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으로 가는 경전 한 구절 (256호)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에는 ‘일심칭명(一心稱名)’이 나온다. ‘한 마음으로 명호를 부른다’는 의미다.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되 반드시 한 마음이 되어야 한다. 그와 같이 했을 때 관세음보살께서 그 소리를 관하시고 해탈하게 하신다. 그런데 중생의 근기에 따라 일심(一心)이 다르게 나타나며, 거기에 응하여 관세음보살께서 설법을 하신다.

33가지 모습으로

‘보문품’에서 무진의 보살은 다음과 같이 석가모니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관세음보살은 어떠한 인연으로 관세음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까?”

이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다음과 같이 대답을 하셨다.

“선남자야! 만약 무량한 백 천 만억 중생이 있어서 여러 가지 고뇌를 받을 때 관세음보살에 대하여 듣고 일심으로 그 이름을 부른다면, 관세음보살이 곧 그 음성을 관하여 모두 해탈시키기 때문이니라.”

중생이 관세음보살에 대해 듣고 일심으로 칭명을 하면 해탈한다. 관세음보살께서는 일심으로 칭명을 하는 중생의 소리를 관하여 해탈하게 하신다. 중생이 일심으로 칭명하는 것을 ‘감(感)’이라 하고 관세음보살께서 그것에 답하시는 것을 ‘응(應)’이라 한다. ‘감응(感應)’에 의해 중생이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하게 된다. 이러한 감응이 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바로 일심이다. 중생의 마음과 관세음보살의 마음이 일심으로 소통하는 것이다.

또한 무진의 보살은 다음과 같이 석가모니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관세음보살은 이 사바세계에 어떻게 노닐고 있습니까? 중생을 위하여 어떻게 설법을 합니까? 방편의 힘으로 하는 그 일은 무엇입니까?”

이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다음과 같이 대답을 하셨다.

“만약 어떤 국토의 중생이 있어서 불신(佛身)으로 응해야 득도를 한다면, 관세음보살이 곧 불신을 나타내어 설법을 하느니라. 벽지불신으로 응해야 득도를 한다면, 곧 벽지불신을 나타내어 설법을 하느니라. 성문신으로 응해야 득도를 한다면, 곧 성문신을 나타내어 설법을 하느니라. (중략) 집금강신으로 응해야 득도를 한다면, 곧 집금강신을 나타내어 설법을 하느니라.”

관세음보살께서는 중생의 여러 가지 근기에 응해서 33가지 몸을 나타내어 설법을 하신다. 중생은 관세음보살의 설법을 듣고 수행을 해서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나 즐거움의 세계인 열반으로 건너간다. 다시 말해 ‘득도(得度)’를 한다. 관세음보살의 설법을 듣기 위해서는 중생이 일심으로 칭명을 해야 한다. 일심이 되었을 때 감응이 일어나며, 설법을 듣고 득도를 한다.

중생의 근기에 따라

일심으로 칭명을 하는 중생의 근기가 성문의 몸이나 연각의 몸을 나타내어야 득도를 할 수 있다면, 관세음보살께서는 거기에 응하여 몸을 나타내신다. 이러한 중생의 근기는 공을 이해할 수 있는 근기다. 왜냐하면 공을 깨달으면 성문이나 연각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일심으로 칭명을 하는 중생의 근기가 부처님의 몸을 나타내어야 득도를 할 수 있다면 관세음보살께서는 거기에 응하여 부처님의 몸을 나타내어 중도를 설하신다. 중도를 깨달아야 부처가 될 수 있다.

일심으로 칭명을 하는 중생의 마음이 인연과보의 연기법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면 관세음보살께서는 연기(緣起)에 대한 설법을 하신다. 중생의 마음이 ‘공(空)’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면 관세음보살께서는 ‘공’에 대한 설법을 설하신다. 또한 그 마음이 ‘가(假)’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면 ‘가’에 대한 설법을 하신다. 그리고 그 마음이 ‘중도(中道)’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면 ‘중도’에 대한 설법을 하신다. 이처럼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는 중생의 근기에 따라 그 일심이 다르게 나타나며, 듣는 설법도 또한 다르다. 관세음보살께서는 칭명을 하는 중생의 모든 근기를 다 아시고 그에 맞게 제도를 하신다.

 

광도 스님

구인사로 출가하여 구인사 불교전문 강원을 수료하고 동국대학교에서 불교교학을 전공해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금강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 연구원, 동국대학교 강사를 지냈다. 현재 금강승가대 강사와 금강대학교 교수이며 오산 황덕사 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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