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ㆍ스님 향해 ‘찰칵’ 20년 “불교 사진은 매력 덩어리”

 

봄꽃이 만개한 계절. 정릉 경국사 경내를 누비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인물이 있다. 그는 능숙하게 사찰 풍경을 카메라 앵글에 담아냈다. 경국사 입구에서 올라가는 길, 조계종 전 총무원장 지관 스님의 스승인 자운 스님의 부도탑, 처마 끝에 달려 바람에 흔들리며 아름다운 소리를 내고 있는 풍경(風磬), 보물 제748호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등 그는 카메라에 사찰 구석구석의 다양한 풍경을 차곡차곡 담았다. 불법에 귀의해 신행 활동을 하면서 불교사진을 20여 년 간 꾸준히 찍고 있는 전제우(60) 한국불교사진협회장이다.

아내 덕에 불교 입문
“정구업진언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소년 전제우가 어렸을 적 매일 집에서 아버지의 목소리를 통해 들었던 소리다. 아버지는 집에서 항상 〈천수경〉을 독송했다. 절에 가본 적 없는 어린 전제우는 아버지가 기도하는 모습과 주문 같은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제 고향은 강원도 산골입니다. 집 근처에 절도 없을뿐더러, 절에 간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죠. 단지 아버지가 〈천수경〉을 읽으며 기도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습니다. 중학교 수학여행 때 태어나서 처음 사찰(속리산 법주사)을 가봤죠.”
수학여행을 통해 처음 가본 사찰에서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진 못했다.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가 읽는 경전이 〈천수경〉이란 걸 알게 됐다. 신심 돈독했던 아버지는 어린 아들에게 불교라는 종교를 권하지도 못한 채 일찍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의 주변에서 불교라는 종교는 사라졌다.

그가 불교를 종교로 받아들인 계기는 결혼이었다.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아내를 따라 절에 다니게 됐고, 차로 아내를 절에 데려다 주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불교에 빠져들었다. 불교사진에 매료된 것도 이즈음이다.

인쇄ㆍ기획 관련 일에 종사하던 그는 일의 특성상 사진 찍는 일도 함께 했다. 그러다 취미생활로 일상 풍경, 꽃 등의 사진을 찍곤 했다. 주위 사람들에게 알음알음 도움을 받아 독학으로 사진에 대해 공부를 했다. 사진에 푹 빠진 전 회장은 급기야 1988년 충무로에 스튜디오를 열었다. 그 와중에 아내와 함께 절에 다니면서 사찰의 풍경과 문화재, 스님을 촬영하며 불교사진을 접했다.

불교사진에 매료된 후 여러 절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불교를 카메라에 담아내기 위해서는 불교에 대해 내가 제대로 알아야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로 조계사 기초교리반(35기)에 입학해 불교교리를 배우며 소양을 쌓았다. 2008년 스튜디오 문을 닫고 온전히 불교사진에만 몰두하게 됐다.

“상업 사진을 주로 찍다가 불교사진을 접한 후 불교사진에 매진하게 됐죠. 절에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절이 좋아지고, 또 절에 가면 불교문화재가 많아서 그런 것을 찍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불교사진에 빠져든 후에 일반사진은 못 찍겠더라고요. 그래서 불교사진에 올인(all in)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죠.”

노스님들의 아름다움
불교사진에 매진하고 있는 그는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다. 그 중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는 활동은 노스님들의 인물사진이다. 그는 오래 전부터 연세 드신 노스님들의 사진을 찍고 있다. 노스님들의 사진을 찍게 된 계기는 성철 스님의 입적이다. 그전에도 스님들의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지만, 노스님들의 모습을 찍는 것에 대해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그런데 성철 스님이 입적하자 ‘왜 살아계실 적에 사진을 찍어드리지 못했을까’ 하는 진한 아쉬움이 들었다. 그리고 그 일이 두고두고 후회가 됐다. 그때부터 노스님들이 살아계실 때 사진을 찍어 드려야겠다는 서원을 세웠다.

“제가 불교사진에 빠진 것은 불교가 좋고, 불교의 사상이 좋아서입니다. 스님들을 만나는 과정도 그 중 하나죠. 우리가 평소에 보는 풍경은 매년 변하지만 비슷해요. 하지만 스님들이 나이를 먹음에 따라 변하는 모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그 변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요. 아마 이 작업은 제 생이 다할 때까지 계속 될 것 같습니다.”

그는 노스님들의 사진을 무료로 찍어 드린다. 사회적으로 알려진 스님과 그렇지 않은 스님을 구분하지도 않는다. 노스님들의 사진을 찍는 이유는 경제적인 이윤 추구가 아닌 평소 흠모하던 스님들을 뵙는 것이 좋고, 그 스님들을 향해 셔터를 누르는 순간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님들의 사진을 찍으려고 미리 연락을 하면 스님들은 열이면 열 다 거절을 한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든 바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모든 장비를 가지고 무작정 스님들을 찾아다닌다. 몇 번의 거절이 있은 후 기어코 스님들의 사진을 찍을 때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옛말을 실감하곤 한다.

