교설 증광
조화롭지 않으면 첨삭
한층 완전한 경전 편찬

〈첨품묘법연화경〉의 역자 사나굴다와 급다는 기존의 두 역본을 비교 검토하여 그 구성체제를 정비한 것으로 보인다. 먼저, 〈묘법연화경〉에서 문제가 되었던 ‘제바달다품’은 원래 〈정법화경〉에서는 ‘견보탑품’ 제11에 부속되어 있었는데 이본(異本)으로 송본·원본·궁본·명본 등에는 범지품 제12로 독립되어 있었다. 이에 따라서 라집본에서는 ‘견보탑품’ 아래 ‘제바달다품’ 제12를 두었다.

그런데 도생(道生)의 〈법화경소(法華經疏)〉와 법운(法雲)의 〈법화경의기(法華經義記)〉 등은 라집이 역출한 〈묘법연화경〉에 의해 주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바달다품’이 빠진 27품으로 되어 있어서, 이들이 이 품이 빠진 〈묘법연화경〉을 보지 않았나 여겨진다. 이에 대해서 승우의 〈출삼장기집〉에서는 강서에는 ‘제바달다품’이 있는 〈묘법연화경〉이 유포되었고, 중서(中夏) 지방에는 ‘제바달다품’에 빠진 〈묘법연화경〉이 유포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라집본에서 ‘제바달다품’이 독립되어 ‘견보탑품’ 뒤에 입장된 이유에 대해서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한다. 천태대사는 〈법화문구(法華文句)〉에서, 번역 당시는 원래 28품이었던 것이 장안 궁인이 ‘제바달다품’만을 빌려가 오래 가지고 있는 바람에 당시 강동(江東)에 27품으로 전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이를 남악 혜사(南岳慧思)선사가 바로잡아 ‘보탑품’ 뒤에 두었다고 전하고 있어, 당시 27품으로 유행하게 된 연유를 해명하고 있다.

〈첨품묘법연화경서〉에 의하면 〈정법화경〉은 인도 패엽경 원본과 부합하므로 원본이 다라엽(多羅葉)인 것으로 보았고, 〈묘법연화경〉은 구자의 경문과 매우 동일하므로, 그 원본이 구자에 전해진 〈법화경〉일 것으로 밝히고 있다. 이로 인하여 〈정법화경〉에는 빠진 내용이 더러 있었고, 라집본에는 누락된 부분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첨품묘법연화경〉에서는 이 경의 누락된 부분을 모두 보충하고 증광, 편찬하고 있다.

첫째, ‘약초유품’ 제5 게송은 라집역 〈묘법연화경〉에는 빠져있고, 〈정법화경〉에는 들어 있다. 전체적으로 ‘약초유품’의 일불승 내용을 더욱 심화시키고 방편을 설한 여래의 지혜를 더욱 찬탄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둘째, ‘오백제자품’의 경우는 전반부의 부루나 존자 수기 주는 내용이 〈정법화경〉에는 다른 내용으로 되어 있다. 즉, 〈정법화경〉에서는 〈묘법연화경〉에 등장하지 않는 현자 빈욕문다니자가 등장하고, 무상정진도로 인도하는 한 도사의 법문이 추가돼 뒤의 게송과 일치하지 않는다. 일부분은 〈첨품묘법연화경〉과 일치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이들 내용은 〈생경(生經)〉의 제8화 〈불설타주저해중(佛說墮珠著海中)〉에 있는 내용과 공통되는 내용이다. 〈첨품묘법연화경〉은 이런 내용을 검토해 〈묘법연화경〉과 같이 빠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셋째, ‘법사품’ 전반부의 내용도 〈정법화경〉 ‘약왕여래품’에만 있고 〈첨품묘법연화경〉에는 실리지 않았다. 〈정법화경〉 전반부는 법공양에 대한 교법으로 꽃·향·음악을 올리는 것을 공양이라 여기지 말고 삼해탈(三脫), 삼통달지[三達智], 무극(無極)의 지혜에 이르러야 진실한 법공양이라고 할 수 있다는 교설을 펴고 있다.

