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사회복지는 한 뿌리 불교의 복지사업은 하화중생”

▲ 황진수 한성대 명예교수.

남아메리카 대륙의 빈부격차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심각하다. 상류층 5%, 중산층 7%를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빈곤층에 해당한다. 여기서 빈곤층이란 상대적인 빈곤이 아니라 인간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할 기본적인 요소를 갖추지 못한 절대적 빈곤을 뜻한다. 이때 가톨릭이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해 주면서 90% 이상의 국민들이 가톨릭을 신앙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불교의 역할도 이와 같아야 하지 않을까? 얼핏 보면 종교와 사회복지는 전혀 다른 분야인 것 같지만, 그 뿌리는 결코 둘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좁은 의미의 사회복지는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을 돌봐주는 정책이다. 장애인·노인·다문화가족·탈북자·미혼모 등이 그 대상이다. 의미를 조금 더 넓혀보면 소득보장, 의료보장, 여가, 교육, 노동환경에 대한 보장제도 및 정책을 의미한다. 사회복지의 뜻을 최대로 넓혀보면 전 국민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종교가 모든 사람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므로 종교단체가 사회복지에 관심을 가지고 보다 나은 사회가 되도록 기여하는 것은 마땅한 일일 것이다. 그 가운데 노인복지는 모두가 노력해야 할 시급한 문제이다. 1년에 40만 명이 65세 이상의 노인으로 분류되면서,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빈곤한 노인의 비율은 49.6%로 OECD국가 중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이런 상태로 가다보면 정부가 비축한 연금은 20~30년 내로 모두 바닥나는 것은 물론, 모두가 노년이 보장받는 세상을 결코 꿈꿀 수 없다.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정년퇴임 연령을 70세까지 연장하는 안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

현재 불교계는 소극적인 포교 및 시설 부족으로 학생 및 젊은이들에게 외면 받고 있다. 같은 이유로 대도시 도심권에서의 세력이 미약하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불자의 수는 급격히 감소하고, 노인과 여성 위주로 법회가 운영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노인을 위한 프로그램이나 장례절차 등은 빈약한 편이다. 또한 스님들의 노후생활도 보장이 되지 않아 노인복지에 대한 전체적 상황은 열악하다고 볼 수 있다.

건강한 노인들에게는 일자리·자원봉사·여가활동의 기회를 만들어주고, 건강하지 않은 노인에게는 연금 지급 및 요양시설 확충을 통해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불교가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행복한 인생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나침반이 되기 위해 스님들은 인사관리, 재무관리, 조직관리에 집중하고 법문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대승불교 정신에 입각해 중생을 구제하고, 특히 삶의 마지막에 직면한 노인 세대의 아픔을 헤아려 불교식 장례 등 노인을 위한 프로그램 및 시스템 구축에 나서야 한다. 그리하여 고통을 함께 나누는 불교의 기본이념을 실천해야만 한다.

소록도에서 한센병 환자를 위해 평생을 헌신한 오스트리아 수녀의 삶과 대만 자제공덕회의 적극적인 사회활동에서 느끼듯 종교와 사회복지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현재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는 사회복지는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오래 전의 미국교과서를 오역한 것에 불과하다. 바람직한 불교적 사회복지는 ‘중생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는 〈유마경〉의 유마 거사가 보인 자타불이 정신에 입각한 사부대중의 각성과 실천에서 나온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