지금까지 사진을 찍어 드린 스님들은 100명이 넘는다. 모든 사진이 소중하지만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스님은 숭산 스님과 조계종 5대 종정을 지낸 서옹 스님의 사진이다.

“스님들 사진을 찍기 위해선 기본 열 번 정도는 읍소해야 합니다. 단 한 컷도 쉽게 찍은 적이 없어요. 숭산 스님과 서옹 스님도 마찬가지였죠. 몇 번을 거절당한 끝에 결국엔 허락을 받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죠. 숭산 스님은 제가 사진을 찍어드린 후 며칠이 지난 후 입적을 하셨어요. 제가 찍은 사진이 영정사진으로 사용됐죠. 그런 이유로 스님의 사진을 찍은 게 굉장한 인연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옹 스님은 사진을 찍을 때 편안한 미소를 지었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비록 스님들에게 환영 받지 못하지만 그는 생이 다할 때까지 노스님들의 사진을 찍겠다는 서원을 이루기 위해 지금도 무작정 스님들을 찾아 나서고 있다. 전제우 회장은 절을 찾는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무료 영정사진 봉사도 진행하고 있다. 2014년 불교TV 회장 성우 스님의 제안으로 시작한 영정사진 봉사는 어르신들의 성원에 힘입어 현재까지 3차례에 걸쳐 진행됐고, 앞으로도 꾸준히 할 예정이다.

“사진을 찍으시는 어르신들이 불교 공부를 하신 분들이라 그런지 살아있을 때 영정사진을 준비한다는 것에 거부감이 없으세요. 오히려 굉장히 좋아하죠.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사진촬영을 하는 불자로서 매우 뿌듯하고 보람찹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런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고 싶어요.”

이 외에도 인연 있는 사찰 행사가 있을 때마다 자발적으로 촬영을 해주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일곱 차례의 개인전을 통해 사진작가로서의 명성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불교사진 앞서 불교공부를
전제우 회장과 마찬가지로 불교사진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이 활동 하는 곳이 바로 1995년 설립된 한국불교사진협회다. 그는 1997년에 협회에 가입한 후 지금까지 협회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120여 명의 회원들이 전국 각지에 분포 돼 있으며,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갖고 사찰 순례 겸 사진촬영에 나선다. 이렇게 회원들이 찍은 사진을 가지고 매년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사진 전시회도 개최하고 있다.

올해도 5월 9일부터 15일까지 서울 법련사 불일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연다. 하지만 협회 회원들 중에도 전 회장처럼 생업을 포기하면서까지 전문적으로 불교사진을 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먹고 사는데 불교사진은 별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사실 불교사진을 해서 생업을 이어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스님들은 사진은 돈 주고 사는 게 아니라 얻는 것이라고 인식하거든요. 재가자들에게 보시 받는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하다못해 사찰 달력에 제 사진을 사용한다고 해도 제값을 안 주는 곳이 태반입니다. 이런 이유 말고도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불교사진 작가들이 이 일을 생업으로 하기엔 어려운 게 현실이죠.(웃음)”

불자들이 불교사진을 잘 찍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그는 좋은 작품사진을 많이 보고, 좋은 전시회를 다녀 볼 것을 권했다. 그리고 사진 찍는 것에만 욕심을 낼게 아니라 먼저 기본적인 불교지식을 쌓으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그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자기 사진에 대한 ‘책임감’이다.

“내가 찍은 사진을 내보일 때 불미스럽지 않아야 합니다. 사진에만 욕심을 부려 들어가지 않아야 될 곳, 찍지 말아야 할 것을 찍는다면 불교사진 작가들이 설 자리를 스스로 버리는 셈이죠. 특히 요즘은 스마트폰이나 SNS가 발달했기 때문에 더욱 주의해야 합니다.”아름다운 사진을 찍기 위한 노하우에 대해서는 간단명료하게 ‘경험’이라고 답했다. 문화재도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했듯이, 사진도 경험이 쌓이고 많이 찍다보면 저절로 사진 찍는 기술이 는다는 게 그의 철칙이다.

전 회장은 평소 사찰에서 사진을 찍는 불자들을 많이 도와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불교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대부분 경제적인 이유로 사진작품을 발표할 기회가 많지 않다. 비싼 대관료 때문이다. 그가 생각하는 대안은 사찰에 갤러리나 전시장을 만드는 것이다.

“규모가 큰 사찰들이 불사를 할 때 작은 갤러리나 전시장을 한편에 마련해 불자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대관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장소가 넓지 않아도 돼요. 작은공간도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공간이거든요. 그러면 작가들은 자신들이 찍은 불교사진을 손쉽게 발표할 수 있고, 사찰은 전시를 통해 관광객 유치나 포교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또 같은 맥락에서 사찰에 사진을 찍으러 갔을 때 무조건 거부만 하지 말고,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협조를 해 주면 좋겠습니다. 좋은 사진을 찍어 발표하면, 이게 바로 불교를 홍보 하는 길이지 않을까요?”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먹기에 따라 달렸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항상 마음속에 새기고 있다는 전제우 회장. 대가 없이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 찾아가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그의 마음이 그 어느 보석보다 빛나고, 아름답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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