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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식, 과거속으로 3. 수륙재(水陸齋)
  • 이성운/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학술연구교수
  • 승인 2016.04.26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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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양무제 때 첫 설행, 현대 복원된수행·신행문화 총아

   
▲ 진관사 수륙재 상단 공양 장면.

수륙재는 명칭의 ‘수륙’이라는 단어로 인해 우리나라 불교에서는 ‘물과 육지에서 죽은 여러 영혼들이 극락왕생하기를 기원하는 천혼의식’ 정도로 이해되고 있다. ‘수륙재는 무엇이다’라고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울 정도로 학계에서는 수륙재에 대해 다양하게 이해하고 설명한다. 그것은 수륙재 성립 이후 현재까지 활용이 변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으며, 수륙재의 대본(大本)인 의문(儀文)에서 잘 드러난다. 수륙재 이외의 의례들은 대개 의례 설행 역사만을 가지고 있는 데 비해 수륙재는 분명한 설행 목적과 설행 역사, 대본인 의문을 가지고 있다.

수륙재의 원 제목은 수륙재 의문의 제목에서 나타난다. 첫째 ‘천지명양수륙재’, 둘째 ‘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 셋째 ‘수륙무차평등재’이다. 세 제목에서 ‘수륙’이라는 말이 공통적으로 등장하므로 ‘수륙재’라고 약칭하게 되었다. 중국불교나 대만 불광사 등지에서 설행하는 수륙재는 ‘만연(萬緣)수륙법회’, ‘대비심수륙법회’라고 하며 수륙재라고 칭하는 경우는 보기 힘들다.

수륙재의 제목은 대구로 이뤄져 있다. ‘천지명양수륙재’만 보면 하늘 땅, 산 자의 세계인 양계와 죽은 자의 세계인 명계, 그리고 물과 뭍(육지)이다. 이 제목을 보면 수륙재를 단순히 ‘물과 뭍에서 죽은 영혼들이 극락왕생하기를 기원하는 천도의식’이라고만 단정하기 어렵다. 법계의 성인과 범부 대중이 참여하는 수륙재의 설행 역사를 살펴보면 수륙재의 의미는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다.

■ 설행 목적과 역사

수륙재는 505년 중국 양무제에 의해 금산사에서 처음으로 설행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렇지만 현재 전해지는 수륙재 대본이 등장하는 시기는 11세기 이후 송나라 때의 일이다. 양무제 때 처음 설행할 때는 나라 임금이 육도사생의 고통 받는 뭇 영령을 구제하고자 하는 목적이었다.

12세기 말 송나라 사명 사호 스님은 금산사에서 수륙법회가 성행하는 것에 큰 감동을 받고 밭 100묘를 시주하여 네 가지 큰 은혜를 갚기 위해 네 계절에 수륙회를 베풀었다. 이때 수륙법회가 성행해 전국에 널리 보급되자, 전쟁 이후 조정이나 민간에서 극락으로 건너가게 하는 초도(超度)법회로서 수륙법회가 항상 행해졌다. 심지어 수륙재를 하지 않으면 불효라고 하여 집안의 제사로 수용되었다. 또 수륙재를 열어 중생을 제도하지 않으면 자비가 없다고 하는 인식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한 부처님에게 공양하고 재승(齋僧)하는 것도 무한한 공덕이 있는데, 하물며 시방의 삼보와 육도의 만령에게 널리 공양을 올리는 공덕이랴”라고 하여 수륙재를 공덕을 쌓는 의례로 수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1세기 말 수륙재 의문이 우리나라에 수입되어 의문에 의해 수륙재가 시행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고려 성종 때에 최승로의 시무28조 건의문에 ‘무차수륙회’라는 명칭과 그 폐단이 언급되는 것으로 볼 때, 10세기에 이미 우리나라에 수륙재가 널리 설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때의 수륙재는 ‘무차법회(無遮法會)’라고 하여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고루 음식을 나눠주고 진리를 들려주는, 오늘날 대만 등지에서 행해지는 만연법회의 성격이라고 보인다.

