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 7.3의 강진과 이에 버금가는 여진들이 쉴 새 없이 몰아친 일본 구마모토(熊本)시는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는 소식입니다. 단수·단전에 가스 공급까지 중단됐고 뭘 사먹을 수 있는 가게마저 없어 시민들의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라고 합니다. 피난소는 이재민들을 수용하기에 턱없이 좁고 부족해 거리에서 밤을 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재민에겐 의식주 해결이 아주 절박한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이재민들의 처신을 보자면 놀랍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에서 빵과 생수를 배급하는데 누구하나 질서를 흩뜨리지 않고 질서정연하게 줄을 서서 자기 몫을 받아가는 장면은 일본의 높은 시민의식을 보여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차분함을 지탱하는 이들의 힘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일본은 지진대에 놓여 있어 재해가 우리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그런 속에서 일본인들은 고통을 함께 극복해 나가기 위한 공동체 의식과 집단적 지혜를 발휘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1995년 고베 지진 때도,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도 일본 시민의 대응자세는 침착했고 질서정연했습니다.

존 룰스(John Rawls, 1921~2002)는 그의 저서 〈정의론〉에서 “질서정연한 사회는 두 가지 조건을 갖는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첫째가 모든 구성원들이 동일한 정의의 원칙을 받아들이고, 또한 이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 사회의 모든 제도가 받아들여진 정의의 원칙에 부합하여야 하며, 또한 서로 부합한다는 사실이 구성원들에게 알려져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존 룰스의 이같은 정의는 질서는 정의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범죄의 실태를 들여다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2013년 경찰청 통계에 의하면 오물투기 1만8,298건, 음주 소란행위가 1만6,357건, 노상방뇨가 3,433건 등 총 5만5,455건이 경범죄 위반으로 처벌을 받았다고 합니다.

정의로운 사회가 중시되는 선진국가로 진입하려면 가장 중요한 게 기초질서를 얼마나 잘 지키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정의사회의 구현을 위해서라도 기초질서 위반자에 대해선 엄중한 단속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게 사회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승가공동체를 이루었던 초기불교에서 부처님은 차례를 엄격하게 강조하셨습니다. 차례는 승가공동체에서 질서를 이루는 주요한 키포인트라 할 수 있습니다. 〈범망경보살계본〉에서 부처님께서는 “불자들아, 마땅히 법이 정한 대로 높고 낮은 차례를 찾아 앉되, 먼저 계 받은 이가 위에 앉고, 뒤에 계 받은 이는 아래에 앉아야 하느니라. 나이가 많고 적은 것을 가리지 말고, 비구 · 비구니·임금·임금의 아들·내시·종 등은 저희끼리 모여 앉되, 저마다 먼저 계 받은 이가 위에 앉고, 뒤에 받은 이는 차례를 따라 앉아야 한다. 어리석은 외도들과 같이 나이가 많은 사람이나 나이 적은 사람 할 것 없이 서로 선후를 가리지 않고, 차례를 마치 병졸이나 종들이 하는 것과 같이 하지 말라. 우리 불법에는 앞 사람이 앞에 앉고, 뒷사람이 뒤에 앉거나, 만약 보살이 법답게 낱낱이 차례를 찾아 앉지 아니하면 가벼운 죄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법계에 따라 승가의 위계질서를 잡고 있는 대목입니다. 이렇게 기준과 원칙을 제시해야 질서를 지킬 수 있습니다.

〈중용(中庸)〉 제15장에 ‘등고자비(登高自卑)’라는 말이 나옵니다. 높은 곳에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달리 말하면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우리 속담과 일맥상통하는 말입니다. 또한 불전의 〈비유경〉에 보면 옛날에 어리석기 짝이 없는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 부자는 다른 부자의 집에 놀러갔다가 높고 드넓으며 빛나는 삼층 건물을 보았습니다. 그는 시샘을 내며 생각했습니다. “나의 재물은 그보다 많다. 그런데 나는 왜 이런 집이 없을까?” 그는 즉각 목수를 불렀습니다. 그리곤 친구의 집과 비슷한 집을 지어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이에 목수는 터를 닦기 시작하고 진흙 벽돌을 쌓아 올렸습니다. 그러자 이 광경을 지켜 본 부자가 의아한 듯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떤 종류의 집을 지으려고 하는 건가?” “삼층집입니다.” 부자가 말했습니다. “나는 일층과 이층은 필요 없다. 그냥 삼층만 지어다오.”

목수가 어이없다는 듯 대꾸했습니다. “그렇게는 절대 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1층의 기초를 다지지 않고 2층을 지으며 2층을 짓지 않고 어떻게 3층을 올린단 말입니까?”

우리 주변엔 이 어리석은 부자의 예처럼 기초와 차례를 무시하고 3층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새치기를 통해 목적을 이루려는 얌체보다 더 경계해야 할 어리석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건강한 사회란 정의롭고 지혜로워야 합니다. 정의와 지혜는 차례와 질서가 존중될 때 형성됩니다. 우리 모두 질서를 지키는 지혜로운 사람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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