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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식, 과거속으로 8. 부안 내소사 당산제
  • 심승구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 승인 2016.09.28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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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산나무에 풍요·평안 기원하던 의례
불교와 민속이 만난 지역문화유산

내소사 경내에 있는 할머니 당산나무에 용줄을 매는 의식.〈금강신문 자료사진〉

종교학자 엘리아데의 말처럼,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종교적인 행위이다. 그런 점에서 마을신앙은 민초들이 오랜 삶의 터전 속에서 터득한 종교적 증거들이다. 부안의 내소사 당산제는 불교의례와 민간신앙이 만나 탄생한 마을제사이다. 내소사의 스님들이 석포리 주민과 공동으로 당산제를 지내는 까닭에 ‘내소사·석포리 당산제’라고도 불린다.

원래 당산제는 마을의 수호신인 당산나무에게 평안과 풍요를 기원하는 민간신앙이다. 호남지역은 지리적으로 좌도(左道)와 우도(右道)로 구분된다. 좌도인 내륙 산악지역에는 산신제(山神祭)·산제(山祭)가 중심이고, 우도인 해안 및 평야지역에는 당산제(堂山祭)·당제(堂祭)가 중심이다. 전라 우도에 속하는 내소사 석포리 당산제는 당산나무를 매개로 내소사와 마을사람들이 결합해 만든 공동체 의례로, 불교의례와 당산제가 연계되어 진행된다는 점에서 독특한 사례에 속한다.

내소사 석포리 당산제의 유래는 자세하지 않다. 내소사는 백제 무왕 34년(633)에 혜구두타가 창건한 사찰이다. 석포리 또한 혜구두타와 관련한 관음연기설화에 등장한다. “석포(石浦)에서 사건이 일어났다. 돌로 만든 배를 탄 불상이 원암리 앞 시냇가에 머물렀다. 혜구두타가 내소사로 모시려 하자 움직이지 않다가 ‘실상사에 모시겠다’고 하자 배가 움직여 실상사의 부처님으로 모셨다”는 이야기다. 이 설화는 내소사와 함께 석포리의 유래가 꽤 오래됐음을 시사한다. 현재 석포리는 내소사의 아래 마을로 입암·원암·용동·석포 1, 2리를 아우르는 자연마을이다.

부안 당산제, 17세기 이후 유행

당산제는 기본적으로 마을신앙이었던 만큼 석포리 당산제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이나 직접적인 자료는 없다. 다만, 석포리 인근의 서외리 서문당산명문(西門堂山銘文, 1671), 읍성내 짐대 당산(1689), 대벌리 쌍조당간(1749)의 명문에는 부안의 당산제가 17세기 중엽 이후 크게 성행했음을 말해준다. 이러한 사례는 같은 지역에 위치한 석포리 당산제도 17~18세기를 전후로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17~18세기 이후 부안과 내소사 지역에서는 자연재해와 함께 기근·전염병·도적 발생 등 여러 가지 혼란을 경험하였다. 그 와중에 각 마을 공동체는 이 같은 위기극복의 수단으로 동제(洞祭)를 강화하고 마을 수호를 위한 다양한 신앙적 결속을 유지해 나갔다. 이 시기에 내소사가 괘불을 제작하고 수륙재를 거행한 배경도 그 같은 지역사회의 어려움과 혼란을 일정하게 극복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이었다. 여기에 지역 사찰에서도 아침·저녁으로 예불을 드릴 때 당산신을 비롯한 여러 옹호신중(擁護神衆)들에게 의식을 베풀었다. 다만, 그런 관행 속에서 내소사가 마을 당산제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는지는 알기 어렵다.

지역민의 증언에 따르면, 내소사가 마을 당산제를 관여한 시기는 일제강점기이다. 1930년 무렵 내소사에서 스님들이 당산제를 지냈다고 한다. 그 당시 사찰 주도의 당산제에는 굿판이 없었고, 스님들이 염불을 하고 절을 올리면 주민들도 절을 하는 형태였다고 한다. 그 후 내소사 주도의 당산제는 치폐를 거듭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1990년에 들어와 내소사 석포리 당산제는 다시 부활한다. 내소사 당산제는 주변의 석포·원암·입암 당산제와는 구별되는 사찰 중심의 당산제인 동시에 지역 주민을 아우르려는 사찰의 배려가 깔린 내소사만의 독특한 포교 전통으로 보인다.