‘수륙재’라는 명칭으로 수륙재가 설행된 것은 조선시대 이후라고 할 수 있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새 왕조 건설로 인해 희생된 전대 왕 씨의 명복을 빌기 위해 1395년 2월 보름 개성의 관음굴, 삼척의 삼화사, 남해의 견암 등지에서 왕 씨들의 추천(추후천도)을 위해 수륙재를 개설하였다. 이듬해 5월에는 부역 과정에 사망한 역부들의 혼령을 천도하기 위해 성문 밖 세 곳에서 수륙재를 개설하였다. 1397년에는 서울 진관사에 수륙사를 건립해 선왕선후의 왕생극락을 발원하는 수륙재를 상설화하였다.

이후 수륙재는 조선시대 국가의 핵심 불교의례였는데, 역병을 물리치거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또는 천재지변과 같은 재앙을 물리치고자 하는 등 다양한 목적으로 개설되었다.

1420년 세종 2년에는 선왕선후의 추천 칠칠재를 수륙재로 봉행하도록 하였고, 기신재 등도 수륙재로 봉행하여 수륙재는 그 절정의 시기를 구가했다.

16세기 초반 수륙재 등 불교의례가 공식적으로 폐지되어 국행수륙재는 그 모습을 감추게 되지만 이후 사찰 단위의 민간 수륙재로 변모하며 다양하게 설행되었다.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비명에 목숨을 잃은 영혼을 제사하고 위로하며 추천하는 수륙재는 불교 사찰의 핵심 기능으로 수용되었다. 일부 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17세기 이후 우리나라 사찰의 사동정중 배치는 수륙재 개설을 위한 도량이라는 주장도 있다.

특히 설·한식·백중·추석의 사명일에는 국혼·승혼·법계고혼을 널리 불러 음식을 베푸는 시식을 하였는데, 이는 국가로부터 사찰 토지를 부여 받은 사찰의 의무와 같은 것으로 국가의 안녕과 주상과 왕비 세자의 수명장수를 비는 것이 1차 목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1911년 일제의 사찰령으로 수륙재의 주요한 형태인 범패와 작법 화청 등이 금지되고 본질적 목적보다 지나치게 형식에 치우쳐 있다는 안팎의 지적으로 수륙재는 더욱 위축되었다. 하지만 후손이 끊어져 네 계절에 제사를 지내주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제사의식으로 수륙재는 민간에서 끊임없이 설행되었다. 1955년 부여에서 백제문화제를 하면서 수륙재를 설행한 이래 현재까지 60여 년을 이어오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 1970년대 후반부터, 선왕선후의 칠칠재 등 국행수륙재를 설행했던 서울 진관사에서 자운 스님에 의해 수륙재가 복원되어 설행되기 시작하였고, 조선 초 왕 씨를 위한 수륙재 설행도량이었던 동해 삼화사에서도 2000년대 이후 전통수륙재를 복원해 매년 봉행하고 있다. 2013년 12월 문체부에서는 서울의 진관사, 동해의 삼화사, 경남 마산의 백운사에서 설행되는 수륙재에 대해 국가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였다.

■ 설행 시기와 기간

현재와 같은 수륙재가 개설되었다는 조선 초기 고려 왕 씨를 위한 수륙재는 관음굴이나 삼화사 등지에서 봄 가을 개설되었다고 보이며, 칠칠재나 기신재와 같은 때 수시로 수륙재가 열렸다. 수륙재는 대체로 1주일 동안 열렸는데, 그 방식도 약간의 차이가 있다.

가령 1432년 세종의 형 효령대군은 한강에서 일주일 동안 수륙재를 열어 1천 명의 스님들에게 음식과 보시를 주고 심지어는 지나가는 사람들까지 음식을 대접하는 무차수륙재의 형식으로 열리거나, 3일 또는 7일 낮밤으로 수륙재를 설행하기도 하였다.

〈오종범음집〉(1661)에 의하면, 〈자기문〉이라는 수륙재 각단 의문에서 확인되는 12단, 17단, 25단, 35단을 설단하고 해당 날짜에 각단을 청하여 공양을 올리는 형식으로 3일 또는 7일간 수륙재가 설행된다. 이때도 항상 오늘날 영산재의 형식으로 진행되는 경전 설법의식이 함께 봉행된다. 7일간의 수륙재에서는 오전의 경전염송법석에서 7권으로 구성된 법화경을 매일 1권씩 염송하거나 설법을 한다.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이 책은 ‘중례문’이라고 불림)나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이 책은 ‘결수문’이라 불림)에 의해 수륙재를 설행할 때는 오후 2시와 4시에 시작하여 익일 축시 이전에 종료되었다.

