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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로 배우는 불교 5. 관경16관변상도
  • 이승희 홍익대학교 불교미술사 박사
  • 승인 2016.03.25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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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구제 서원이 진정한 성불(成佛)의 길

   
▲ <그림1>‘관경16관변상도’, 고려 13세기 후반, 183.0×121.0cm, 일본 타카하기시 오오타카지(高萩市 大高寺) 소장.

불자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염원은 세상의 모든 고통과 번뇌로부터 벗어나 부처님과 같은 깨달음을 얻는 성불(成佛)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죽음에 대한 인간적인 두려움도 갖고 있기에 극락왕생을 바라는 소원(所願)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극락왕생과 성불은 어떠한 관계가 있을까? 극락왕생이 곧 성불인 것일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극락왕생한 후에 어떤 과정을 거쳐 성불에 이르는 것일까?

중국인들은 인도에서 가져온 정토관련 경전을 번역하면서 정토를 ‘안락국토(安樂國土)’라고 번역했다. 그만큼 안락하면서도 즐거움만 가득 있는 곳으로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이상화된 정토세계에 대해 정토종의 대성자였던 선도(善導, 613~681)는 누구나 큰 소리로 염불수행(稱名念佛)을 하기만 하면 왕생이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극락왕생 이후에 대해서는 그다지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비해 천태종에서는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성불이지, 단순히 극락왕생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인식했다.

일본 타카하기시 오오타카지(高萩市 大高寺) 소장의 ‘관경16관변상도’는 정토왕생한 왕생자가 성불하기까지 어떠한 단계를 거치는가에 대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그림1>. 13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불화는 2000년대 국내에 알려졌다. 183cm×121cm의 화폭에 전체적으로 박락이 심해 형태를 분별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지만 극락세계의 신비로운 분위기가 화면 전체에 흐른다. 화면구성이 안정적이고, 불ㆍ보살이 원만하고 아름답게 표현되었을 뿐만 아니라 건물의 기둥과 공포에 선명한 주색을 올리고 금니로 마감한 채색법 등을 볼 때 상당히 실력 있는 화가에 의해 그려졌음이 분명하다.

화면 상단에는 13개의 작은 둥근 원 안에 1관(一觀)에서 13관(雜觀)까지 묘사되어 있고, 9품왕생 장면이 대부분의 화면을 차지하고 있다. 9품왕생 장면은 상ㆍ중ㆍ하품을 1층부터 3층까지 나눠 배치했다. 각 층에는 각각 3동의 전각이 올라가면서 점차 작게 배치되어 깊이감이 느껴진다. 각 전각 앞에 있는 아름다운 연지(蓮池)에는 9명의 왕생자가 연화대좌에 앉아 설법을 듣고 있다. 1층 전각 안에는 아미타삼존불이 자리하고 있어 그 앞의 인물들은 상품(上品)의 왕생자임을 알 수 있다. 가장 상단에 위치한 전각 안에는 보살이 설법하고 있어 하품(下品)의 왕생자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화면의 하단에서 상단으로 올라가면서 상품왕생(上品往生), 중품왕생(中品往生), 하품왕생(下品往生) 장면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상품왕생장면의 아래 부분의 양 측면에는 왕생자들이 아미타불로부터 성불의 수기를 받고 있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아마도 상품의 왕생자가 부처님의 미묘한 법을 듣고 가장 짧은 시간 내에 성불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오타카지 ‘관경16관변상도’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모든 왕생자를 두광이 있는 보살로 형상화했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하품의 왕생자까지도 보살의 모습이다<그림2>. 〈관무량수경〉에서 하품의 왕생자는 가벼운 죄를 짓거나 계를 파하거나 오역중죄를 지은 자들이다. 결코 보살의 형상으로 표현할 수 없는 인물들인 것이다. 그런데 상ㆍ중ㆍ하품의 모든 왕생자를 보살의 형상으로 표현한 이유는 무엇일까?

고려 후기 가장 많이 읽혀졌던 경전 중 하나인 〈법화경〉의 근간을 이루는 사상은 일불승사상(一佛乘思想)이다. 승(乘)은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부처의 가르침을 뜻하는 말로 ‘일불승’이란 부처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오직 하나의 궁극적인 가르침이자 모든 중생을 성불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가르침이다. 일불승사상에 의하면 모든 사람은 성불할 수 있으며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누구나 보살종성(菩薩種性)을 갖고 있다.

천태지의(天台智, 538~597)는 〈관무량수경소〉에서 상품의 왕생자는 보살의 경지에 이른 사람, 중품의 왕생자는 도(道)를 깨닫기 이전의 세속 사람, 하품왕생자는 대승(大乘)을 처음 접하여 깨달음에 이르려면 한참이나 먼 사람이라고 해석했다. 이러한 해석은 모든 왕생자가 보살의 지위에 도달할 수 있지만 근기에 따라 걸리는 시간이 길거나 짧아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

‘관경16관변상도’에서 왕생자를 보살의 형상으로 표현한 것은 왕생할 당시의 모습이 아닌 오랜 시간의 수행을 거쳐 보살의 지위에 오른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는 누구나 보살종성을 가지고 있으며, ‘중생구제를 서원한 보살행’이 성불에 꼭 필요한 수행이라는 메시지를 던져준다. 백련결사 2대 법주인 천인(天因, 1205~1248)이 쓴 〈법화경참법예문(法華懺法禮文)〉에는 ‘석가모니불과 〈법화경〉의 제불ㆍ보살에 귀의한 후 참회하면 극락세계인 아미타국에 갈 수 있고, 아미타국에서 새로운 불력을 만나 무인생(無生忍)을 깨달아 널리 중생을 구제하고 열반락을 증득하기를 발원한다’ 는 문구가 있다. 즉 아미타국에서 보살의 깨달음을 얻어 널리 중생을 구제하고 성불에 이르기를 기원하고 있는 것이다. 고려 후기에는 나의 개인적인 구원 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함께 구원받고 성불하기를 바라는 대승적인 차원의 보살행이 귀족사회의 이념으로 자리 잡았던 것을 알 수 있다.

   
▲ <그림2>하품의 왕생자.

 

이승희 홍익대학교 불교미술사 박사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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