현행 내소사 석포리의 당산제는 2009년부터 내소사 바로 앞 마을인 입암리 당산제를 근거로 복원된 것이다. 당산제의 대상인 당산은 수령이 500~700여년 된 느티나무인데, 내소사 경내에 한 그루가 있고, 마을에 한 그루가 있다. 내소사 경내에 있는 당산나무를 ‘할머니 당산’, 입암마을에 위치한 당산은 ‘할아버지 당산’이라고 부른다. 과거에는 당산나무를 ‘수목대신’이라고 축원했다고 한다.

특히 할머니 당산나무는 그 모습이 꽤 오래된 형태였던 것 같다. 1925년 육당 최남선이 내소사를 찾았을 때, 입암리 당산의 모습을 보고 “원시종교에 있는 제단의 모든 조건을 구비하여 가진 모범적인 설비이다. 요만치 구격(具格)된 것은 보기 쉽다 할 수 없다”(최남선, 〈심춘순례〉, 백운사간, 1926) 고 묘사하였다. 최남선이 보기에는 입암리 당산의 제단 모습이 원시종교에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출 정도로 꽤 오래된 것으로 파악한 것이다.

스님·마을주민 등 참여

현재 내소사 석포리 당산제는 사찰의 스님들과 군장병, 내소사 주변 5개 마을 주민 등 500여명이 동참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매년 정월대보름에 주민들과 함께 700년 느티나무의 보호와 지역발전을 발원하는 대동제의 일환인 것이다. 당산제는 풍물패를 앞세우고 짚으로 만든 대형 용줄을 메고 내소사에 도착해 마을의 화합과 번영을 기원하는 형태이다.

당산제는 정월 대보름 전에 농악대가 걸립굿을 통해 기금을 마련한다. 하루 전날인 정월 14일에는 용줄을 제작하는데, 석포리의 용줄은 외줄이다. 용줄을 제작하면서 금줄도 동시에 제작하여 당산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골고루 펴서 부정한 것을 막는다. 보름날 당일에는 오전에 용줄을 멘 마을주민들이 마을을 한 바퀴되는 오방돌기를 하여 정화의식을 베푼다. 오후에는 줄굿인 줄다리기를 한다.

남성과 여성이 두 편으로 나누어 남성이 동쪽, 여성이 서쪽으로 진영을 정하여 잡되, 농악대는 양편으로 나눠 응원을 한다. 줄다리기는 다른 지역과 같이 여자편이 이긴다. 줄다리기가 끝나면 줄은 입암 당산으로 옮겨 감아놓는다. 줄은 꼬리부터 감되 아래에서 위로 감아올리는 형식이다.

당산굿은 원래는 음력 1월 14일 밤 자정에 지냈으나, 지금은 줄다리기를 마친 후 당산제를 지낸다. 제물은 내소사의 경우 시식의식으로 하고, 석포리는 유교식으로 차린다. 당산제의 절차는 스님들과 주민들이 합동으로 제사지내되, 내소사는 불교식 재(齋)의식으로 마을에서는 유교식으로 제사를 지낸다. 당산제를 마치면 시식과 음복을 한다. 음복이 끝난 뒤에는 농악대와 참여자들이 함께 판굿을 치면서 뒤풀이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내소사 당산제는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 사이에 뿌리내린 당산제라는 토속신앙을 통해 지역민을 자연스럽게 사찰 안으로 불러 모으고 그 안에서 포교를 병행해 지역주민들과 사찰이 어우러진 대표적인 행사로 올해로 8번째를 맞고 있다. 더욱이 사찰과 석포리 지역주민들이 상생의 길을 모색하는 축제형태로 발전돼 이름을 알리고 있다. 독특하게 ‘내소사·석포리 당산제’는 일제강점기 이후 민간주도에 의해서 전승되어진 것이 아닌 내소사의 주도하에 전승되어져 왔으며, 토속신앙을 받들고 있는 지역주민들을 사찰 내로 자연스럽게 흡수함으로서 불교신앙의 입지를 강화하면서 포교를 병행하는 형태로 계승되어 왔다.

