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방관 종로소방서 소방대원 박상익 씨
“초파일 비상근무 또 다른 보람”


▲소방서에서 불의의 사태에 대비해 출동 대기하며 부처님오신날 맞는 소방관 박상익 씨. 이날도 박 씨는 취재중 출동 벨 소리에 뛰쳐나갔다.
종로소방서에서 근무하는 3년차 소방대원 박상익(남, 35, 종로소방서, 차량운행 담당)씨는 혹시 있을지도 모를 불의의 사태에 대비해 늘 출동 대기 중이다. 종로구 일대가 관할 지역이라 모두 신경써야 하지만, 부처님오신날 근무를 맡은 그가 특히 신경을 곤두세우는 지역은 조계사 인근.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수많은 인파가 모이는 것은 물론이고, 전기와 촛불을 이용한 행사도 잦기 때문에 어디든 5분 이내에 투입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군대에서 5분대기조라 해서 무장을 해체하지 않고 경계태세를 맡는 부대가 있듯 소방관들은 항시 출동준비를 갖추고 긴장상태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하루 24시간 내내 5분대기조나 다름없다.

“화재현장에서는 대개 사상자가 생겨 가슴이 아픕니다. 화재 발생 시 불과 5~10분만에 불길이 몇 배로 확 번져 피해가 커지거든요. 당연한 말이겠지만 화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제일이고, 일단 화재가 발생하면 빠른 시간 내에 불길을 잡는 것이 우선입니다.”

부처님오신날 비상근무로 사찰을 찾지는 못하지만 그 역시 4년 간 사찰을 다닌 불자. 경주 태생인 박 씨는 서울로 상경해 홍은동 옥천암을 다녔고, 이후에는 출퇴근 시 이따금 조계사를 찾아 절과 참선을 해왔다. 교리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어릴 때 어머니를 통해 불교를 자연스럽게 접해 이미 친숙한 상태이고, 나를 낮추고 겸손한 마음을 가진다는 ‘하심(下心)'은 소방대원인 그의 실천덕목이다.

“사찰을 찾으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사찰에서는 요가 센터 등에 나가지 않고도 접할 수 있는 참선을 즐기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어 좋은 것 같아요. 집사람과도 한 번씩 동행해야 하는데 마음먹은 것처럼 쉽지는 않네요.”

그는 불교가 특정한 신에 대한 복종을 강요하는 경우가 없어서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개개인도 부단히 수행정진하면 부처님과 같은 훌륭한 선각자가 될 수 있다는 사상을 바탕으로 하기에 종교보다는 학문처럼 여겨진다는 것. 이러한 사상이 맘에 든다는 그에게 불교는 접하기 어려운 그 무엇이 아니라 마치 오래된 친구와도 같은 친근한 존재였다.

부처님오신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혹시 있을지 모를 사태에 대비해야 하는 박 씨는 “우리가 있어서 모든 불자들이 부처님오신날 행사를 안전하게 진행할 수 있는 아니겠느냐”며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근무하는 것이 오히려 부처님의 뜻을 실천하는 길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결의를 다졌다.


■ 봉사자 동국대 일산병원 간병인 이점자 씨
“병원이 곧 부처님 도량 부처님도 이해해 주겠죠“

▲동국대학교 일산병원에서 환자들을 간병하며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는 이점자 씨. 이 씨가 환자를 간병하고 있다.
동국대학교 일산병원 개원(2005년 6월) 이후 지금까지 환자들의 간병을 도맡아 온 이점자(여, 54, 효림연꽃간병인회)씨. 그는 1998년부터 간병 일을 시작해 올해로 10년 차에 접어든 전문 간병인이다. 밤낮 환자 곁을 지키며 병수발을 들어야 하기에 30여년간 불교와 연을 맺었으면서도 특정한 날 사찰을 찾기가 쉽지 않다. 지난해 부처님오신날에도 그는 환자들의 곁을 떠나지 못했고, 올해 역시 마찬가지.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없는 직업의 특성을 이제는 순리로 받아들인 까닭일까. 이 씨는 현재 자신의 일에 충실하고, 기쁜 마음으로 환자를 돌보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사찰을 찾아 절을 하는 것만이 부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은 아니잖아요. 사찰을 찾을 수 없어도, 절을 하지 못해도, 환자를 돌보는 일에 최선을 다할 때 부처님도 그 마음을 알아주지 않을까요.”

간병 일을 하고 있는 이곳이 부처님 도량이나 다름없다고 믿는 이 씨는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병원에서 연꽃등을 예쁘게 꾸며, 더욱 행복한 마음으로 일에 임하고 있다. 가끔씩 힘들 때면 병원 5층에 마련된 법당을 찾아 각오를 다지기도 한다. 법당이 문을 닫는 밤 9시 이후에 종종 찾는데, 법당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이란다. 

“불교를 접하면서 순간순간 깨어있어야 한다는 말을 가슴에 새겨 항상 열심히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일하다가 힘든 순간이 있어도 부처님 뜻을 되새기며 마음에 채찍질을 가하죠. 부처님을 알았기 때문에 생활에 활력도 많이 생기고, 그분이 저를 보다 강하게 이끌어 주는 것 같아요.”

