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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로 배우는 불교 7. 영산회상변상도
  • 이승희/ 홍익대 강사
  • 승인 2016.05.18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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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참법 수행하면 누구나 성불 의미

   
▲ 영산회상변상도. <법화경>권1, 고려 1332년. 감지은자. 316*11.0 cm. 일본 사가(佐賀) 나베시마후쿠오카이.

영취산에서의 부처님 설법장면을 묘사한 고려 후기의 ‘영산회상변상도’에는 당시 성행했던 예참의식과 성불을 상징하는 독특한 도상이 있다. ‘영산회상변상도’에는 영취산을 상징하는 산수 표현이 배제된 빈 공간에 석가모니불이 중앙의 높은 대좌 위에 자리하고, 그 주변을 10대 제자가 에워싸고 있다.

석가여래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상서로운 보개의 양 옆에는 시방제불(十方諸佛)이 5불씩 나뉘어 구름을 타고 강림하고 있다. 5불의 옆에는 각각 석가여래의 협시보살인 문수와 보현보살이 각각 사자와 코끼리 위에 앉은 채 구름을 타고 강림하고 있다. 그 뒤에는 서로 다른 구름 위에 앉은 2위의 보살이 따르고 있다.

하단에 고루 자리 잡고 있는 청중은 설법을 듣기 위해 석가모니불을 향해 움직이는듯한 구도를 취하고 있다. 석가불이 10대 제자를 중심으로 사천왕ㆍ긴나라ㆍ가루다ㆍ용왕 등의 팔부중과 제석의 무리 일궁천자 등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의 명칭은 방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석가모니불가 결가부좌하고 있는 대좌 아래에는 보탑이 용출하고 있으며, 양 옆에는 보탑을 향해 앉아 예경을 드리는 아사세왕(阿世王)과 사리불이 표현돼 있다.


보탑은 〈법화경〉 ‘견보탑품’에 근거해서 본다면 석가여래가 설하고 있는 〈법화경〉이 진실임을 증명하는 상서로운 불탑이다. 석가여래는 다보여래의 탑 속에서 자신의 입멸이 멀지 않았음을 말하고 자신의 입멸 후에 〈법화경〉을 부촉해야 할 사람을 모으고 있어 미래에 〈법화경〉의 전승이 불탑을 중심으로 전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다보탑은 부처님의 말씀을 증명하는 상서로운 존재이지만, 고려 후기의 ‘영산회상변상도’에서는 오른편에 자리한 아사세왕과 사리불을 통해 달리 해석할 수 있다.

아사세왕은 〈관무량수경〉의 주인공으로 중인도 마갈타국의 왕세자로 석존에 귀의한 후, 교단의 외호자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흔히 ‘미생원(未生怨)’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태어나기도 전에 원한을 품었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부왕인 빔비사라가 늙도록 후사를 두지 못해 신에게 기원하고 점을 쳤더니 비부라산에 있는 선인이 천수를 다한 후에 왕궁에 태어나 왕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 왕이 기뻐하며 선인이 언제 세상을 떠날 것인지 묻자 아직 3년이 남았다고 했다. 그러나 왕은 3년을 기다릴 수가 없어 그 선인을 살해했다. 죽는 순간에 선인은 자신을 죽인 것을 용서할 수 없어 ‘왕자가 되면 언젠가는 신하에게 명해 왕을 살해할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이후 왕비인 위제희가 임신을 해 아들을 낳았는데 바로 아사세왕이다.

아사세왕은 장성해 태자가 된 후 빔비사라왕을 감옥에 가두고 모후를 유폐해 결국 왕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비극적인 상황을 겪으며 위제희왕비가 부처님께 괴로운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묻자 석가모니불은 아미타불이 계시는 극락정토에 태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 세 가지 복과 열여섯 가지 관법을 설해주었다는 이야기가 〈관무량수경〉에 자세히 실려 있다.

한편 아사세왕은 부왕을 살해해서 왕 위에 오른 이후 양심의 가책으로 전신에 피부병이 생겨 가렵고 아프고 악취로 밤낮을 고통스러워 했다. 위제희왕비는 아사세왕을 열심히 간호했지만 병은 낫지 않았다. 결국 아사세왕은 왕실 의사인 기바의 권유로 부처님을 찾아가 설법을 듣고 참회하고 귀의하니 죄의식이 사라짐과 동시에 병도 완전히 나았다. 이후 아사세왕은 오랫동안 나라를 훌륭히 잘 다스렸으며 제1결집을 도왔다.

아사세왕이 ‘영산회상변상도’에서 단순히 청문중이 아닌 보탑을 향해 무릎을 꿇고 합장을 한 채 예경을 드리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은 〈관무량수경〉에서 설한 아사세왕의 패륜 사실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림에서 아사세왕이 부처님이 아닌 다보불탑을 향하고 있는 이유는 법화삼부경 중 하나인 〈불설보현보살행법경(佛說觀普賢菩薩行法經)〉(이하 관보현경)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대승경전을 독송하되, 밤낮으로 여섯 차례 꿇어앉아 참회하면서 말하되 ‘나는 지금 어찌하여 석가모니부처님의 몸을 나누신 모든 부처님만을 뵈옵고, 다보불탑의 전신사리는 뵈옵지 못하는가. 다보불탑은 항상 계시어 없어지지 않거늘 나는 눈이 흐리고 나빠서 뵈옵지 못하는구나’ 할지니라. 이렇게 말하고 다시 참회하여 7일이 지나면 다보불탑이 땅에서 솟아나오고, 석가모니부처님이 곧 오른손으로 탑의 문을 열면 다보부처님이 보현색신삼매(普現色身三昧)에 들어 계시는 것을 보리라.”

〈관보현경〉은 부처님에 열반에 들기 3개월 전에 보현행을 대중에게 설한 경전으로, 관법을 통한 참회수행에 관한 방법이 구체적으로 서술돼 있다. 위의 글은 대승경전을 독송하며 진심으로 참회할 때 다보불탑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다보불탑은 참회수행을 한 자만이 볼 수 있는 구원을 증명해주는 상서로운 탑인 것이다. 참회를 통해 ‘성불’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보탑의 왼편에 합장을 하고 꿇어 앉아있는 사실을 통해 구체화된다. 사리불은 〈법화경〉 ‘비유품’과 ‘방편품’에서 석존의 교설을 청문하고 법문을 들은 후에 성불할 것이라는 수기를 받은 부처님의 제자이다.

아사세왕과 함께 사리불은 〈법화경〉의 독송과 법화참법을 통해 수행한다면 누구나 성불할 수 있다는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다시 말해 보탑을 중심으로 아사세왕과 사리불의 조합은 불도를 이루기 위한 최상의 법문인 〈법화경〉과 법화참법을 통해 성불할 수 있다는 의미를 구현했다고 할 수 있다.

이승희/ 홍익대 강사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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