불교 동체대비 사상 결합

내소사 석포리 당산제는 오랜 세월을 거쳐 불교신앙과 민속신앙이 만나 탄생한 민속문화이자 마을공동체 의식이다. 자연합일을 통해 공동체의 안녕과 풍요를 바라던 소박한 마을신앙과 중생을 어여삐 여겨 그 중생들의 고통을 자기 몸의 고통처럼 여기고 슬퍼해서 구제하고자 하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불교정신이 당산제로 결합된 것이다. 이 같은 내소사 석포리 당산제는 과거 불교가 신중단(神衆壇)에 모든 민간신앙을 모셔 예불의 대상으로 삼았던 시대에서 한 계단 더 내려와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려는 내소사의 전통이 밑바닥에 깔려 있는 불교민속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더구나 전통문화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동안 불교가 산신각, 독성각, 칠성각 등으로 민간신앙을 포용함에 따라 민속문화의 전승이 이어져 왔다는 점을 상기할 때, 사찰과 함께 하는 당산제는 향후 지역의 문화유산을 보존하는데 중요한 기반이 될 가능성이 크다.

내소사 당산제 준비단계

- 걸립굿(음력 정월 10일∼14일)

걸립굿은 농악대가 각 가정을 돌아다니며 축원굿을 쳐주고 지신을 밟아주는 의식이다. 이를 통해 기금을 마련해 제물장만과 제수비용을 충당한다.

- 줄다리기의 용줄 제작(정월 14일)

줄의 형태는 쌍줄과 외줄이 있는데, 석포리 줄다리기는 외줄이다(석포1·2리, 원암리, 입암리). 외줄은 용의 형상을 하여 용줄이라고 부른다. 정월 14일 줄다리기에 쓸 줄을 제작한다. 볏짚을 충분히 확보하고, 줄은 용형상으로 외줄을 만든다. 줄의 길이는 각각 50여 미터로 만들고, 3접을 한 묶음으로 하여 3묶음을 만든다. 줄의 제작은 마을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만들되, 마을입구 공터나 마을회관 앞에 만들어 놓는다.

용줄을 제작하면서 금줄도 동시에 제작해 걸어놓는다. 입암리 할아버지 당산과 내소사 할머니 당산에 금줄을 친다. 금줄은 왼새끼에 흰 창호지를 끼워 당산에 두르거나 마을로 들어오는 길목에 대나무로 걸어 세워놓는다.

당산제 설행 순서

- 오방돌기

오방돌기는 마을주민들이 용줄을 어깨에 들쳐 메고서 마을을 한 바퀴 도는 의식을 말한다. 오방은 마을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의 방위를 말하는 것으로 줄다리기에 앞서 마을을 수호하고 정화시키는 의미를 가진다.

- 당산굿

당산굿은 농악대가 5개마을의 당산을 돌아다니며, 굿을 쳐주는 의식이다. 석포리에서부터 원암리, 용동리를 거쳐 입암리까지 들어오면서 이미 없어진 당산이라도 그 터에 가서 당산굿을 쳐주어 당산신을 끌어 모아 당산제로 인도해야 한다. 당산굿이 입암리 할아버지 당산에 이르러서 당산굿을 마치는 것으로 코스를 정하여 진행한뒤 당산제를 지낸다.

- 줄다리기

점심식사를 한 뒤에 오후 2시경부터 줄다리기를 거행한다. 줄다리기는 입암리 앞 도로에 늘어놓은 용줄을 당기는 의식이다.

1단계/ 줄굿 : 줄다리기에 앞서서 농악대가 용줄을 한 바퀴 도는 줄굿을 행한다. 줄굿은 줄다리기에 앞서 용줄(용신)에게 줄다리기를 하겠다는 고유제와 같은 의식이다. 줄굿을 거행하는 사이에 줄머리(용머리)에서 농악대가 인사굿을 치는 방식으로 지낸다.

2단계/ 진영 정리 : 석포리 당산제는 남성과 여성 양편으로 나누어 남성이 동쪽에 서고, 여성이 서쪽으로 진영을 정하여 줄을 잡는다. 15세 미만의 어린이와 청소년은 여자편에 속하여 줄을 잡는다. 이때에 농악대는 양편으로 나뉘어 응원지원 체제로 전환한다.

3단계/ 줄당기기 : 심판자가 징을 치는 소리에 따라 양쪽에서 힘껏 줄을 당긴다. 각각 농악대는 자기편에서 응원을 한다. 줄당기기는 삼판양승제로 시행을 하되 여자편이 반드시 이기도록 한다. 여자편이 이기도록 하기 위하여 여자들이 가느다란 대나무가지로 남자편에 가서 매질하는 행동을 취한다. 남자들의 힘을 빼서 암줄이 이기도록 하는 방식이다.

4단계/ 줄의 처리 : 줄의 처리는 당산으로 옮겨 당산에 감아놓는 것이 원칙이다. 석포리는 외줄이기에 하나의 당산나무에 감아놓는 방식이어야 한다.