넷째, ‘보문품’의 게송은 〈정법화경〉에는 없는 내용으로, 원래 산스크리트 원본에 존재하고 있어서 〈정법화경〉 역출자가 빠트렸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 게송은 내용상 관세음보살의 칠난·삼독·이구양원과 삼십삼응신·십구설법의 내용을 다시 보충하고 있어 경설의 일관성으로 보아 〈첨품묘법연화경〉에서도 게송을 싣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같은 경전이라도 역본에 따라 경전의 유포와 전개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고 할 수 있다. 〈법화경〉의 경우, 초기에 〈정법화경〉의 역출은 〈법화경〉 사상이 널리 소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뒤이어 역출된 〈묘법연화경〉에 의하여 법화신앙과 사상에 있어 큰 발전을 이루어 대승불교의 대표적인 경전으로 일컬어졌으며, 천태사상이라는 교학사상을 탄생시켰다. 이런 찬란한 법화사상의 뒤에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한 것이 〈첨품묘법연화경〉이 아닌가 여겨진다. 두 경전을 비교하고, 빠진 부분을 산스크리트 원전을 통해 교감하였다. 이 과정에서 중요 교설을 증광하고 조화롭지 못한 교설을 첨삭함으로써, 〈첨품묘법연화경〉의 한층 완전한 경전 편찬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첨품묘법연화경〉의 판각사업은 널리 알려진 〈묘법연화경〉의 후원자로서 〈법화경〉의 홍포와 교화에 큰 촉진제가 될 것이다.

〈첨품법화경〉 목판 복원사업의 방향과 고려 점

남권희 경북대학교

치목 등 준비단계부터
판각 기술적 요소 검토
목판 보존 과학적 관리

본 연구는 현재 진행 중인 초조대장경 〈첨품법화경〉의 목판복원사업에 있어서 이론적 배경을 제시하고 실무적으로 진행 중인 판각에 미치는 영향 요소와 고려점 등을 개괄적으로 살펴본다.

1. 판각의 기술적 요소 검토

1) 책판의 기본 사양의 확정
2) 초벌 새김과 교정방법
3) 교정 시 상감과 매목의 허용범위
4) 앞뒤면의 글씨 방향
5) 마구리의 형태와 기입내용

이 단계에서는 판각할 나무의 종류와 판각을 위한 준비 단계로서 나무를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대패질하고 치목 등 준비단계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 단계에 앞서 본 사업이 원활히 수행되기 위해서는 이미 적당한 나무가 베어진 후 팽판, 부판의 과정을 거쳐 나무결이 삭아서 판각이 쉽도록 부드러워지고 그늘진 곳에서 오랜 시간 건조시켜 비틀림이 없는 상태가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

판각될 목판은 전통에 따라 양면으로 새겨져야 하며 이때 고려할 점은 판각의 방향이 양면이 서로 달라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인출할 때 아래위로 뒤집는 방법이 좌우로 뒤집는 것보다 용이하기 때문이다.

2. 각수

1) 판각의 능력과 경험에 대한 검증
2) 판각 소요 기간, 1판당의 소요 기간
3) 판식, 판수제, 권차, 장차, 함차, 제첨 판각

본 판각 사업의 경우 획의 굵기를 현존본대로 판각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판각 시 현존 등재본의 외곽선에 맞추어 새기다보면 더 가늘어지는 경우도 있어 이 경우 이미 파내버린 부분은 수정할 수가 없고 다시 새기거나 해당부분을 매목을 이용하여 새겨 끼워 넣는 방법만 가능하므로 글자의 교정을 전제로 한다면 획의 굵기는 약간 여유 있게 새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3. 종이의 선정