하지만 환자들 돌보는 일에 보람을 느끼며 살아가는 그에게도 삶의 굴곡은 있었다. 간병 일을 시작하기 전 순수하지 못한 사람들 때문에 상처를 받아서 한때는 머리를 깎고 산으로 들어가야지 하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이 일을 시작하면서부터는 그 자신의 손길을 애타게 찾는 환자들로 인해 현재의 생활 속에서 불교의 가르침인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 바로 부처님의 뜻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환자를 돌보면서 사람들에게서 받았던 마음의 상처도 아물어 갔던 것이다. 

이 씨는 “간병을 하면서부터는 방황하는 마음이 사라지더라”면서 “이곳에서 환자의 생사가 걸린 시급한 상황을 많이 겪어서인지 병원 밖에서의 소소한 문제들은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을 만큼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불교에서 이르는 집착의 굴레를 벗어난 것일까.

힘들 때 부처님의 지혜를 구할 뿐, 일반 신도들처럼 사찰을 찾아 절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그는 자신이 진짜 불자가 아닐지도 모른다며 웃음 지었다.  

하지만 그도 부처님오신날에 사찰을 찾지 못하는 것이 약간 서운하기는 한 모양이다. 올 초파일이 지나고 시간이 날 때 한 번쯤 사찰을 찾고 싶단다.

환자를 깨끗이 닦아주면 자신의 몸을 닦은 것보다 더 개운하다는 이 씨는 “열심히 환자들을 돌봐 그들의 상태가 많이 호전되는 것에서 보람을 느낀다”면서 “죽는 그 순간까지 간병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 군종병 연평도 호국사 지킴이 이승표 병장
군법사 없고, 군종병과 없어
경계근무에 법당관리는 ‘혹'

▲연평도 해병대 군법당 호국사에서 부처님오신날을 준비하는 이승표 병장. 이 병장이 연잎을 말아 연등을 만들고 있다.

부처님오신날 연등은 만들지만 환히 불을 밝힐 수는 없는 곳. 그곳이 연평도다.

1999년 6월 연평대전과 2002년 서해교전이 지척에서 벌어진 곳으로 북한과 바다로 불과 2㎞정도 떨어졌다는 군 보안상의 이유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 밝힐 수 없는 연등을 열심히 만들고 있는 젊은이가 있다. 상주하는 군법사 없이 홀로 연평도 호국사 법당을 지키며 부처님오신날을 준비하고 있는 해병대 이승표 병장(22, 1000기).

▲연평도 해병대 법당 호국사 이승표 병장그는 애써 준비한 연등이 불을 밝힐 수 없음에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군장병과 마을 주민들이 항상 부처님 가르침을 가까이하고, 그들 마음에 부처님 광명이 활짝 피길 기원하며 연등을 만들고 있다”며 “70여 개의 컵등(종이컵에 연잎 조각을 붙여 만드는 연등)을 만들어 법당을 찾는 이들에게 나눠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병장은 지난해 부처님오신날 즈음 법당을 관리하던 선임병이 전역하자 법당 관리를 자청했다. 경북 김천이 고향인 이 병장은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따라 직지사를 다닌 인연으로 자원했다고 밝혔다. 어머니는 직지사 불교대학을 수료하고 지금도 합창단원으로 음성공양에 열심이란다.

군종병과가 없는 해병대 특성상 이 병장은 다른 사병들과 똑같이 평일 경계 근무를 서면서도 틈틈이 법당을 찾아 법당과 그 주변을 항상 깨끗이 가꾸는데 힘쓰고 있다. 그마저도 올 2월 함께하던 선임병이 전역한 후 법당 관리를 맡은 인원이 두명에서 한명으로 줄어 그의 일은 두배로 늘었다.

이 병장은 “군 장병은 물론 법당을 자주 찾는 마을 주민들에게 깨끗한 도량을 제공해주고 싶은 마음에 남들보다 조금 더 노력한 것”이라며 “자주 법당을 찾아 부처님을 뵙다보니 욕심도 없어지고 마음의 때가 씻기는 것 같아 내가 더 덕을 많이 봤다”며 환한 미소를 보였다.

이승표 병장은 법당을 찾는 대원들에게 줄 간식이 그리 넉넉하지 못해 늘 미안해한다. 그러나 이곳 법당을 찾는 대원들은 군신도회 가족들과 마을 주민들이 정성스레 준비한 점심식사를 통해 부모님의 따스한 손길을 느낄 수 있어 더 좋아한다. 더욱이 올 부처님오신날에는 부대장의 특별 배려로 반야심경 독경대회와 불교 OX퀴즈를 열어 우수병사에게 특별 포상휴가를 지급하게 됐다며 흐뭇해한다.

전역을 불과 한 달여 앞둔 그지만 아직 후임병을 구하지 못해 걱정이란다. 특히 군법사가 없다보니 매주 일요일 법회에 사용할 설법자료를 만드는 방법을 전수해주지 못해 안타깝다.

“법당 관리를 맡은 후부터 후임병을 대할 때도 부처님 대하듯 항상 웃음으로 대하고 다른 이들의 고민을 많이 듣는 등 이해심이 많아졌다”는 이 병장은 “전역 후에도 많은 사람들의 어려움을 듣고, 그들을 돕기 위해 공무원이 되고 싶다”고 장래희망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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