예전에는 수륙재가 하루 낮밤 동안 행해졌다고 하지만 오늘날은 밤에 수륙재를 하는 경우를 보기는 힘들다. 명양의례(冥陽儀禮), 다시 말해 양계에 사는 이와 음계인 명계의 존재를 위해 낮밤으로 행해지는 의례가 현재는 모두 낮에 행해지고 있다.

서울의 진관사는 시월 중순에 〈결수문〉을 저본으로 해 수륙재를 설행하며 1일 낮밤 의례로 설행하는 취지를 살려 낮재와 밤재라고 하며, 칠칠재 형식으로 설행되며 막재 하루 전에 낮재를 49일 날에 밤재를 하고 있다. 진관사 수륙재가 선왕선후의 기신재 또는 칠칠일 재를 설행하던 유풍으로 보인다.

또 〈중례문〉을 저본으로 설행하는 동해의 삼화사도 시월 중순에 2박 3일의 일정으로 설행되는데, 첫날은 시련에서 사자단의식까지, 둘째 날은 오로단과 상단과 설법, 중단의식을 설행하고, 마지막 날은 방생의식·하단의식·독경의식·봉송회향의식을 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대부분의 우리나라 수륙재는 단오나 한식일 등 특정일 또는 수시에 개설되며, 대개 오전에 시작하여 오후에 끝나는 하루 낮의 재로 진행되며 주최하는 형편에 따라 2~3시간, 혹은 6~8시간에 종료되도록 조정하여 설행되고 있다.

■ 의문(儀文)에 따른 절차

수륙재는 의문(儀文)에 의거하여 설행되며, 현재 우리나라에 전해진 수륙재의문은 대략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눠진다. 수륙재에 청해지는 성현과 범부를 통청하는 형태 절차의 요점을 담고 있는 〈결수문〉ㆍ〈중례문〉ㆍ〈지반문〉이 있고, 수륙재 각위를 각단으로 청하는 〈자기문〉, 수륙재에서 활용되는 각종 소장과 단문·방문 등을 담고 있는 〈수륙잡문〉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 수륙재는 대개 〈중례문〉과 〈결수문〉에 각종 소문과 찬탄의 가영 등이 합편된 의문으로 진행되며, 상단ㆍ중단ㆍ하단의 대상을 청하고 공양하며, 보내드리는 3단계의식으로 치러진다.

 - 시련·대령·관욕
시련은 의식도량으로 영가를 모셔오는 의식이다. 예전에는 시주이운이라고 해서 시주가 재물을 가지고 오면 해탈문 밖으로 나아가 맞이하였다. 진관사에서는 이때 가마를 매는 광목을 길게 늘여 대중이 함께 매고 들어오는데 동참자들로 하여금 일체감과 신심을 고조하고 있다.

대령은 영가와 대면하는 의식이다. 영가의 이름을 부른다. 불러도 올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영가를 위해 신묘장구다라니·파지옥진언 등을 염송하여 지옥을 깨고 청혼을 한다.

관욕은 초청한 영가를 목욕시키고 새 옷을 갈아입히는 의식이다. 이를 위해 남녀신구, 제왕과 후비, 천류와 장상구역의 여섯 곳의 관욕소가 차려지며 그 내부는 공개되지 않는데, 촛불 빛으로 위패를 향탕수에 비추고, 종이옷을 불태우는 식으로 진행된다.

- 신중작법과 괘불이운
신중작법의식은 창불이라고도 하는데, 수륙도량을 옹호할 것을 발원한 신중을 청해 불사를 옹호하여 줄 것을 청하는 의식이다. 이때 104위의 신중을 부르거나 23위의 신중을 부른다.

괘불이운은 야외에 그림으로 부처님과 회상을 그려 모신 괘불을 법당에서 법회장소로 모셔오는 의식이다. 이때 꽃을 뿌리고 찬탄하며 법회장소로 나아가 단 위에 모셔 건다.