1) 전통방식에 의한 제지법 ; 외발 뜨기, 도침법
2) 크기, 색, 평량, 두께, 밀도, 인장력 등 물리적 기준 마련
3) 닥 생산 시기, 생산량에 따른 사전 매입 계획의 수립
4) 용도별(보존과 배포) 복원품에 따른 종이의 품질 결정

새겨진 목판에 먹을 바르고 찍어내는 바탕 종이는 닥나무를 채취하여 전통의 방법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먼저 나무를 쪄서 껍질을 벗기고 잿물로 삶은 후 표백과 두드리고 닥풀을 넣어 뜨는 과정을 거쳐 말리면 종이가 완성된다. 이 때 초지의 방법은 외발 뜨기로 앞쪽 물을 뒤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물을 흘려보내 한지의 조직이 질기고 견고하게 된다. 이러한 전통한지 제조의 기본사항이 제대로 준수되면서 종이가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검수의 각 영역에서 크기와 색, 두께, 초지 방법, 도침 여부 등에 대하여 기준이 제시되어야 한다.

특히 간행부수와 권별 전체의 소요량을 미리 파악하여 종이의 장기적 확보에 유념하여야 한다. 특히 닥의 재배 시기와 인쇄시기가 물론 인쇄 실패에 의한 파지율도 미리 책정하여 충분한 양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4. 먹

1) 전통 먹의 생산, 소요 수량의 예측
2) 먹 제작자의 검증
3) 재료, 성분의 분석

먹의 종류에는 송연먹과 유연먹이 있으며 그 중 목판을 찍을 때는 색이 진하고 선명한 송연먹을 사용한다. 전래되는 방법 중에는 먹을 갈아 물과 섞어 사용할 때 막걸리를 넣기도 한다. 전분성분과 알코올 성분이 먹 입자를 둘러싸게 되어 먹이 가라않지 않게 되므로 색이 고르고 윤기가 나며 먹물을 고루 흡수하고, 증발을 촉진시키기 때문이다.

5. 제본

1) 권자본, 절첩본, 선장의 형태 결정
2) 선장의 경우 능화판 문양의 선정
3) 권자본, 절첩, 선장에 따른 선택적 표지 제작
4) 장정된 권축이나 책을 보관하는 용기의 제작

6. 판각 책판의 보존 방법

1) 장판각
2) 서가
3) 판각 후 인출과정과 인출 후 보존처리

인출이 끝난 목판은 향후 재사용과 목판의 보존을 위해 환풍과 온·습도 조절 등 과학적 관리 방법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새긴 목판을 어느 지역의 어떤 장소에 보관할 것인지는 향후 논의가 될 것이나 외형 건물의 모습도 가능한 한 전통의 보존각을 참고하고 내부는 과학적인 관리가 유지될 수 있도록 고안되어야 한다.

대장경판 각성불사의 의의

이지범 고려대장경연구소 소장

고려 왕조 국민대통합
백성들의 종교적 기적
천태종 오늘날 재현

천태종은 지난 8월 13일 충북 단양 구인사 광명전에서 고려대장경 초조본 〈첨품묘법연화경〉 각성불사 ‘고불법회’를 봉행하였다. 2019년 5월까지 초조대장경 〈첨품묘법연화경〉 전본(全本) 233장을 판각하게 된다.

과거와는 전혀 다른 디자인 사고(Design Thinking)를 가졌던 대각국사 의천 스님은 지식정보 콘텐츠의 황제로 불리며 2011년에 사망한 미국의 스티브잡스 보다도 훨씬 더 방대하고 성향도 분명하다. 공교롭게도 의천 스님과 스티브잡스가 생(生)을 마감한 날이 10월 5일로 겹친다. 송(宋)나라에서 대장경의 글로벌 체제를 직접 경험한 의천 스님은 고려만이 내세울 수 있는 국가 이미지와 브랜드 아이덴티티(identity)를 체계화하기 위해 디자인 중심의 프로세스를 구축하게 된다. 그것은 의천 스님이 가진 창의적 디자인[千年史觀]의 결정체인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摠錄)〉이 그것이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것이며, 세계 최초의 대장경 목록으로써 장소목록(章疏目錄)의 첫 표준케이스[嚆矢]이다.

