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덕은 스스로 쌓는 것 입니다.

문 : 남편과 자식이 힘들게 벌어놓은 돈으로 제가 복 지어준다고 이 절 저 절 다니면서 보시도 하고 개금불사도 합니다. 그래도 제가 남편과 아들에게 복을 지어주는 것이 되나요?

답 : 이야기 하나 해드릴게요. 어떤 보살님의 남동생이 출가를 했답니다. 수행을 열심히 하는 동생을 보며 본인은 아무런 수행을 안했습니다. 동생이 출가해서 저렇게 열심히 기도하고 수행정진 하는데 내 복도 빌어줄 것이니 무슨 수행이 필요하고 기도가 필요하겠냐 하면서 말이죠.

그러던 어느 날 그 보살이 동생이 수행하는 절로 찾아왔습니다. 공양 때가 되어 공양주가 밥을 차렸겠지요. 그런데 스님이 누나에게는 밥 먹으라는 소리는 하지도 않은 채 본인만 열심히 밥을 먹더랍니다.

너무 괘씸해서 아무리 속세의 연을 끊고 불가에 출가한 수행자라지만 모르는 이에게도 밥을 나눠줘야 할 스님이 어째서 피를 나눈 누이에게 이렇게 하냐고 속상하다는 하소연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스님이 그러더랍니다. “내가 수행하고 기도하면 누님도 수행하고 기도한 공덕을 얻는다고 해서 내가 배부르면 누님도 배부를 줄 알았소” 하고 말이죠.

내가 밥 먹는다고 남편과 자식이 배부르지 않죠? 남편과 자식이 먹도록 음식을 맛있게 해놓는 것까지가 불자님의 역할입니다. 억지로 먹일 수 없고, 대신 먹어줄 수 없는 겁니다.

남편과 자식이 벌어준 돈으로 불자님이 보시도 하고 개금불사도 하면 그건 다 불자님 공덕이지, 남편과 자식의 공덕이 될 수 없습니다. 차라리 법회에 한 번 같이 나오십시오. 법문을 듣고, 절을 한 번이라도 스스로 하는 것이 내 복 짓고 공덕을 쌓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문 : 왜 이리 저에게 가혹하게 벌을 주는지 하루하루 살기가 힘듭니다. 딸이 사고를 쳐서 교도소에 있어요. 삼재라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요. 삼재가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 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요?

답 : 삼재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위안이 되시나요? 삼재는 민간신앙에서 그 뿌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실 부처님은 결정된 운명론·숙명론은 옳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불교에서 보는 세계관에 의하면 개인에게는 개인의 운이 있고, 나라에는 나라의 운, 이 지구에는 지구의 운, 이 우주에는 우주의 운이 있어 성주괴공의 법칙에 따라 순환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 운이 박약하면 순환의 기간이 짧아 하루살이도 있고, 운이 후덕하면 순환의 기간이 길어 하늘나라 사람처럼 수천 년 수만 년 사는 세계도 있다고 하죠? 이런 성주괴공의 순환법칙은 모든 것은 그대로인 것이 없다는 제행무상의 법칙입니다.

삼재라는 말에 휘둘리지 마세요. 내 삶이 나쁜 방향으로 가던 것이라도 한 생각 달리 먹으면 좋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운명을 결정하는 원동력은 나의 한 생각 한 마음에 있음을 인식하면 됩니다. 삼재를 피하는 것도 우리들의 한 생각에 달려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 한 생각이 그렇게 간단하게 와 닿지는 않죠?

우리 마음이 번뇌와 무명에 싸여있기 때문입니다. 사물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미혹에 끌려가는 마음은 재앙을 키우는 겁니다. 자기의 마음자리와 주변사항을 바르게 보고 바르게 생각하는 마음을 가져야해요. 그래야 재앙을 피하는 힘을 기를 수 있어요.

재앙이 닥칠 때는 보시를 하셔야 합니다. 물론 “내가 돕고 있어”라는 생각을 하시면 안 되겠죠? 보시공덕이라도 얻어서 재앙을 물리치시면 됩니다.

매일 절을 하시거나, ‘관세음보살’ 정근을 하시면 더 좋아요. 불안한 마음을 물리치시고 내 마음의 주인공은 나요, 내 삶의 주인공은 나라는 자신감을 되찾으시길 바랍니다.

문 : 저는 요즘 절에서 연등 모연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봉사 권유를 받았을 때는 분명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자꾸 욕심이 생깁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이 내게 등 접수를 했으면 좋겠고, 아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등을 신청하면 그렇게 섭섭할 수가 없습니다. 봉사를 하면서도 자꾸 욕심이 생기는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답 : 불교에서 욕심을 버리라는 말을 많이 하죠. 살아있는 나의 존재는 실체가 없으며, 이 생명은 영원하지 않다는 무아 무상의 원리를 이해하고 깨닫는다면 욕심은 사라집니다.

불교에서는 욕심을 무조건 내지 말아야할 나쁜 것으로 보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내 분수에 맞지 않는 지나친 욕심을 경계하는 것이죠. 내가 원하는 것을 손에 얻고자 남을 부당하게 해치지 말아야 하고, 분수에 맞게 열심히 살되, 나 중심적인 생각과 생활을 멈춰야합니다. 나를 위한 삶이 아닌, 나를 위한 행위가 아닌, 남을 위한 삶과 행위를 해야 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이 봉사예요. 이렇게 좋은 마음을 내어서 봉사를 시작하셨는데, 봉사를 하면서 탐심을 내면 안 되겠죠.

대승불교에서는 ‘욕심을 버려라, 마음을 비워라’라는 말 대신 ‘원을 세워서 열심히 살아라’라는 얘기를 합니다. 욕심은 자기 자신 또는 가족만을 위한 것이지만 발원은 나와 남을 함께 위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욕심으로 사는 사람은 남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만을 채웁니다. 발원을 가져야 비로소 대승보살의 삶을 살게 됩니다.

욕심은 본능적이지만 발원은 능동적입니다. 욕심내는 것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잘하지만 발원은 일부러 마음을 능동적으로 일으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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