- 당산제
1단계 제물 진설

① 내소사의 시식의식

내소사에서 당산신(堂山神)에게 바칠 공양음식을 준비하여 당산나무 아래 제단에 바치는 것을 말한다. 내소사에서는 밥을 담을 불기(佛器, 놋그릇으로 만든 밥담는 그릇)에 밥을 담아서 입암리 당산제단에 갖다놓는다. 이와같이 공양밥을 올리는 것을 ‘맞이올린다’고 한다. 불기는 1되, 2되, 닷되 크기가 있었는데, 각각 1기씩의 시식공양을 올린다.

② 석포리의 제물진설

석포리 주민들이 마련한 제물을 입암리 당산제단에 마련해놓는다. 마을주민들이 차려놓는 제물은 삼실과(배, 사과, 곶감), 삼채(고사리, 무나물, 콩나물), 삼탕(쇠고기탕, 두부탕, 바지락탕), 삼전(명태전, 새우전, 바지락전), 팥떡시루, 삶은돼지머리, 간조기, 유과, 건포, 촛불켠 쌀그릇 2개를 제상 양쪽에 차린다. 제물진설은 사찰에서 가져온 공양밥을 제사상 상단 가운데에 놓고 나머지 제물은 진설도에 따른다.

2단계 재(齋)와 제(祭) 의식

당산제의 절차는 내소사 스님들과 마을주민들이 공동으로 합동제사를 지낸다. 제의절차는 다음과 같다.

- 내소사의 제의식

내소사 스님들이 먼저 당산제를 지낸다. 스님들이 주관하는 당산제 의식은 불교의식으로 거행한다. 당산신에게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경문(經文)과 진언을 암송하고 염불하는 식으로 진행한다. 경문은 중단의식 가운데 당산천왕경과 진언의식에 따른다.

내소사에서는 당산제를 거행하기 앞서 대웅보전에서 상단(부처님)에게 먼저 상단헌공의식을 거행한다. 상단헌공의식을 마친 후에는 할아버지 당산에 내려와 헌공의식을 거행하는데, 상단의식과 같은 의식을 반복하는 것이 좋다. 당산에 절을 두 번하고 염불독경을 한뒤에 봉송인사로서 절을 다시 두 번 한다. 이와같은 불공의식을 거행한 뒤에 시식을 한다.

- 석포리의 제의식

위원회에서 삼헌관(초헌관, 아헌관, 종헌관)을 정하여 제관으로 참여시킨다. 각 삼헌관들이 헌주와 헌배를 하도록 한다. 화주가 제사상에서 제의식을 거들어 주며 제를 진행한다. 제사 절차는 가례에 따르며, 석포리에서는 축문을 읽지 않으며, 헌관들이 제의식을 마치면 다섯 마을 이장과 대표들이 차례로 헌주와 헌배를 올리고 소지를 올리는 것으로 제사를 마친다. 제사를 마친 뒤에는 화주가 제물을 조금씩 모아서 당산나무 아래에 묻는 것으로 제의식을 마친다. 당산신에게 시식하는 의식이다.

- 대중공양[飮福]과 판굿

시식은 스님들이 불교의식으로 거행하고, 마을주민들은 음복하는 방식으로 거행한다. 당산제를 마친 뒤에 입암리 당산 주변에서는 시식과 음복을 한다. 시식은 대중공양으로서 음복이라 한다. 신에게 바친 음식을 신과 인간이 나누어 먹는 의식인데, 석포리에서는 별도로 대중공양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여 제사가 끝난 뒤에 음복할 수 있도록 한다. 음복이 끝난 뒤에는 농악대와 당산제에 참여한 사람들이 함께 판굿을 치면서 뒤풀이를 진행한다.

내소사 경내에 있는 할머니 당산나무.
내소사 일주문 밖 할아버지 당산나무.
석포리 마을 어귀에서 내소사로 향하는 용줄 행렬.
용줄이 도착하기 전 스님들이 할머니 당산나무에 의식을 하고 있다.
용줄을 들고 할머니 당산나무에 도착한 대중들.
할머니 당산나무에서 의식을 마친 뒤 할아버지 당산나무로 향하는 스님들과 대중들.
할아버지 당산나무에 용줄 매기.
할아버지 당산나무에 맨 용머리.
할아버지 당산나무에서 의식을 하는 스님들.
남·여로 나뉘어 진행되는 줄다리기.

심승구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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