천 년 전, 대각국사 의천 스님이 직접 만든 〈교장총록〉은 즉, 진화에 의한 ‘학술프로그래밍’은 앞으로, 수준 높은 디자인적 안목과 그 디자인에 대한 활용에 탁월한 의지를 가진 ‘인문디자이너’가 필요로 하는 존재의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 UC버클리대학 루이스 랭카스터 명예교수는 국내 대학의 초청 강연에서 “다양한 문화가 복잡하게 얽힌 현대사회의 복잡성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불교이며, 점차 운송수단과 과학의 발달로 인해 우주 탐구가 활발해 질 때 인간의 고뇌·감정 등에 대해서는 불교만이 그 해답을 제시할 수 있다.”고 불교의 우수성과 미래성을 예시한 바 있다.

대장경 조성에 대한 고려인의 생각은 ‘대장경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는 그릇[器]이라 여겼다.’ 이를 정리한 분은 12세기말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이다. 그가 짓고 낭독했을 법한 ‘대장각판군신기고문’이 종교적인 염원을 바탕으로 고려왕조의 목적을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몽고의 병사들을 움직이게 하였다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글[文章]이라 할 것이다. 고려왕조와 무신정권기에 살아간 문인 지식인의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준 사람이 여럿이라면, 대장경 조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이 수기(守其) 대사이다. 재조대장경의 제작 총괄을 맡았던 수기대사를 ‘근대 문헌비평의 아버지’로 불리는 중세 네덜란드의 수도사 겸 인문학자 에라스뮈스(D. Erasmus, 1466∼1536)보다도 200년 더 앞선 ‘세기의 문헌학자’라는 평가를 간과할 수 없다. 무신정권시기에 대장경 조성불사를 진행해야만 했던 수기대사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을 셈법은 무엇이었을까? 한치 앞도 장담할 수 없던 암울한 시기에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먼저 그려 보았을 것이다. 무신 정권에 예속되지 않으면서도 공생관계를 유지해가려면 무신들이 원하는 즉, 국민대통합과 종교적 기적을 보여줄 있을지를 주도면밀하게 생각하고 들여다보았을 것이다.

이와 같이 고려대장경을 조성하는 일은 두 차례의 병란 전후 백 년에 가까운 시간이 소요되었다. 모든 백성들이 왕과 신하들의 바람과 같이 1011년(현종 2) 음력 2월 보름을 기해 발원한 것이 초조대장경이다. 개경 흥왕사에 교장도감(敎藏都監)을 설치하고 1091년(선종7)~1101년(숙종6) 10월 5일까지 완성한 〈제종교장(諸宗敎藏)〉(속장경)은 의천 스님의 열반일이 곧 완성된 날이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목판대장경인 팔만대장경은 1236년 강화도에 대장도감(大藏都監), 경남 남해에 분사도감(分司都監)을 설치하고 판각을 한 지 16년만인 1251년(고종 38) 9월 25일에 판새김[雕版]을 완료하였다. 이날이 팔만대장경의 탄생일이 된다.

고려 왕조와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진정이든 형식적으로든 발원 선포식에 참석했던 신흥 사대부들과는 달리 수기대사를 비롯한 승려와 불자, 백성들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 기대하고 바랄 것은 오직 대장경 조성에 명운을 걸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상상은 가장 현실에 기반을 둔다고 한다.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을 생각하고, 새로운 희망을 가지게 될 여린 백성들이 그린 그림은 상상이 아니라 현실의 안빈낙도(安貧樂道)가 실현 가능한 일일지 모른다고 여겼을 법하다.

천태종에서 고려시대에 조성된 초조대장경 〈첨품묘법연화경〉을 각성한다는 것은 국난에 처한 고려인들의 입장과도 그 궤를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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