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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로 배우는 불교 11. 아미타불·지장보살병립도
  • 이승희/홍익대학교 강사
  • 승인 2016.09.28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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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중생 구제와 정토왕생 모두 서원

수다사 시왕도 하단 제8 평등대왕, 조선후기.

죽음 이후 다른 육체를 받기 이전의 중음(中陰)의 세계에 빠진 인간들은 명부(冥府)세계에서 살아생전 쌓은 죄업을 명부의 왕들에게 심판을 받는다. 조선후기 시왕도에는 열 명의 시왕이 각각 망자에 대한 죄를 논하고 그에 합당한 벌을 내리는 장면이 연출되어 있다. 탁자 앞에 앉아 심판하는 시왕의 모습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시왕도의 하단에는 각 시왕이 관장하는 지옥의 장면이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런데 처참하게 죄를 받고 있는 죄수와 두려움에 떨며 다음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중생들의 곁에는 항상 지장보살이 합장한 채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이러한 지장보살의 행보는 오탁악세(五濁惡世)의 무불 시대에 악행으로 중생들이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빠지지 않도록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지장보살의 서원에서 비롯된 것이다(〈대승대집지장십륜경(大乘大集地藏十輪經)〉). 보살이면서도 불보살의 세계가 아닌 육도중생의 가장 하단에 위치한 지옥에 머물며 고통으로부터 구원하고자 망자와 함께하는 모습에서 대자대비한 지장보살의 원력을 느낄 수 있다.

지장보살은 원래 석가모니불이 입멸한 후의 무불시대에 미륵불이 이 세상에 올 때까지 중생을 구제하는 역할을 석가에게 위촉받은 보살이다. 이에 부응하여 지장보살은 하늘에서 지옥까지의 모든 육도 중생을 교화할 뿐 아니라 가장 혹심한 고통을 받는 지옥의 중생을 한사람도 빠짐없이 구원할 것을 서원하였다.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에서는 지장보살의 서원이 어떠한 보살보다도 더 깊고 무거우며, 육도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천백억겁에 걸쳐 서원을 발하였다고 하여 지장보살의 서원의 무게를 강조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지장보살은 화려한 보관을 쓰고 온갖 화려한 영락으로 장식한 다른 보살과 달리 중생과 친근한 성문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내비보살행 외현비구상(內秘菩薩行 外現比丘像)’ 즉 ‘보살의 행을 숨기고 비구의 모습으로 화현하였다’는 의미의 이 글에서 굳이 드러내지 않고 행하는 지장보살의 겸손함과 자신의 몸을 낮추어 중생과 함께 하리라는 의지가 담겨 있다. 또한 오른손에는 투명한 보주를 들고 왼손으로 긴 석장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주로 표현되는데, 이는 투명한 보주로 명부세계에 빛을 비추고 석장으로 지옥의 문을 깨뜨려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지장보살의 상징적 이미지이다.

지옥중생의 구원 뿐 아니라 현세 이익적인 수많은 공덕을 지니고 있지만 지장보살의 구원에는 극락정토로의 왕생이 약속되어 있지 않다. 지장관련 경전에서 지장보살은 악도의 구제가 부각되어 있을 뿐 정토로의 왕생은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고려후기~조선초기 아미타불화 가운데에는 지장보살의 형상을 그린 예가 많이 있다. 관음보살과 세지보살을 협시로 한 아미타삼존도에서 세지보살 대신에 지장보살이 자리하고 있다거나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의 고려후기 불화에서는 아미타불과 지장보살이 함께 서있는 형상으로 묘사되어 있기도 하다. 혹은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병립하여 그린 불화가 있다. 아미타관련 경전에서도 지장보살에 대한 언급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미타불과 지장보살의 조합이 이루어진 근거는 무엇일까?

지장보살이 아미타불화의 주 도상으로 등장하게 된 원인 중에는 〈불설예수시왕생칠경(佛說豫修十王生七經)〉의 전래와 그로 인해 행해졌던 추천재와 생전예수재의 성행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죽음을 맞기 전에 올리는 의식인 (생전)예수재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슬픔을 털어버리는 것과 함께 평생 동안 쌓았던 모든 죄의 업장을 말끔히 씻어버리고 깨끗해진 몸과 마음으로 석가모니부처님의 원력을 빌어 서방극락세계의 아미타부처님을 친견하고 새롭게 환생할 준비를 하는 생전 마지막 의식이다. 다시 말해 예수재는 살아있을 때 행복을 추구하고 사후에는 극락왕생을 염원하는 의식인 것이다.

〈예수시왕생칠경〉에 의하면 죽음은 또 다른 삶을 위한 준비기간으로 이생에서 쌓은 업과 그 인과(因果)에 따라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고 보았다. 망자는 시왕의 심판을 받으며 자신만의 죽음의 여정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한편 모든 지옥의 중생을 남김없이 구원할 때까지 성불하지 않겠다는 지장보살의 자비한 원력은 여전히 미치며 유족들의 추선공덕에 따라 망자에게 삶의 여지와 기회가 주어진다. 이 경전에서는 경전을 지니거나 베끼기만 해도 지옥을 면할 뿐 아니라 열심히 독송하고 예수재를 베푼다면 왕생극락의 과보를 얻을 것이라고 말한다. 망자가 이전 삶의 번뇌와 업장을 씻어내고 청정한 마음으로 새로운 몸을 받은 것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아미타극락세계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지향점은 사후 구제를 담당하고 있는 아미타불과 지옥의 중생까지 구원할 것을 서원한 지장보살이 신앙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아미타불과 지장보살의 결합은 불교에서 더욱 큰 구원의 체계를 마련하게 되었다. 서방 극락세계의 교주인 아미타불이 근기가 다른 일반적인 중생을 극락으로 접인하여 가는 분이라면, 유명교주(幽明敎主)인 지장보살은 지옥에 머물면서 고통 받는 중생을 구원하는 실천행의 보살이다. 지장보살은 아미타불을 도와 지옥의 무리까지 모두 빠짐없이 극락세계로 안내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지장보살과 아미타불의 위신력의 결합은 구원의 대상과 범주를 더욱 확장시킴으로써 극락왕생에 대한 간절한 중생의 염원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미타불·지장보살병립도>, 고려후기,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이승희/홍익대학교 강사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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