- 영산작법
영산의 부처님을 청해 법문을 듣고 경전을 염송하는 의식이다. 부처님을 청하기 위해 향을 사르고 등을 밝히고 꽃을 공양하는 의식을 행하는데, 몸으로 춤의 형태로 표현하고, 범패로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는 하모니를 연출한다. 영산작법에서는 법화경 염송이 필수적이다.

- 엄정의식: 도량을 정화하는 의식
수륙재가 설행되게 된 인연을 밝히고 수륙재도량을 맑히는 의식이 시작된다. 현재 우리나라 수륙재에서는 수륙재를 원만히 이루기 위해 관세음보살을 청해 감로수를 빌어 도량에 뿌리고 참회를 통해 도량 안팎을 깨끗이 한다.

- 법회에 초청하는 의식: 사자단 의식
사자는 사신이라는 뜻으로 연월일시의 네 사자로 하여금 수륙법회가 열리게 되었음을 하늘세계·허공계·지상세계·염부세계에 알리도록 하는 의식이다. 사자는 말을 타고 해당 세계로 떠나게 된다. 마구단에는 사자와 열 필의 말이 그려지는데, 네 사자와 석범천의 사자, 다섯 판관을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오방의 길을 열기: 오로단 의식
법회에 참석하는 이들이 걸림 없이 동참할 수 있도록 오방의 오제를 청하여 길을 열라고 부탁하는 의식이다. 이 의식은 중국불교 수륙재에서는 볼 수 없는 의식이다.

- 상위의 삼보를 청하여 공양하기
이전까지의 의식은 고유한 수륙재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상위의 삼보님을 청하여 공양을 올리는 의식으로 이 의식이 축소되어 현재의 삼보통청의식이 되었다.

- 중위의 성현을 청하여 공양하기
불사도량을 옹호할 것을 발원한 중위의 신중님들과 염라왕을 청하여 공양을 올리고 불사를 옹호하고 중생을 제도하기를 청하는 의식이다.

- 하위의 영가를 청하여 음식을 베풀기
현재 우리나라 수륙재는 영산작법과 함께 설행되어 수륙재 이전에 대령 관욕을 하고 설법을 한다. 수륙재 의식대로라면 국가의 혼령, 승가의 혼령, 재주가 없는 고혼, 설판재자의 혼령을 청하여 목욕을 시키고 법문을 들려주어 진리를 깨닫게 하는 의식이다. 음식을 베풀므로 시식의식이라고 하며 수륙재의 핵심이라고 하겠다.

- 봉송의식
상·중·하 삼단의 성인과 범부를 청해 공양을 올리고 법문을 들려주어 깨닫게 하고 난 다음 일체 존재들을 각자가 속한 곳으로 돌려보내는 의식이다. 통상 장엄염불을 하면서 소대로 나아가는데, 공덕을 쌓아 극락세계에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소대에 이르러 위패를 사르며 극락세계에 가서 날 것을 발원하며, 산 자와 망자가 하직인사를 하며 수륙재를 마친다.

성현께 공양을 올리고, 산 자와 죽은 자를 함께 청하되 오는 이를 막지 않고 음식을 베풀며 진리를 들려주어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깨달음의 대 향연인 수륙재, 각종 소문과 설단, 전통방식으로 제작되는 지화, 각종 불보살님의 번과 위패, 범음범패로 장엄되며, 불교철학과 문학, 불교음악과 미술 등이 어우러진 수행과 신행 문화의 총아라고 할 수 있다.

위로는 불도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건지려는 대승불교의 정신을 구현하는 불교의 핵심의례인 수륙재는 현재에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 괘불.
   
▲ 진관사 수륙재 시련 장면.
   
▲ 진관사 수륙재 동희 스님의 법고무 장면.
   
▲ 진관사 수륙재 결인 장면.
   
▲ 진관사 수륙재 관욕단에서 신도 예배 장면.
   
▲ 진관사 수륙재 소대 의식 장면.
   
▲ 삼화사 수륙재 상단 설단.
   
▲ 삼화사 수륙재 중단.
   
▲ 삼화사 수륙재 하단.
   
▲ 삼화사 수륙재 사자단.
   
▲ 삼화사 수륙재 오로단.
   
▲ 삼화사 수륙재 대령단.
   
▲ 삼화사 수륙재 성욕소.
   
▲ 삼화사 수륙재 시련소.
   
▲ 삼화사 수륙재 소대.

 

이성운/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학술연구교수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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