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글로벌을 지향하고 있는 현대사회는 다종교 다문화 사회입니다. 종교와 문화는 사상적 배경으로 행위를 이끌어낸다는 공통점을 안고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선(善)의 방면을 향해 인간의 각종 나쁜 구태와 습관을 고쳐나가려 하는 성질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대사회는 ‘불신(不信)의 시대’로 낙인찍혀 있습니다. 종교와 문화가 제기능을 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나와 남을 가르는 분별심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중심으로 한 개인주의는 가족도 믿지 못하는 불신주의를 팽배케 하고 있고 급변하는 자본의 흐름과 문명의 조류 속에서 개인이 상처를 입을 때 이것이 사회에 대한 보복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도 최근 병리현상 중의 하나라 하겠습니다.

이러한 때 ‘사회와 나’, ‘단체와 단체’, ‘개인과 단체’, ‘개인과 개인’ 등 여러 조합의 신뢰회복을 위해 다음과 같은 부처님 말씀을 음미하는 것은 매우 유익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먼저 〈대집법문경(大集法門經)〉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무릇 수행자는 자심(慈心)을 닦아 진심(瞋心)을 제거하며, 비심(悲心)을 닦아 해심(害心)을 제거하며, 희심(喜心)을 닦아 불희심(不喜心)을 제거하며, 사심(捨心)을 닦아 탐심(貪心)을 제거하며, 무상심(無相心)을 닦아 취상심(取相心)을 제거하며, 결정심(決定心)을 닦아 의혹심(疑惑心)을 제거해야 한다.”

또 〈유마경〉에선 처음 불교에 입문한 이들이 지켜야 할 두 가지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즉 “첫째는 처음으로 심오한 경전을 듣고 놀라고 두려워 의심이 생겨서 믿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경전을 설하는 사람과 함께 있어도 가까이 하지 않고 비방까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를 상처 입히는 것이고, 심오한 진리를 들으면서도 그 마음을 다스릴 수 없는 것이다.”는 내용인데 이 두 말씀의 공통점은 “의심을 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의심을 내지 않는다는 것은 아주 어렵습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어떠한 대상에 대해서 의심하는 심리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선종(禪宗)에서 들고 있는 화두(話頭)란 것도 따지고 보면 의심을 다그쳐 그 해답을 얻어내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기에서 제가 말씀드리는 의심이란 불신을 뜻합니다. 옛말에 독(毒)은 몸을 한 번 상하게 하는 것으로 그치지만 의심은 마음을 수백 번 상하게 한다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의심과 의심을 거듭하게 되면 나와 상대가 모두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되어 건강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기란 난망하다는 의미입니다.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다음의 예화는 여러분의 이해를 도울 것입니다.

춘추시대 이야기로 송(宋)나라의 한 부잣집 담장이 장마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아들과 옆집 영감이 “빨리 담을 쌓지 않으면 도둑이 들 것이다.”고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과연 그날 밤 도둑이 들어 재물을 훔쳐갔습니다. 이에 부자는 자신의 아들은 총명하다고 칭찬한 반면 옆집 영감을 도둑으로 의심했습니다.

불교에선 의심의 반대말이 결정심입니다. 결정심은 이것인가 저것인가 주저하거나 의심하는 마음이 아니라 그대로 확고히 믿겠다는 서원을 말합니다. 그래서 흔히 불자가 갖춰야 할 여섯 가지 신행조건의 하나로 열거되고 있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린다면 여섯 가지 신행조건이란 첫째, 희망심입니다. 희망심이란 낙담과 절망대신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의욕, 곧 희망으로 얘기됩니다. 둘째, 친근심(親近心)입니다. 가르침과 스님과 도반을 가까이 하며 따르고 싶어하는 믿음이 필요할 것입니다. 셋째, 상응심(相應心)입니다. 믿음의 대상과 내가 하나가 되기 위한 노력이 뒤따라야함은 당연합니다. 넷째가 결정심입니다. 다섯째, 환희심(歡喜心)입니다. 무엇이든 긍정적이고 기쁜 마음과 에너지로 대한다면 성취율은 높아질 것입니다. 여섯째, 회향심(廻向心)입니다. 믿음의 공덕을 자기 혼자 취하려하는 게 아니라 다른 이와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야말로 바람직한 신행형태라 할 수 있겠습니다.

결정심은 신행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결정심이 없이는 희망심도 친근심도 상응심도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정심의 공덕으로 환희심이 일어나고 회향심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의심을 낸다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인생을 살면서 몇 번의 회의감을 보인 적이 있을 것입니다. 회의(懷疑)란 의심을 품는 것으로 일을 성취하는데 커다란 장애로 작용하게 됩니다.

의심을 내지 않는 것을 일러 불생의혹(不生疑惑)이라 합니다. 〈약사경(藥師經)〉에서도 부처님은 아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모든 유정들이 만일 세존이신 약사유리광여래의 명호를 듣고서, 지극한 마음으로 받아 지니고 의심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면 악취에 태어나는 일은 있을 수 없느니라.”

곧 ‘불생의혹’한다면 악취에 떨어지는 일이 결단코 없거니와 모든 공덕을 누리게 된다는 가르침입니다. 의심을 내지 않는 것은 실로 인생사의 매우 중요한 덕목입니다. 당장 실천으로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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